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비채 @drviche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연인> -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길을 떠나는 법

📌 책 소개

창고 안 쇠줄에 묶인 물고기 풍경은, 자신과 꼭 닮은 또 다른 풍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세상 밖을 꿈꾼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바깥세상에 뛰어들고,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간다.
겁 많고 순한 이 물고기는 때로 위협을 만나고, 누군가의 친절도 마주한다.
이야기 속에는 풍경뿐 아니라, 말하는 비둘기와 개구리, 고양이 같은 익숙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단순하지만 의외로 곱씹게 만든다.
사랑은 뭘까,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 죽음은 진짜 끝일까.
짧은 문장으로 묻는 질문이 은근히 깊고, 전체 이야기는 오래된 동화 같지만 현재와 멀지 않다.

💬서평

💡바다를 모르던 물고기, 날아오르다

풍경은 쇠줄에 묶여 운주사의 창고에 갇혀 있던 물고기다.
말도 걷지도 못하는 존재였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랑이나 자유 같은 말은 입에 올리기도 전에, 풍경은 본능처럼 자신을 묶은 쇠줄을 끊었다.
이건 바닥에서부터 꿈틀거리는 탈출기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해 본 사람이라면,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풍경은 자유로 나아간 게 아니라 그리움에 밀려 나왔다.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사랑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하나로.
그래서 날아오른 순간은 감동이라기보다 땀이 난다.
현실의 벽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을 나누지 않는 시선

풍경이 죽음을 묻자, 한 인물이 파도 이야기를 꺼낸다.
절벽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단단한 논리나 철학 없이 설명된 이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설득력이 있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말은 진부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기교 없이 제자리에 있다.
풍경은 그 말을 듣고 울지 않는다.
다만 한 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 삶을 계속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그저 한마디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장면이 인상적이다.
죽음을 관념이 아니라 상황으로 보여주는 방식.
파도는 사라지고, 바다는 그대로 있다는 말은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도시의 쓰레기와 비둘기의 발가락

서울역은 풍경에게 낯선 세계다.
처음 만난 잿빛 비둘기는 오른쪽 발가락이 하나뿐이다.
나일론 줄에 엉켜 썩어버렸다고 한다.
서울은 그런 곳이다.
쓰레기처럼 흘려진 것이 생명을 해치는 곳.
비둘기는 그걸 경고하지만, 풍경은 여전히 사랑을 기다린다.
도시는 생존이 중심이다.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고, 약한 자는 순식간에 다치거나 사라진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희망이 아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도 누군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 그것이 도시를 견디는 방식이라는 걸 보여준다.
사랑이 목적이 아니라 생존의 동력이 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금 즉시 사랑하라’ 는 말의 무게

모든 게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햇살도, 건물도, 기차도. 풍경은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
누군가와 연결되었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단순한 진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짜 주제는 ‘지금 즉시 사랑하라’ 는 문장에 있다.
이건 시간을 기다리다 무뎌진 이들에게 던지는 채찍이다.
사랑은 계획해서 하는 게 아니라, 숨을 쉬는 일처럼 그냥 지금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뒤로 미루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되기도 하니까.

풍경은 그렇게 매 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
@wisdomhouse_official )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의 작은 무법자> - 무법자의 길, 사랑과 복수의 경계를 달리다

💡이름이 운명이 될 때

세상에는 ‘이름’ 이 운명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더치스 데이 래들리, 그녀는 스스로를 ‘무법자’ 라 불렀다.
13살 소녀가 이토록 단단한 벽을 두르고 스스로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기에는 너무 많은 배신을 겪었고, 사랑을 믿기에는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는 술과 약에 취해 있었고, 동생을 보호하는 건 더치스의 몫이었다.
그녀가 무법자가 되기로 한 순간, 이미 세상은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어린 나이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그녀를 길들였고, 그 무게가 만든 딱딱한 껍데기 속에서 더치스는 외로움에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세상이 더치스를 무법자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 것인지, 그 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법자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죄는 선택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자 결과이며, 때로는 필연적 운명이기도 하다.
빈센트 킹은 열다섯 살에 살인을 저질렀고, 30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정말 돌아온 걸까? 아니면 그의 시간은 여전히 30년 전, 그날에 멈춰 있는 걸까?
한순간의 실수로 던져진 형벌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조각내는지, 그리고 그 조각들은 서로 어떻게 맞물려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한 번 발을 헛디디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세상이 있다는 걸.
빈센트 킹은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더치스는 그를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결코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죄가 운명이 된다면, 구원은 무엇으로 가능한 걸까?
아니, 과연 구원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옥

사랑은 때때로 가장 잔인한 감옥이 된다.
더치스가 엄마를 사랑했기에 그녀는 엄마에게 버림받았고, 동생을 사랑했기에 그를 위해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사랑은 그녀를 세상과 단절시켰고,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리게 했다.
그녀의 사랑은 희망을 품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무기가 되었고, 결국 사랑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했던 사랑이 끝내 그녀를 구원할 수 있을까?
사랑은 때로 잔인한 덫이 되고,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더욱 깊은 절망으로 이어진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신기루와 같다.
손에 닿는 순간 흩어지고, 붙잡는 순간 사라진다.
더치스는 끝까지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기대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에야 비로소 자유가 주어졌다.

💡끝과 시작은 하나의 선 위에 있다

비극은 종종 반복된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막지 못했던 사건들.
더치스의 삶은 끊임없이 끝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노란 드레스에 피를 묻히고, 총을 들고 말을 타고 달려 나갔을 때,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끝은 진짜 끝이 아니며, 어떤 시작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더치스는 결국 길을 떠났다.
그녀의 과거를 두고, 그녀의 이름을 두고, 그녀의 모든 분노를 가슴 깊이 묻어둔 채로.
그리고 그녀가 떠난 후, 그녀가 남긴 흔적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결국 더치스는 무법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고,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존재했다.
그게 그녀의 이야기의 끝이든, 혹은 새로운 시작이든, 중요한 건 단 하나다.
그녀는 더치스 데이 래들리였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약돌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비채 @drviche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약돌> - 작은 존재들의 커다란 이야기

📌 책 소개

조약돌 하나가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갈매기는 모래를 모아 쉴 곳을 만들고 싶어 하고, 조화 장미는 생화들 틈에서 자기 자리를 고민한다.
살아 있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똑같이 외롭고 아프고 꿈꾼다.
43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는 세상을 비스듬히 바라보는 존재들이 있다.
사람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말과 표정은 낯익다.
누군가는 강가에 버려진 느낌이고, 누군가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여행자다.
이야기는 짧지만 질문은 길다.
그 질문은 대개 힘 있는 목소리에서가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들려온다.
시인은 그 조용한 목소리에 오래 귀 기울인다.
뭘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서평

💡조약돌의 선택을 기다리는 마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라고 느낄 때가 있다.
강가에 깔린 조약돌처럼, 무수히 많은 것들 사이에 섞여 자신만의 무늬나 결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는 존재로 남는다.
하지만 안경 쓴 한 남자의 손에 쥐어졌을 때 조약돌은 생각한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어떤 존재든, 언젠가는 선택받고 싶은 순간을 기다린다.
삶에서 건져 올려질 기회를 기다리며 스스로의 가치를 간절히 믿는 마음.
그 작은 돌멩이 하나의 내면이 이렇게까지 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선택은 타인의 몫이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는 태도는 분명 스스로의 것이었다.

💡낙타는 기다리지만, 떠난다

기다림은 사랑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낙타는 젊은이를 기다리다가, 결국 떠난다.
더는 머물 수 없어서다.
삶에서 누군가를 끝까지 기다리고 싶지만 끝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은 언제든 벌어진다.
그런 순간엔 마음 한켠이 찢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낙타는 그저 떠나지 않는다.
“저기 멀지 않은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 고 말하며 방향을 남긴다.
그 한마디로 남은 자는 길을 잃지 않는다.
완전한 이별 대신 다음 길을 가리키는 작별.
낙타의 떠남은 외면이 아니라 전하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때, 남겨야 할 건 정답이 아니라 방향일지도 모른다.

💡바다 앞에서 망설일 때 필요한 말

“냇물이나 바닷물이나 똑같은 물이야.”
겁을 잔뜩 먹고 바다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다.
스스로는 너무 작고 작아서, 거대한 세상에 밀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세상도, 나도 결국 같은 성분의 물로 이루어져 있다.
달라 보이는 건 내 마음이었을 뿐이다.
냇물로 흐르던 존재가 바다에 다다랐을 때, 오히려 스스로를 다시 이해하게 된다.
우화 속 물고기처럼 두려움을 품은 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야말로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첫걸음이다.
용기는 결코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해에서 시작된다.

💡꽃은 결국 피고야 만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오래 와도, 결국 꽃은 핀다.
개나리도, 목련도, 진달래도. 기다림이란 결국 지나가는 계절이고, 그 끝엔 반드시 봄비가 온다.
우화 속 나무들은 “차라리 봄이 안 오는 게 낫다” 고 툴툴거린다.
견디는 동안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이미 봄비가 가득 차 있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피어나는 꽃처럼,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 것이다.
꽃은 그저 기회를 기다렸을 뿐이다.

우리 마음속에도 봄비는 이미 머물고 있었던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장성남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클북 @slower_as_slow_as_possible 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 기억을 꺼내 쓰는 용기, 나를 돌보는 연습


📌 책 소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개 흐릿하거나 어렴풋하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어, 삶의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멈춘 그 자리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저자는 자기 안에 잠들어 있던 어린 아이를 깨운다.

억눌렸던 감정, 버거웠던 관계, 말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종이에 하나씩 내려앉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

그 과정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조우한다.

어린 시절 기억쓰기는 단지 과거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을 현재로 데려오는 일이며, 해묵은 감정을 안전하게 다루는 연습이고, 더는 과거에 붙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풀어주는 실천이다.

글을 쓰며 눈물 흘리고, 눈물 속에서 위로를 얻으며, 저자는 오랜 시간 자신을 가두던 감정의 무게를 덜어낸다.

기억을 다시 쓰는 일은 곧,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일이다.


💬서평


💡기억은 멈춘 시간 속에 있다


사람은 왜 갑자기 무너질까.

뚝 하고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일상이 꺾이는 그 순간, 사실은 예고돼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저자는 그런 순간마다 자신 안의 어린 시절을 찾는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가난, 수치심, 분노, 고독 같은 단어들이 그 기억에 달라붙어 있었다.

거기엔 위로받지 못한 감정들이 살아 있었다.

저자는 그 기억들을 애써 꺼내어 적는다.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작고 어린 나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쓴다.

이 글은 마치 셀프 인터뷰처럼 자기 내면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그 기억을 말로 옮기는 순간, 억눌려 있던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억이 나를 멈추게 했다면, 글쓰기는 다시 걸어가게 만든다.


💡나를 용서하는 연습


분명히 사소한 일이었는데 마음을 덜컥 다쳐버리는 순간이 있다.

반복적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실수 하나에도 과하게 자책하는 나.

그 뿌리를 따라 내려가보면 늘 익숙한 장면과 마주한다.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 설명하지 못한 감정들.

저자는 그 기억을 써 내려가면서 묻는다.

왜 나는 늘 나를 미워했을까? 누구에게 칭찬받아야 겨우 살아있다고 느꼈을까?

그 질문들에 대해 화려한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다만 글을 쓰며 나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쓰는 과정은 곧 해석의 과정이기도 하다.

무작정 울기만 했던 기억이 단어로 붙잡히고, 흐릿하던 감정에 이름이 붙여진다.

나를 용서한다는 건 그 기억을 무시하거나 덮는 일이 아니다.

끝까지 함께 들여다보고, 마침내 그 손을 놓아주는 일이다.


💡나를 위한 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저자는 쉰 살에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난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다시 밟고, 담 너머로 수치심을 날려보낸다.

그 장면을 읽는 동안, 글이란 게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SNS에 올릴 글, 누군가의 칭찬을 얻기 위한 글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오래도록 숨겨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글이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살아 있는 행위다. 오히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순간, 그 글은 힘을 잃는다.

저자가 보여주는 ‘기억쓰기’ 는 단단하고 묵직하다.

아무리 사소한 장면이어도, 거기에 내 감정이 실려 있다면 중요한 기록이 된다.

그래서 한 줄 한 줄 써나갈수록 저자는 가벼워지고 단단해진다.

기억은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멈춰 있던 기억이 써 내려가며 비로소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의식


기억을 쓰는 일은 마치 하나의 의식 같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고요하게 열리는 의식.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치르는 제사처럼.

저자는 오래도록 외면해온 기억을 하나씩 불러내고, 그 기억 속 ‘어린 나’ 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이제 나랑 같이 가자.”

쓰는 동안 흘린 눈물은 울음을 위한 눈물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을 꺼내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자신을 꺼내온 다음엔 닦아준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악수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글을 다 쓰고 나면, 그 글은 나의 새로운 출발선이 되어 있다.

글쓰기는 더 이상 붙잡히지 않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기억을 다시 썼다는 건, 이제 그 기억이 나를 붙잡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떠나보내고, 남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까치 @kachibooks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웃사이더> -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 책 소개


우리는 종종 몸이 아픈 사람보다 마음이나 인지에 이상이 생긴 사람을 더 두려워한다.

익숙했던 사람이 낯설게 변하는 것, 즉 자아의 변화는 단순한 병의 문제가 아니다.

뇌질환은 사람을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바꿔놓을 수 있다.

이 책은 자아와 정체성이 뇌 기능에 얼마나 의존적인지, 그 뇌가 변했을 때 삶과 관계, 소속감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환자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7명의 환자가 겪은 뇌 손상과 그로 인해 일어난 인지·행동의 변화는 의학적 정보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억을 잃고 타인을 의심하게 되거나, 손발의 위치를 인지하지 못해 일상을 망가뜨리는 사람들, 혹은 환시 때문에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사례 등은 인간의 ‘나다움’ 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아란 견고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와 감각과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곱씹게 한다.


💬서평


💡나를 ‘나’ 라고 여기는 기준


기억은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기억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도, 자아가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등장하는 한 환자는 자신이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은 기억 장애 때문에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일 뿐이다.

자아의 인식은 단순한 정보 보관이 아니라, 그 정보를 현재의 맥락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또 다른 환자는 자신의 손과 발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평범한 일상 동작이 무너진다.

뇌가 우리 몸의 상태를 추적하고 조율하지 못하면, 나라는 사람은 행동 하나조차 책임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나는 나의 몸, 기억, 감각, 주변과의 관계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종합체이고, 그중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자아의 감각은 쉽게 흔들린다.

뇌는 단지 장기가 아니라, ‘나’ 를 가능하게 하는 무대다.


💡사회적 자아와 배제의 두려움


많은 환자들이 고통받은 건 단지 인지 장애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질환이 그들을 사회에서 밀어낸 순간부터 더 큰 고통이 시작된다.

어떤 환자는 환시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기고, 자신이 ‘기피 대상’ 이 되었다는 자각에 괴로워한다.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데 뇌가 오작동하면서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집단은 그 사람을 아웃사이더로 밀어낸다.

고립은 질환의 결과이자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정체성이란 것은 사회 속 역할, 기대,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뇌가 무너지면, 정체성도 무너지고, 정체성이 무너지면 사회적 자리도 위태로워진다.

이 악순환은 결국 정체성의 상당 부분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견고하고 고유한 것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환자들의 사례는 그 자아가 뇌 기능에 따라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보여준다.

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이 생기자, 같은 사람이 완전히 다른 행동을 보인다.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뇌가 그렇게 반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저 사람은 이상해졌어” 라고 단순화해 버리면, 우리는 자아의 복잡성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자아란 뇌의 다양한 기능들이 일정하게 작동할 때만 유지되는 섬세한 균형 위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조차도 상황이 달라지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아는 흐르는 개념이다.


💡경계선에 선 이들, 그리고 우리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이 ‘남’ 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사고, 병, 노화로 인해 그 경계선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 기능 저하를 겪는다.

자아는 나만의 것이지만, 동시에 환경과 사회적 피드백을 통해 강화된다.

그런 점에서 경계선에 선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뇌의 구조와 기능은 과학의 영역이지만, 그로 인해 바뀌는 삶과 관계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자아는 뇌의 작동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자아를 우리가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는 결국 타인과의 관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계선에 선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가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