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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작가 베른하르트의 자전적 소설로 그와 그의 친구 파울의 우정을 작가가 회상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다. 오래 전 베른하르트는 폐병으로, 파울은 정신병으로 혹은 가족들에게 정신병으로 취급을 당하는 어떤 행동들로 동시에 가까운 위치에서 입원을 하게 됐을 때를 소설의 시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이 진행될수록 둘의 우정과 함께 파울의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드러나게 된다. 둘의 우정을, 둘이 얼마나 비슷하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친구였는지를 말해주던 언어로 친구 파울의 병을, 깊어지는 정신병을 말하면서 작가는 결국 이 소설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으로’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살아간다. 베른하르트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방식이 언어가 될 수 있고 그림을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자신의 그림일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사물이나 공간이 그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이 가진 방식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의 존재를 우리에게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각인시킨다.
여기서 ‘죽음’이란 것이 이 소설의 파울처럼 정말 물리적인 죽음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그 사람의 존재를 잊고도 아무 영향 없이 살아가는 것 역시 내 안에서, 내 삶에서 그 사람은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돼버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베른하르트는 ‘단지 과거에 적어 놓은 메모들 사이에서 파울에 관한 내용을 찾아서 읽는 일에만 집중했다. 길게는 십이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메모의 글을 통해서 그를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내 기억 속에 영원한 현재로 간직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 이 소설은 ‘나는 그의 무덤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끝나게 되는데 작가는 이렇게 파울의 무덤을 찾아 가지 않고 그와 보냈던 시간들을 한 편의 글로 남기면서 언제까지고 친구의 기억을, 그 존재를 현재에 머무르게 하고 싶어 한다.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장소에서도 견디지 못하고, 오직 떠나온 장소와 도달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이 행복한 인간에 속한다.’
베른하르트는 소설에서 이렇게 말하며 자신이 빈번하게 도시를 바꾸어 살아 왔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냥 ‘자동차에 앉은 채로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행복한 순간은 오직 자동차에 앉아 있을 때뿐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베른하르트는 자신의 이런 성향이 얼마 안 가서 치명적인 광기로 이어질까봐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광기로부터 지켜 주기까지 했다고 고백하게 된다. 베른하르트의 이런 고백을 읽으며 나는 그의 친구 파울의 광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다른 사람들이 정신병이 없는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듯이 자신의 정신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죽는 순간까지 평생을 그렇게’ 살았던 파울의 인생을 보면서 무기를 제조하면서 예술이나 철학 등에는 관심이 없었던 자신의 가문, 가족들을 ‘견디는’ 생존 방식으로 광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의 어떤 고정된 ‘자리’도 견딜 수 없었던 베른하르트처럼 파울 역시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의 가문, 자신의 ‘자리’가 견딜 수 없어 ‘광기’를 통해 전력으로 다른 곳으로 도망쳤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삶의 기나긴 시기에 그를 가르친 것은 결국 정신질환자들이었고, 나를 가르친 것은 폐병 환자들이었다.’
우리는 삶의 어떤 시기마다 삶의 한 부분 부분을 배워 나가고 그 안에서 성숙해진다. 그것은 이 소설의 인물인 베른하르트와 파울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인물들을 보며 나는 내 자신이 성숙해지는 삶의 시기가 대부분 기쁘고 편안한 시기 혹은 그런 상태에서보다 자신의 가장 어렵고 아픈 부분에서일 때가 많음을 새삼 생각하게 됐다. ‘정신질환자들 사이에서 성숙해지는 것은 폐병 환자들 사이에서 성숙해지는 것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문장을 보면 우리는 결국 상대방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다르지 않게 놓는 것에서 우정 혹은 관계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이 소설에서 베른하르트도 이야기 하듯이, 우리가 삶에서 정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하지만 파울은 베른하르트에게 그런 의미 있는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렇기에 이런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결국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사람을 만드는 일,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일 그래서 그 사람을 나에게 더욱더 의미있게 만드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이 소설의 두 인물의 우정과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독서란 것이 본래 어떤 답을 우리에게 던져 주는 것이 아닌, 그런 생각들 자체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니 그 질문에 어떤 생각을 내놓는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