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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ㅣ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 이 책은 비채 @drviche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연인> -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길을 떠나는 법📌 책 소개창고 안 쇠줄에 묶인 물고기 풍경은, 자신과 꼭 닮은 또 다른 풍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세상 밖을 꿈꾼다.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바깥세상에 뛰어들고,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간다.겁 많고 순한 이 물고기는 때로 위협을 만나고, 누군가의 친절도 마주한다.이야기 속에는 풍경뿐 아니라, 말하는 비둘기와 개구리, 고양이 같은 익숙한 존재들이 등장한다.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단순하지만 의외로 곱씹게 만든다.사랑은 뭘까,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 죽음은 진짜 끝일까.짧은 문장으로 묻는 질문이 은근히 깊고, 전체 이야기는 오래된 동화 같지만 현재와 멀지 않다.💬서평💡바다를 모르던 물고기, 날아오르다풍경은 쇠줄에 묶여 운주사의 창고에 갇혀 있던 물고기다.말도 걷지도 못하는 존재였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사랑이나 자유 같은 말은 입에 올리기도 전에, 풍경은 본능처럼 자신을 묶은 쇠줄을 끊었다.이건 바닥에서부터 꿈틀거리는 탈출기다.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해 본 사람이라면,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풍경은 자유로 나아간 게 아니라 그리움에 밀려 나왔다.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사랑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하나로.그래서 날아오른 순간은 감동이라기보다 땀이 난다.현실의 벽이 느껴지기 때문이다.💡죽음과 삶을 나누지 않는 시선풍경이 죽음을 묻자, 한 인물이 파도 이야기를 꺼낸다.절벽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단단한 논리나 철학 없이 설명된 이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설득력이 있다.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말은 진부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기교 없이 제자리에 있다.풍경은 그 말을 듣고 울지 않는다.다만 한 걸음을 내디딜 뿐이다.누군가의 죽음 이후 삶을 계속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그저 한마디 설명일지도 모르겠다.그래서 이 장면이 인상적이다.죽음을 관념이 아니라 상황으로 보여주는 방식.파도는 사라지고, 바다는 그대로 있다는 말은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도시의 쓰레기와 비둘기의 발가락서울역은 풍경에게 낯선 세계다.처음 만난 잿빛 비둘기는 오른쪽 발가락이 하나뿐이다.나일론 줄에 엉켜 썩어버렸다고 한다.서울은 그런 곳이다.쓰레기처럼 흘려진 것이 생명을 해치는 곳.비둘기는 그걸 경고하지만, 풍경은 여전히 사랑을 기다린다.도시는 생존이 중심이다.누구도 보호해주지 않고, 약한 자는 순식간에 다치거나 사라진다.그런데도 누군가는 누군가를 기다린다.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희망이 아니다.희망을 말하지 않고도 누군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 그것이 도시를 견디는 방식이라는 걸 보여준다.사랑이 목적이 아니라 생존의 동력이 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지금 즉시 사랑하라’ 는 말의 무게모든 게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햇살도, 건물도, 기차도. 풍경은 그런 순간을 맞이한다.누군가와 연결되었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단순한 진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중이다.그러나 이야기의 진짜 주제는 ‘지금 즉시 사랑하라’ 는 문장에 있다.이건 시간을 기다리다 무뎌진 이들에게 던지는 채찍이다.사랑은 계획해서 하는 게 아니라, 숨을 쉬는 일처럼 그냥 지금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뒤로 미루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되기도 하니까.풍경은 그렇게 매 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