일상 여행자의 낯선 하루 - 익숙한 공간에서 시작하는 설레임 가득한 일상 우주 여행
권혜진 지음 / 이덴슬리벨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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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 담고 있는 일은 몹시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정말 꾸준함과 매일매일 반복되는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비로서 이제 일 좀 하겠구나 싶은 고되고 지루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 실제 내가 체감하는 정도는 지장보살이 보호해 준다는 공든 탑을 다 쌓을무렵 도깨비가 와서 무너뜨려버리는 굴레에 빠져버린 아기의 심정과 같다. 매일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하며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처음부터.. 비디오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듯 비슷비슷한 일들을 5~6년 하다보면 이제 완성작이 나올까 말까하다.

마음은 늘 무겁게 가라앉아 있고, 창의적인 발상, 생각 따위는 정지해 버린지 오래다. 하루 11시간 이상 한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앉아 공휴일 없이 일하다보면 마치 껍데기만 남은 로봇같아서 스스로가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부터가 끌렸다. 여행을 갈 수 없는 자들에게 일상에서도 여행자의 기분을 만끽할 구체적인 방법들을 쭈~~욱 나열해줄 것 같았다. 너의 그 움직일 수 없는 몇 평 남짓한 공간에서도 충분히 여행자처럼 기분 전환을 하고, 재충전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여행 프로 방송작가이셨던 이력이 고이 느껴질 정도로 정말 지구 곳곳을 다녀보신 것 같았다. 목차에는 유럽은 기본이오, 세계의 끝이라 불리는 곳, 티베트, 인도 등 나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여행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초반엔 읽다보면 씁쓸한 마음이 솟아나기도 했다. 남태평양의 섬 한 가운데에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세잔의 생가를 둘러보고 그의 그림을 직접 대면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막연한 궁금증이 질투와 뒤섞여 내 삶의 초라한 현실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았다. 한낮에 명동을 캐리어와 함께 걸어본다든가,해질녘 공항에서 커피를 마시며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본다든가, 아침에 맥주와 칩을 먹어 보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작가님이 허세퀸과는 완전 정반대의 인물인 것 같다! 그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이만큼 돌아다녀봐서 옥상에서도, 여의도 나무 아래서도 나는 여행자의 기분을 낼 수 있어~ 난 자유로운 몸이니까~~' 가 전혀 아니었다. 작가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게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일상 생활에선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것,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하는 것이므로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와 다르게 인지하고, 내가 원하는 바,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따라가면 인생이 더욱 다채로움으로 채워지고 그것이 리프레쉬가 되면서 매너리즘에서 벗어난 여행자의 마음과 비슷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이런 훈련을 소소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작은 일상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게끔 나를 변화시키면 된다.

세계 곳곳으로의 여행,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 다독과 깊이있는 사유 등으로 그녀는 참 매력적인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여행의 종착지이자 플랫폼인 내 몸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온다, 나의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모두가 말하지만 언제나 인지하지 못 하고, 실천하지 못 하는 말.. 공감한다면 정말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하자. 한 송이 꽃을 책상에 놓아두는 것부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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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미지마치 역 앞 자살센터
미쓰모토 마사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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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인상적인 책이다. 책을 집을 때부터 표지가 의미하는 바가 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끝까지 읽고나니 의미를 잘 표현한 표지란 생각이 든다. 책 내용 자체가 음산한 기담이나 환상 문학 같은 느낌이 강하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기묘하고 괴이한 꿈 이야기, 절단마 이야기, 주인공 도이의 친형의 자살 이야기 등등 독특하고 음침한 이야기들이 서로 상관없는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해당한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만들어진 '길' 이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이 모미지마치 역 앞에 위치한 자살센터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문장들을 접했을 때는 일본 소설 특유의 현학적인 느낌을 가득담은, 애매모호한 중얼거림인 줄 알았다. 일종의 허세라고 생각했는데, 이 '길' 이 마지막 장에 가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더 접할 수 없다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이 책이 작가의 처녀작이나 마지막 작품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는 조울증과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섬세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의 주인공 도이는 한 살짜리 아이가 살해된 이후 수면제와 알코올 없이는 잠들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6년을 살아오다가 아이를 죽인 범인이 사형 당하자 살아갈 의미를 잃고 자살센터를 찾아가게 된다. 그래서 책 속에는 상실의 아픔과 그로 인한 우울감, 그리고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의 메마른 정신 세계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삶에서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그의 절박함과 먹먹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면서 너무 쉽게 '죽고 싶다' 라는 말을 내뱉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을 정리해 나가는 도이의 모습을 보면 자살이라는 선택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소식을 갑작스레 통보받은 지인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헤아려 보게 된다. 막상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순간의 자기 연민과 괴로운 상황에만 몰입하여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고 안일한 생각 뿐이다.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고통때문에 지인들의 괴로움과 슬픔은 생각지 못 하고 막연히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거란 자기중심적인 생각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삶과 불행의 원인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하는 자살센터의 설립은 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종교 단체들의 우려와 달리 자살과 죽음이 갖는 그 무게감을 제대로 느껴 보고 오히려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센터가 설립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꼭 권해주고 싶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몇몇은 분명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받고 마음을 돌려볼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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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모르는 내 성격 - 성격장애, 어떻게 함께 지내고, 어떻게 극복하나
오카다 타카시 지음, 유인경 옮김 / 모멘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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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이란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어느 집단에 가든! 일정 수의 또라이가 존재 한다는 법칙이다.
즉, 내 위에 상또라이가 있다해서 팀을 옮기면 새로운 팀에도 똑같은 또라이가 있다. 운이 좋게 그 사람이 조금 덜 또라이다 싶으면 대신에 그런 사람이 여러명 있다. 그러던 어느날, 또라이가 회사를 그만두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뻐하긴 이르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또라이가 들어오게 된다. 이게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다. 소스라치게 공감되는 법칙이다. 어느 집단에 가든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고, 그 사람이 없어지고 나면 새롭게 미운 사람이 등장한다. 마치 그 동안 가려져 있던 숨은 똥(?)을 찾아낸 것 마냥 금세 싫은 마음이 증폭된다. 사람 마음이 본래도 이럴진대, 인성 교육, 가정 교육의 부재로 성격 장애를 가졌거나 예의 범절과 상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니 참 집단 생활 하기가 고단하다.

단, 이 법칙에는 아주 중요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만약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우리 조직에 또라이가 없는 것 같다면... 애석하게도 본인이 그 또라이라는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계속 해서 나와 부딪히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 단순히 그 사람과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든, 혹은 나도 모르는 성격 장애를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병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점으로 비춰질 수 있는, 성격적으로 모난 부분 말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심리학 분야의 입문서로도 적절하고, 일반인들을 위한 실용서적으로도 훌륭하다.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주변에 그러한 사람이 존재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음과 같은 총 10가지의 성격장애 유형이 등장하며 각 유형에 해당하는 유명인들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경계성 성격장애(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 자기애성 성격장애(칭찬만 듣고 싶은 사람들),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 반사회성 성격장애(악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들), 망상성 성격장애(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분열형 성격장애(머리로 살아가는 사람들), 분열성 성격장애(친밀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회피성 성격장애(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의존성 성격장애(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 강박성 성격장애(지나치게 의무감이 강한 사람들)

천성적인 거짓말쟁이였던 코코 샤넬, 영감이 풍부하고 초자연적 현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칼 융, 동양사상과 불교에 심취했던 헤르만 헤세 등 그들의 훌륭한 업적과 대조적인 성격적 문제들을 알게 되니 몹시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20여 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서 만나왔던 많은 내담자들과의 임상치료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실제 치료에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가 더욱 희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책에 큰 매력을 느낀 이유는 성격장애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과 함께그들과 살아가는 요령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기존에 접해왔던 심리학 서적의 경우 주변에 존재하는 위험한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해 주고 피하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이 쉽지 않다. 그러한 사람이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이거나 가족일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막상 읽고나면 그들에 대한 두려움만 커지고 마땅한 대처 방안이 없어 답답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에는 성격 장애별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 그들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주면 좋은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성격장애의 본질과 발생 원인에 대해 설명 해주는 점이 훌륭하다. 누군가와 계속 트러블을 일으킬 경우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이해와 공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작정 피하기 전에 역지사지의 자세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한 면에서 그들이 왜 이러한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알게 되면 연민을 갖게 되고 그들과의 문제들을 좀 더 담담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절망적인 소시오•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진심으로 대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립의 순간을 미리 예측하고 좀 더 유연한 자세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인이 이러한 성격 장애로 판단될 경우 이 책에는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요령들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활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를 위해 마지막 부록에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성격 자기진단 질문지'를 실려 있어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 진단해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각 성격 장애마다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하고, 내 얘기인가 싶어 얼굴을 붉히기기도 한다. '나' 이기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모르는 면이 굉장히 많았다. 왜 내가 그러한 성격적 특성을 갖게 되었는지 짐작해 보는 계기도 되었고. 특히나 본인의 부정적인 면모는 솔직하게 들여다 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점은 잘 몰랐던 것 같다. 조금은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주변에 존재하는 또라이들 욕을 대신해주는 것 같아 시원한 마음이 들지만, 마지막엔 자기 반성을 하게 만들어 주는 기특한 책이다!!


덧.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이외에도 지랄총량 불변의 법칙도 있단다. 인생이 부리는 지랄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젊을때 지랄을 많이 한 사람은 늙어서 적게 하고, 젊어서 지랄을 적게 한 사람은 늙어서 많이 부린다.

음.. 나는 어땠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젊음의 범주는 과연 어디까지 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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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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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 하루키지만 정작 나는 그의 작품 중에서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 밖에 읽어보지 못 했다. 두 작품 모두 나에게는 난해하게만 느껴졌고, 이 작가 정말 나랑 안 맞는구나 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대체 무엇인지 좀체 와닿지 않았고, 그저 야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인상만 강렬하게 남았다. 아무래도 10대와 20대 때 읽었기 때문에 더욱 느끼는 바가 편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청 망설이다 생일 선물로 받아 읽게 된 여자 없는 남자들. 표지 디자인부터 뜬금없는 것이 괜히 칙칙하고 요상한 이야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첫 작품인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모두 설정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보편적, 도덕적으로 생각하는 남녀 관계애 대한 관념을 비틀어 놓는다. 참 독특한 스토리이기도 하고, 무언가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은 느낌을 가득 담고 있다. 그리고 고독과 질투, 불안, 근심 등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을 글 속에 자연스레 녹여내 이 독특한 상황 속 주인공들에게 감정적으로 동조되고 만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 '내가 쓰는 이야기라면 어떻게 결말을 냈을까' , '과연 주인공들은 행복해졌을까' 등등 엄청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똑같진 않았지만 비슷한 심리 상태나 현실에 직면해 봤던 과거의 기억도 떠올려 보게 되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독특한 소재인 듯 느껴졌지만 읽다보면 유사한 기억 또는 일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한 좀에서 작가가 독특한 이야기 속에 보편성을 담아내는 능력에 놀라게 된다!

모든 이야기가 경이롭게 느껴졌지만 그 중에 가장 와닿는 작품은 가노였다. 현실과 이계를 넘나드는 느낌, 음습한 것들이 주인공에게 숨죽여 다가오는 듯한 느낌은 읽는 내내 오싹함을 느끼게 했다. 한 여름밤에 기담을 읽는 느낌- 기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혀!- 이라 하마터면 그대로 책장 속으로 들어갈 뻔 했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두 번, 세 번 읽다보니 무서워할 것은 음습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가노가 만들어낸 마음 속 허상들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진정 상처 받고 아파해야할 때 그러한 감정들을 억울러 버리고 진실을 외면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척 자신을 가장한 채 살아온 것이다. 가장 원해왔던 것이면서도 가장 두려웠던 일은 그가 만든 마음의 공백 속으로 그간 억눌러온 감정과 자아들이 뒤섞여 흘러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크 소리로 형상화 되어 들려오고 그가 마음의 문을 열기를 집요하게, 강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약해지고 싶지 않아, 쿨한 인간이 되고 싶어 솔직한 감정과 본능을 억누른 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양의적이라는 건 결국 양극단 중간의 공동을 떠안는 일인 것이다.
"상처받았지, 조금은?"
아내는 그에게 물었다.
"나도 인간이니까 상처받을 일에는 상처받아."
기노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뱀들은 그 장소를 손에 넣고 차갑게 박동하는 그들의 심장을 거기에 감춰두려 하고 있다. - p. 265

기노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작고어두운 방 한 칸에서 누군가의 따스한 손이 그의 손을 향해 다가와 포개지려 했다. 기노는 눈을 꼭 감은 채 그 살갗의 온기를 생각하고 부드럽고 도도록한 살집을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에게서 멀어져 있던 것이었다. 그래, 나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어둡고 조용한 방 안에서. - p. 271


단편집은 뭔가 중간에 이야기가 끊길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고, 짧은 이야기 속에 작가의 메시지를 담아야 하니 독자 스스로 파헤치고 생각해야하는 장치들이 많아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접해 보니 탄탄한 스토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느껴져 나름 매력적인 장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셰헤라자드나 그레고리 잠자-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해버린 잠자가 다시 인간으로 변한 이야기를 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하루키가 위트있게 느껴졌다.- 를 읽다 보면 단편집에 푹 빠져들게 된다.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지는 것이다. 셰해라자드가 학생 때 좋아하던 남학생을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다음 단편집에 연결해서 실어주면 좋겠다 라는 열망이 생겨날 정도로 하루키는 참 대단한 이야기꾼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열린 결말이라는게 늘 무책임한 작가의 농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단편집은 되려 그러한 맛으로 읽은 것 같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결론을 유추해낼 수 있다는 점! 긴 이야기 끝의 열린 결말이면 울화통이 터지지만 짧은 이야기 끝의 그것은 유쾌한 상상의 여지로 느껴진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몽환적 느낌의 긴 장편 소설은 아직 읽을 자신이 없다. 하루키의 단편집부터 차례로 공략하다 보면 그만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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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 Novel Engine POP
보르자 지음, 이태웅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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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이혼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6년 만에 돌아온 김영재. 6명의 아이들을 이끌며 골목 대장 노릇을 했던 그는 이제 없다. 아버지 뿐만 아니라 선생님, 같은 반 친구들 모두에게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며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적당히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반장으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노트를 건네 받게 되고 기묘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그 어떤 일, 사람에게도 연루될 생각이 없는 소년이었지만 노트의 주인은 집요하게 연락을 해오며 감상평을 들려줄 것을 종용한다. 마지 못해 읽은 노트 속에는 단순한 작가 지망생의 습작 노트가 아닌 실제 김영재 본인 주변의 괴담을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 김영재가 과거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당시 어울리던 친구들이 학교와 종합병원 구 병동에 퍼져있는 괴담의 피해자라는 것, 그리고 그 괴담의 주인은 김영재를 제외한 남은 네 학생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허유경이라는 것이다. 유령을 믿지 않는 김영재는 무언가 음모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사라진 친구들과 허유경에 대한 진실을 찾아 괴담을 추적한다.

학창시절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괴담들, 그 괴담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명까지 담고 있다면 몹시 공포스러울 것이다. 그래서책을 읽다 보면 김영재의 등 뒤를 따라 나 역시 살금살금 살펴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공포가 세밀하게 잘 그려져 등 뒤가 서늘해지는 느끼이랄까. 여름밤에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인 것 같다. 후반부에서 괴담과 관련한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진 이 책이 호러 소설인지 추리 소설인지 자꾸만 의심이 들었을 정도니까. 극 중 편집장인 김미영 팀장의 말대로 사건들 간의 인과관계와 플롯이 탄탄한 스토리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다루고 있는 소재 자체도 참신하고 흥미롭다. 또한 김영재를 비롯한 주변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나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애매모호함이 지닌 불확실한 면들을 잘 드러내고 있어 과거청소년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비정한 어른들의 논리, 그 어른들의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아이들. 무지함과 순수함때문에 되려 잔혹해질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잘 그렸다.

다만 극 중에 좀 과하다 싶은 멘트들이 많은 것이 좀 흠이다. 소위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담임 프락치, 세미프로 등 김영재가 사용하는 단어들도 좀 오버스럽게 느껴지는데, 김미영 팀장의 대사는 더 대단하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긴 하지만 일반적은 느낌의 대화는 아니다. 약간은 긱 같은 느낌의 똘기충만한 덕후의 모습이랄까. 그러한 부분 역시 그녀를 표현하는 캐릭터로써의 장치였다면 대단하지만.. 약간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점때문에 어른들을 위한 소설보다는 청소년층을 타깃으로 한 호러 추리물 같은 느낌이 강하다. 조금 더 일상적인 대화톤과 단어들이 선택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벗뜨!! 소재도, 캐릭터들도 굿굿!! 흥미진진 재밌는 소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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