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꽃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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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에 일어난 스캔들입니다. 기록은 이렇게 남았습니다. 작가 후기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1423) 9월 25일의 첫 번째 기사로부터 비롯된다.

 

 정사를 보았다. 대사헌 하연이 말하기를, "비밀리 계할 일이 있사오니 좌우의 신하들을 물리치고 의정 이원만을 남게 하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나가니 하연이 계하기를,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柳)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通奸)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하니, 그대로 따라 유씨를 옥에 가두었다.

 

 국왕의 측근에서 왕명을 출납하는 지신사와 대신의 아내의 간통은 재위한 지 5년째에 이른 젊은 왕 세종은 분노케 했고, 사헌부의 계사 후 13일이 지나 어명으로 '이귀산의 아내 유씨를 참형에 처하고 지신사 조서로를 영일(迎日)로 귀양' 보내며 사건이 일단락 된다.

 

-페이지 337, 후기의 작가의 말 중에서

 

 그러니까 시기는 세종 초, 조정 대신 남자와, 조정대신 남자의 아내의 치정사건 혹은 불륜의 스캔들입니다. 요즘은 배우자 있는 자의 불륜을 두고 간통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젊은 왕은 노해서 이 남녀의 일을 두고 앞으로 다스릴 본보기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는 참형, 남자는 유배. 역사의 기록은 간단합니다. 남자는 직책과 이름이, 여자는 그 남편의 직책과 이름이 나옵니다만, 자기 이름은 고작 성씨가 나올 뿐입니다. 전직관리 누구의 처 모씨로 말이죠.

 

 이 책에서는 그 여자의 이름을 녹주라고 했습니다. 또는 젊은 시절 한 때는 비구니인 수경심이라고도 했고, 또는 이귀산의 새로 들인 젊은 부인이 된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가족을 잃고 일가 친척이 되는 청화당 노마님의 집에서 살게 된 아이는, 온 가족이 죽고 집이 불타는 사고의 충격때문인지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청화당의 외손자인 서로. 두 아이는 그 때부터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만, 서로의 어머니 경심의 미움을 받는 처지라서 그게 문제죠. 그나마 의지가 되었던 청화당이 죽고 나서 얼마 뒤, 깊은 산속 암자로 가 수경심이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출가에 대해서 본인이 전혀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으니, 이는 강제된 출가라 해도 되겠습니다.

 

 청화당의 딸이자 서로의 어머니, 그렇게 불리기에는 뭔가 많은 것을 중간에서 만들고 꾸미고 뒤틀었던 그 여자, 경심씨도 할 말은 있습니다. 경심은 녹주의 어머니인 채심을 압니다.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컸던 청화당과 그 친구, 다시 그들의 아이들로 태어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가까이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 청화당은 자주 채심과 경심을 비교하면서, 채심의 칭찬을 할 때마다 경심씨의 마음 속에선 미움이 자라고 커졌던 겁니다. 어머니 입장에선 자기 딸이 더 잘 했으면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했을테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겠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채심이 가진 걸 갖고 싶어하더니, 파혼하고 나이 많은 조반에게 출가하게 됩니다. 한편 채심은 좋은 집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잘 사는 것 같았지만 화재로 일가가 죽고 어린 딸 하나 겨우 남았고, 그녀도 아이를 동정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예전의 그 채심이 미웠던 거죠.

 

 경심의 아들 서로는 어머니를 거역하지 못했고, 녹주를 사랑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혼인하고 긴 시간을 살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첫사랑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또한 녹주도 원하지 않은 비구니로 살면서, 서로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경심이 그들에게 첫번째 시련을 주었다면, 두번째 시련을 준 건 녹주의 남편이 된 이귀산일겁니다. 그는 본래 부인과 잘 살았는데, 부인이 갑자기 죽고나서 만난 녹주와 재혼합니다. 이 집에서 새 부인에 대한 남편의 대우란,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뭐든 잘 해줍니다. 친절하고 자상하게 보살펴주는 좋은 남편 같긴 합니다만, 이 집에서 사는 건 숨이 막힙니다.

 

 녹주는 경악했다. 이귀산에게 그녀는 무엇일까? 그는 왜 녹주에게 아이의 죽음을 숨겼을까? 십분 이해해 걱정거리를 안겨주지 않으려는 배려였다고 하더라도 천연덕스런 너털웃음과 감쪽같은 생시침은 소름끼쳤다. 그는 녹주를 화초처럼 애완할 따름이었다. 스스로 생각과 감정을 품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의 영혼이 어떤 천국과 어떤 지옥을 오가는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정성조차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는 폭력이었다. 메아리 없는 함성은 소름이었다.

- 이 책 페이지 284, 285 중에서

 

  그 여자의 일생도 한 번, 그 남자의 일생도 한 번. 그들은 수십여 년만에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갑자기 피리와 함께 먼 친척이라도 되는듯 찾아온 서로는 지금까지도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쓰고, 새 식구도, 반려도 아닌 화려한 집의 장식처럼 사는 녹주의 사정도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들이 평범하고 원만하게 자라, 좋은 배우자를 만났고, 부족함없이 지금의 가족과 잘 지냈다면, 이처럼 탈주에 가까운 사랑에 빠지는 대신, 어린 시절의 옛 추억을 꺼내보면서 살아가는 친구로 남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그래서 한 번 해 봅니다.

 

 무모한 사랑에 빠진 그들도 언젠가 결말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불안했을거고, 언젠가 발각될 날이 올 것을 알지만, 며칠 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서로의 친구 김이가 술김에 울분에 찬 혼잣말을 털어놓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끝이 있는 사랑입니다. 각자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두고 세상은 너그럽지 않습니다. 그 때도 비난의 대상, 지금도 비난의 대상.

 

 그러니 이 일을 전해들은 젊은 세종은 무척 화가 나서, 이 일을 앞으로 있을 강상죄의 본보기로 삼고자 합니다. 평소 신임을 얻었고 개국공신 조반의 적장이었던 조서로는 그나마 유배를 보냈지만, 그만큼 상대여자인 이귀산의 처 유씨에게는 가혹한 참형이 내려졌습니다. 이 일은 그렇게 끝났습니다만, 훗날 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규모의 '유감동과 30인 스캔들'이 터졌을 때, 십삼 년의 경력이 더해져서 불혹의 나이가 된 세종은 이때와는 다른 판결을 내립니다. 이번엔 유감동에게 참형대신 유배형으로 형을 감해줍니다. 이후 간통은 유배가 관례가 되었다고 합니다.(페이지 338)

 

" 내 나이 젊고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풍속이 집집마다 토지와 노비가 있고 상하의 구분이 있어 중국에서 칭찬하던 바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사족 벌열의 집안에서 추잡한 행실이 발견되어 치고(治敎)에 흠점이 되었도다. 이에 깊이 미워하여 율문 밖에 형벌로 행하였는데 ……. 실로 율외(律外)의 형벌을 가하는 것은 잘한 정사가 아니다. 지난 날 한두 가지 율외의 형벌은 지금 돌이켜 후회가 된다……."

 

 도덕은 엄격했다. 시대는 그 도덕보다 가혹했다. 하지만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목숨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 이 책 페이지 324 중에서 

 

 만약 이들이 요즘 사람이었다면, 이 사건은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고위직 공무원과 전직 공무원 부인의 스캔들로 비난받았겠지요. 간통죄를 두고 폐지 논란은 가끔 있습니다만 어쨌든 현재로선 범죄니까 처벌 대상이 되겠지만, 그렇더라도 사형은 아닙니다.  그리고 적어도 누구의 처 유모씨도 나중에 확정적으로 형이 확정되면 그땐 자기 이름이 나오겠죠.  어쨌든 요즘 시대엔 여자도 자기 이름을 걸고 시험을 봅니다.

 

 사랑도 때로 죄가 됩니다. 사회가 금기시 하는 사랑을 했을 때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도 상처를 입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연인들을, 죽일 것까지야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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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서로와 유녹주라는, 이 오래된 연인들을 위한 변명
    from 서니데이님의 서재 2013-05-12 22:15 
    얼마 전에 <불의 꽃>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리뷰도 한 번 썼지요. 그 때는 주인공인 조서로와 유녹주라는 불륜커플(?)을 중심으로 봤습니다만, 그 얘긴 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나와도 약간 다른 이야길 써보고 싶네요. 조서로의 어머니와 그리고 유녹주의 남편은 이 책에서 그럭저럭 많이 나오죠. 그들에겐 각각 이경심과 이귀산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 책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두 사람에게 직, 간접적으로 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