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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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살 생일에도 여전히 ‘늙어가고’ 있는 ‘나’는 드디어 생애 첫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사랑으로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이 아닌, 90살 노인이 죽어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일은 어딘가 새삼스럽다. 소설의 초반부 주인공은 병원에 갔던 과거를 회상한다. 나이 때문에 오는 자연스러운 통증이라는 의사의 말에 주인공은 “그렇다면 나에겐 내 나이가 당연하지 않은 거로군요.”라는 말을 남긴다. 그 후 주인공은 통증 속에서 생활하는데 점차 익숙해지고 자신이 늙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비교적 잘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그가 과연 자신의 나이를, 인생을 잘 받아들인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의 제목 중 ‘추억’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나는 이 소설을 일생동안 관계를 맺은 창녀들과의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어준 첫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열두 살 때 처음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후, 수백 명의 여자와 관계를 맺었고 관계 후엔 항상 돈을 지불하였다. 이것은 주인공이 나눴던 사랑을 사랑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사랑을 계속 미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90살을 맞은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자신이 관계 맺어 온 창녀들과의 관계를 떠올려 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처음이긴 하지만 역시 몸을 파는 창녀인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기억이 아닌, 추억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글을 잡지에 싣기 위해 게재비를 지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너무 늦어버린 때였던 것처럼, 어쩌면 주인공은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 창녀들에게 계속해 돈을 지불했음을, 소녀와 사랑에 빠진 후에야 깨닫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은 원고를 넘기기 위해 신문사를 찾아 가게 되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건물 리모델링 소음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이것은 그가 첫사랑에 빠지게 됨으로써 그동안 진정한 사랑을 유예시키려는 동시에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지속해왔던 인생의 리모델링을 더 이상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에 따라 그것에 대해 느끼는 소음과 피로함과도 같다고 보았다.

  주인공은 소녀가 일상에 지쳐 잠들어 있는 방에 일상용품들을 하나씩 들여놓으며, 그 방을 소녀가 기거할 만한 곳으로 만들어 나간다. 나는 이것을 환상과도 같은 사랑을, 주인공의 일상에 기거할 수 있도록 애쓰는 행위로 보았다. 그 사랑이 자신의 일상, 생활을 떠나 환상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주인공은 확실히 사랑에 빠진 후 그동안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평생 동안 고수해왔던 칼럼의 형식은 만평 형식에서 연애편지 형식으로 바뀌면서 어떤 독자라도 그걸 자신의 연애편지로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소설을 얼핏 보면 사랑에 빠져 변한 것이 이런 외적인 것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그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이런 외면의 변화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적 예에 불과함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 유품 피아놀라를 팔아버리고, 중고이긴 해도 원래 갖고 있던 것보다 좋은 전축을 구입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90년간 지켜온 자신의 과거를 팔아버리고, 새것은 아니지만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좋은 인생에 대한 태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생일 저녁, 처음 소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행선지를 ‘공동묘지’로 둘러댄 것과 잔돈을 바꾸기 위해 ‘무덤’에서 돈을 바꾼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 날 저녁 만나게 될 소녀가, 그 소녀와 나누게 될 사랑이 주인공에게 있어 무덤과도 같음을 의미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사랑이란, 그동안의 자신을 묻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로사 카바르카스네는 오랜만에 주인공을 다시 만난 밤, 그를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는 노 젓는 죄수’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빗장은 소녀와의 사랑에 의해 풀리게 되고 주인공은 어느새 사랑에 있어 ‘무용지물’을 자처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해오던 일들을 ‘부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타고난 성격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게으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고 고백하는 주인공의 말에 나는 그가 그간 돈을 주고 창녀를 사서 잠자리를 나눴던 것 역시 오히려 간절히 사랑을 원했던 마음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인공이 첫사랑을 하게 된 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은 그동안의 그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았다. 사랑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거부해오던 주인공은, 일상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기울이던 노력을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바꾸며 결국은 자신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사랑 때문에 죽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남은 자신의 인생에서 사랑을 할 수 있는 기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창녀들과 돈을 주고 관계를 맺던, 지난 90년의 세월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연스레 앞으로 닥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죽음 또한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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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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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쁨이 떠오른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소설. 황정은 작가님의 <백의 그림자>와 함께 가장 애정하는 경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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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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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더 아프고 아름답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예술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 묵직한 문제를 던져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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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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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으로 묶이기 전, 손보미 작가의 소설을 계간지에서 한 편씩 만났을 때 느꼈던 반짝임이 이상하게 한 권의 책으로 읽고 나니 잘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의 신인작가가 등단부터 첫 책이 나올 때까지가 중요하다면 이 작가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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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개념정원 개념어 시리즈 1
서영채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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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여러 개념들에 대해 가볍게 알고 싶다면 추천하지만 인문학에 대한 어떤 개념에 대해 깊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천이 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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