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비채 @drviche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약돌> - 작은 존재들의 커다란 이야기

📌 책 소개

조약돌 하나가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갈매기는 모래를 모아 쉴 곳을 만들고 싶어 하고, 조화 장미는 생화들 틈에서 자기 자리를 고민한다.
살아 있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똑같이 외롭고 아프고 꿈꾼다.
43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는 세상을 비스듬히 바라보는 존재들이 있다.
사람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말과 표정은 낯익다.
누군가는 강가에 버려진 느낌이고, 누군가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여행자다.
이야기는 짧지만 질문은 길다.
그 질문은 대개 힘 있는 목소리에서가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들려온다.
시인은 그 조용한 목소리에 오래 귀 기울인다.
뭘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서평

💡조약돌의 선택을 기다리는 마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라고 느낄 때가 있다.
강가에 깔린 조약돌처럼, 무수히 많은 것들 사이에 섞여 자신만의 무늬나 결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는 존재로 남는다.
하지만 안경 쓴 한 남자의 손에 쥐어졌을 때 조약돌은 생각한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어떤 존재든, 언젠가는 선택받고 싶은 순간을 기다린다.
삶에서 건져 올려질 기회를 기다리며 스스로의 가치를 간절히 믿는 마음.
그 작은 돌멩이 하나의 내면이 이렇게까지 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선택은 타인의 몫이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는 태도는 분명 스스로의 것이었다.

💡낙타는 기다리지만, 떠난다

기다림은 사랑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낙타는 젊은이를 기다리다가, 결국 떠난다.
더는 머물 수 없어서다.
삶에서 누군가를 끝까지 기다리고 싶지만 끝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은 언제든 벌어진다.
그런 순간엔 마음 한켠이 찢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낙타는 그저 떠나지 않는다.
“저기 멀지 않은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 고 말하며 방향을 남긴다.
그 한마디로 남은 자는 길을 잃지 않는다.
완전한 이별 대신 다음 길을 가리키는 작별.
낙타의 떠남은 외면이 아니라 전하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때, 남겨야 할 건 정답이 아니라 방향일지도 모른다.

💡바다 앞에서 망설일 때 필요한 말

“냇물이나 바닷물이나 똑같은 물이야.”
겁을 잔뜩 먹고 바다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다.
스스로는 너무 작고 작아서, 거대한 세상에 밀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세상도, 나도 결국 같은 성분의 물로 이루어져 있다.
달라 보이는 건 내 마음이었을 뿐이다.
냇물로 흐르던 존재가 바다에 다다랐을 때, 오히려 스스로를 다시 이해하게 된다.
우화 속 물고기처럼 두려움을 품은 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야말로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첫걸음이다.
용기는 결코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해에서 시작된다.

💡꽃은 결국 피고야 만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오래 와도, 결국 꽃은 핀다.
개나리도, 목련도, 진달래도. 기다림이란 결국 지나가는 계절이고, 그 끝엔 반드시 봄비가 온다.
우화 속 나무들은 “차라리 봄이 안 오는 게 낫다” 고 툴툴거린다.
견디는 동안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이미 봄비가 가득 차 있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피어나는 꽃처럼,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 것이다.
꽃은 그저 기회를 기다렸을 뿐이다.

우리 마음속에도 봄비는 이미 머물고 있었던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장성남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클북 @slower_as_slow_as_possible 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억이 나를 멈추게 한다면> - 기억을 꺼내 쓰는 용기, 나를 돌보는 연습


📌 책 소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개 흐릿하거나 어렴풋하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어, 삶의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멈춘 그 자리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저자는 자기 안에 잠들어 있던 어린 아이를 깨운다.

억눌렸던 감정, 버거웠던 관계, 말하지 못했던 기억들이 종이에 하나씩 내려앉는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

그 과정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조우한다.

어린 시절 기억쓰기는 단지 과거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을 현재로 데려오는 일이며, 해묵은 감정을 안전하게 다루는 연습이고, 더는 과거에 붙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풀어주는 실천이다.

글을 쓰며 눈물 흘리고, 눈물 속에서 위로를 얻으며, 저자는 오랜 시간 자신을 가두던 감정의 무게를 덜어낸다.

기억을 다시 쓰는 일은 곧,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일이다.


💬서평


💡기억은 멈춘 시간 속에 있다


사람은 왜 갑자기 무너질까.

뚝 하고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일상이 꺾이는 그 순간, 사실은 예고돼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저자는 그런 순간마다 자신 안의 어린 시절을 찾는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가난, 수치심, 분노, 고독 같은 단어들이 그 기억에 달라붙어 있었다.

거기엔 위로받지 못한 감정들이 살아 있었다.

저자는 그 기억들을 애써 꺼내어 적는다.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작고 어린 나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쓴다.

이 글은 마치 셀프 인터뷰처럼 자기 내면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그 기억을 말로 옮기는 순간, 억눌려 있던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억이 나를 멈추게 했다면, 글쓰기는 다시 걸어가게 만든다.


💡나를 용서하는 연습


분명히 사소한 일이었는데 마음을 덜컥 다쳐버리는 순간이 있다.

반복적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실수 하나에도 과하게 자책하는 나.

그 뿌리를 따라 내려가보면 늘 익숙한 장면과 마주한다.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못했던 부끄러운 기억, 설명하지 못한 감정들.

저자는 그 기억을 써 내려가면서 묻는다.

왜 나는 늘 나를 미워했을까? 누구에게 칭찬받아야 겨우 살아있다고 느꼈을까?

그 질문들에 대해 화려한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다만 글을 쓰며 나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쓰는 과정은 곧 해석의 과정이기도 하다.

무작정 울기만 했던 기억이 단어로 붙잡히고, 흐릿하던 감정에 이름이 붙여진다.

나를 용서한다는 건 그 기억을 무시하거나 덮는 일이 아니다.

끝까지 함께 들여다보고, 마침내 그 손을 놓아주는 일이다.


💡나를 위한 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저자는 쉰 살에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난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다시 밟고, 담 너머로 수치심을 날려보낸다.

그 장면을 읽는 동안, 글이란 게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SNS에 올릴 글, 누군가의 칭찬을 얻기 위한 글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오래도록 숨겨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글이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살아 있는 행위다. 오히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순간, 그 글은 힘을 잃는다.

저자가 보여주는 ‘기억쓰기’ 는 단단하고 묵직하다.

아무리 사소한 장면이어도, 거기에 내 감정이 실려 있다면 중요한 기록이 된다.

그래서 한 줄 한 줄 써나갈수록 저자는 가벼워지고 단단해진다.

기억은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멈춰 있던 기억이 써 내려가며 비로소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의식


기억을 쓰는 일은 마치 하나의 의식 같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고요하게 열리는 의식.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치르는 제사처럼.

저자는 오래도록 외면해온 기억을 하나씩 불러내고, 그 기억 속 ‘어린 나’ 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이제 나랑 같이 가자.”

쓰는 동안 흘린 눈물은 울음을 위한 눈물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을 꺼내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자신을 꺼내온 다음엔 닦아준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악수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글을 다 쓰고 나면, 그 글은 나의 새로운 출발선이 되어 있다.

글쓰기는 더 이상 붙잡히지 않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기억을 다시 썼다는 건, 이제 그 기억이 나를 붙잡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떠나보내고, 남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까치 @kachibooks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웃사이더> -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 책 소개


우리는 종종 몸이 아픈 사람보다 마음이나 인지에 이상이 생긴 사람을 더 두려워한다.

익숙했던 사람이 낯설게 변하는 것, 즉 자아의 변화는 단순한 병의 문제가 아니다.

뇌질환은 사람을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바꿔놓을 수 있다.

이 책은 자아와 정체성이 뇌 기능에 얼마나 의존적인지, 그 뇌가 변했을 때 삶과 관계, 소속감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환자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7명의 환자가 겪은 뇌 손상과 그로 인해 일어난 인지·행동의 변화는 의학적 정보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억을 잃고 타인을 의심하게 되거나, 손발의 위치를 인지하지 못해 일상을 망가뜨리는 사람들, 혹은 환시 때문에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사례 등은 인간의 ‘나다움’ 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아란 견고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와 감각과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곱씹게 한다.


💬서평


💡나를 ‘나’ 라고 여기는 기준


기억은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기억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도, 자아가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등장하는 한 환자는 자신이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은 기억 장애 때문에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일 뿐이다.

자아의 인식은 단순한 정보 보관이 아니라, 그 정보를 현재의 맥락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또 다른 환자는 자신의 손과 발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평범한 일상 동작이 무너진다.

뇌가 우리 몸의 상태를 추적하고 조율하지 못하면, 나라는 사람은 행동 하나조차 책임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나는 나의 몸, 기억, 감각, 주변과의 관계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종합체이고, 그중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자아의 감각은 쉽게 흔들린다.

뇌는 단지 장기가 아니라, ‘나’ 를 가능하게 하는 무대다.


💡사회적 자아와 배제의 두려움


많은 환자들이 고통받은 건 단지 인지 장애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질환이 그들을 사회에서 밀어낸 순간부터 더 큰 고통이 시작된다.

어떤 환자는 환시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기고, 자신이 ‘기피 대상’ 이 되었다는 자각에 괴로워한다.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런데 뇌가 오작동하면서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집단은 그 사람을 아웃사이더로 밀어낸다.

고립은 질환의 결과이자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정체성이란 것은 사회 속 역할, 기대,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뇌가 무너지면, 정체성도 무너지고, 정체성이 무너지면 사회적 자리도 위태로워진다.

이 악순환은 결국 정체성의 상당 부분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견고하고 고유한 것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환자들의 사례는 그 자아가 뇌 기능에 따라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보여준다.

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이 생기자, 같은 사람이 완전히 다른 행동을 보인다.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뇌가 그렇게 반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저 사람은 이상해졌어” 라고 단순화해 버리면, 우리는 자아의 복잡성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자아란 뇌의 다양한 기능들이 일정하게 작동할 때만 유지되는 섬세한 균형 위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조차도 상황이 달라지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아는 흐르는 개념이다.


💡경계선에 선 이들, 그리고 우리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이 ‘남’ 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사고, 병, 노화로 인해 그 경계선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 기능 저하를 겪는다.

자아는 나만의 것이지만, 동시에 환경과 사회적 피드백을 통해 강화된다.

그런 점에서 경계선에 선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뇌의 구조와 기능은 과학의 영역이지만, 그로 인해 바뀌는 삶과 관계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자아는 뇌의 작동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자아를 우리가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는 결국 타인과의 관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계선에 선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가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범준에 물리다 - 양자역학에서 스파이더맨까지 물리가 쉬워지는 마법 같은 과학책!
김범준 지음 / 알파미디어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chae_seongmo 를 통해 알파미디어 @alpha_media_books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범준에 물리다> - 물리학은 사소한 질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 책 소개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과학 커뮤니케이터 김범준은 일상의 궁금증을 물리학으로 풀어낸다.
상상에 가까운 질문, 농담처럼 시작한 호기심을 물리학의 언어로 차분히 설명한다.
전자레인지에 사람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앤트맨처럼 작아지는 건 가능한지, 영구기관은 왜 실현될 수 없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따져본다.
학문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일상의 언어로 과학의 원리를 연결한다.
과학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서평

💡농담에서 출발한 질문이 과학을 만든다

“전자레인지에 사람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봤지만 대놓고 말하긴 민망한 질문이다.
과학자는 이 농담 같은 질문을 웃어넘기지 않는다.
전자기파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수분이 많은 근육 조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바깥쪽 1cm 피부가 먼저 익는 이유는 전자기파의 침투 깊이 때문이다.
피부 속 수분이 스스로 운동하며 발생시키는 열 때문에 ‘안에서부터’ 화상이 생긴다.
누구나 던질 수 있는 가벼운 상상을, 과학은 논리로 붙잡는다.
물리학의 출발점이 되는 질문은 언제나 실생활 가까이에 있다.
무해해 보이는 호기심이 과학에 닿으면, 진지한 탐구로 바뀌는 것이다.
과학의 문턱은 높지 않다.
다만 그것을 넘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마음

세상엔 물리 법칙을 모른다기보다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운동화만 신고 하늘을 날 수 있다거나, 에너지를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보다 신념을 따른다.
과학은 감정을 설득하진 않는 대신 원리로 설명한다.
유체역학, 고전역학, 열역학 법칙이 왜 그런 꿈을 불가능하게 만드는지를 천천히 짚는다.
제1종 영구기관은 들어간 에너지보다 더 많은 출력을 내야 하는데, 그것은 자연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원리를 설명해도 사람들은 “아니야, 내가 잘 만들면 돼” 라고 말한다.
과학이 답을 내놓아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 고집을 두고, 저자는 웃기보다 말린다.
말리는 방식이 딱딱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드러난다.
과학은 고지식한 학문이 아니라, 냉정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방식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상상은 자유지만 현실은 원리를 따른다

앤트맨은 과학적 상상에서 출발한다.
원자가 대부분 빈 공간이니, 전자를 원자핵 쪽으로 가까이 당기면 원자의 부피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물음은 얼핏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전자기력이 수천만 배 이상 강해져야 그 변화가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우주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별도, 행성도, 인간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영화의 상상력은 흥미롭지만, 물리학자에게는 그것이 왜 현실에서 성립하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상상은 언제나 자유지만, 현실은 원리를 따라야 한다.
물리학은 상상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설정을 과학적 언어로 해석하면서, 우리는 현실을 이해하는 또 다른 시선을 얻게 된다.
과학이 엉뚱한 상상을 무력화시키는 게 아니라, 진짜로 가능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이유다.

💡시간은 흐른다, 엔트로피처럼

커피는 식고, 방은 어지러워지고, 질서는 흐트러진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세상은 항상 더 어수선한 방향으로 향한다.
엔트로피는 바로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질서에서 무질서로, 집중에서 분산으로 향하는 방향.
아인슈타인조차 ‘절대 흔들리지 않는 법칙’ 이라 했던 이 개념은, 과학에서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는 가장 명료한 틀이다.
잉크 방울이 물속에 퍼지는 현상처럼, 엔트로피는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다.
고립된 시스템에서 시간은 곧 엔트로피의 증가와 같다.
과학은 이를 통해 변화의 방향을 설명한다.
단순한 정리 정돈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시스템이 에너지를 소비하며 무질서로 나아가는 경향성을 보여준다.
그걸 거꾸로 되돌리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질서는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해외 입양인입니다
미샤 블록 지음, 유동익 옮김, 차용 감수 / 이더레인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chae_seongmo 를 통해 이더레인 @iedereen20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해외 입양인입니다> - 사라진 이름을 찾아서

📌 책 소개

한국에서 태어나 네덜란드로 입양된 저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 없이 다른 이름과 다른 언어로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어릴 적 고아원 앞에서 찍힌 흑백사진 한 장 외에는 자신의 과거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단서가 없다.
성인이 된 후 그는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한국을 오가며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입양기관의 조작된 서류와 연락을 거부하는 생부, 그리고 자신에게조차 감춰졌던 과거였다.
그는 점차 입양의 구조적 문제와 마주하고, 개인의 삶이 어떻게 기록되고 지워지는지를 추적해간다.

💬서평

💡출발선 없는 삶

인생의 시작을 누가 기록하느냐에 따라 기억은 완전히 달라진다.
세 살 이전의 사진 한 장, 그것이 누군가의 유년을 대신하는 유일한 자료라면, 출발선조차 애매한 인생이 시작되는 셈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름, 출생지, 보호자 정보를 모두 타인의 손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것도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로 구성된, 왜곡된 기록들이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지만, 출발점이 명확하지 않기에 자꾸만 길을 잃는다.
누군가는 입양을 새로운 시작이라 포장하지만, 그 ‘새로움’ 은 너무 많은 것을 생략한 결과다.
시작점을 모르는 삶은 결국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든다.

💡버려졌다는 감각

누군가에게 버려졌다는 감정은 막연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구체적인 방식으로 일상에 스며든다.
저자는 항상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잘하려고 애쓰고, 관계에서 손해 보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려 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버려질 수도 있다’ 는 전제를 품은 삶에서 비롯된다.
아이가 한 번 외면당하면, 이후의 관계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를 먼저 배려하고, 불편함을 참고, 이탈보다는 잔류를 선택하게 된다.
버려졌다는 경험은 관계의 기준을 변화시킨다.
타인에게 맞춰 살아가는 것이 습관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존재의 조작

입양기관은 저자를 ‘부모 미상의 유기아동’ 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모 중 한 명이 직접 아이를 입양기관에 데려갔고, 서류에는 거짓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 조작은 한 인간의 정체성과 과거를 근거 없이 왜곡하고 지워버린, 구조적 침묵이다.
저자는 친어머니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채로 수십 년을 살아야 했고, 그 정보 하나를 얻기 위해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하고 라디오 방송까지 나서야 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틀 안에서 살아온 시간은, 정체성을 구성할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는 불완전한 기록에 불과했다.
한 인간의 삶이 행정 편의를 위해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이라는 게 문제다.

💡재회는 끝이 아니다

기적처럼 친모를 찾는다.
TV 속 재회 장면처럼 뜨겁게 껴안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서로를 찾기까지의 과정은 극적이지만, 이후엔 낯섦과 시간이 쌓인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살아왔고, 저자 역시 새로운 문화권에서 자라왔다.
재회는 단절된 과거를 되돌려주는 게 아니라, 그 사이의 공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재회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 감정은 단숨에 정리되지 않는다.
회복은 만남으로 완성되지 않고, 이후의 관계에서 천천히 조율된다.
애초에 재회가 해답이라고 믿었던 생각 자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