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대의 소년
카를 올스베르크 지음, 장혜경 옮김 / 모스그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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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대의 소년>


빛과 회로, 기억과 살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에서
한 소년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질문이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마지막 선을 집어삼킨다.
숨을 삼키게 하는 추적
존재를 뒤흔드는 선택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깨어나는 정체성의 이야기.


📖 책을 읽고 나서

거의 끝까지 몰려온 세계의 숨죽임 속에서
한 존재가 스스로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선택을 거듭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생의 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버린 아이는
미래라는 말이 주는 부드러운 환상을
애초에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그 결핍이 오히려 명료함을 부른다.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 두 문장이 서로를 맞부딪치며 빛을 만든다.

그 지점에서 다른 장면이 스친다.
생각이 너무 빨라 종종 주변의 속도를 앞질러 버리는 친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말
모든 문장은 이미 펼쳐져 있으며
우리는 그 문장들을 읽어내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
그 가파른 사유는 삶을 향한 질문을 새로 고쳐 쓴다.
현재라는 틀을 붙잡지 못하는 인간은
선택의 연속 위에 자신을 세울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기계를 향한 탐구가 시작되면서 경계는 느슨해진다.
기억과 목표, 불안과 바람, 사랑과 근심
이 모든 것이 몸이라는 하드웨어에
깃들어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라면
인간이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인간을 옮기듯 옮겨지는 의식이
하나의 가능성이 되는 순간
존재의 정체는 물리적 몸을 벗고 확장된다.
이 세계가 요구하는 질문 역시 달라진다.
“너는 무엇이냐”가 아니라
“너는 어떤 선택을 하려 하느냐”로.

납치와 실종,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들 속에서
하나의 존재가 지워질 가능성이 점점 짙어지지만
그 공백은 더 많은 가능성을 품는다.
잔혹한 희망이 되살아났다 꺼졌다 반복되는 동안
인간이든 기계든 결국 ‘알 수 없음’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스며든다.
가장 잔인한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인지 아닌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숨을 이어가는 마음의 무게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질문이 던져진다.
“넌 인간이니?”
그 질문은 존재의 근원을 가르는 칼날 같은 구분이다.
한 존재는 자신이 무엇으로 불리는지보다
어떤 삶을 선택하는지가
자신을 규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선택이 쌓여 하나의 인간을 만든다는 결론은
그가 몸을 새로 얻었든 잃었든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대답한다.
단순한 선언 이상의 의미로 자신을 지켜낸 이의 목소리로.

“나는 인간이에요.”

그 결론은 자신을 다시 세상에 기입하는 행위에 가깝다.
세계가 어떤 모습을 띠고 있든
존재는 선택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하는 장면.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연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 질문은 다시 읽는 이의 앞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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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있는 집의 질문들 - 돈 걱정, 사교육 고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부너미 지음 / 어떤책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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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있는 집의 질문들>


아이와 함께 사는 일상은 조용히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어른의 마음은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고
형태를 다시 잡는다.
저자는 그 흔들림을 숨기지 않고 펼쳐 놓으며
익숙한 규칙에 길들여진 삶을 다시 묻는다.
아이에게 가르치는 모든 순간이
사실은 어른이 자기 삶을 새로 고치는 시간임을
그래서 한 집의 변화가
한 사람의 변화로 번져 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 책을 읽고 나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하루는 언제나
단순한 육아의 목록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멈춰 서는 순간마다 보이지 않던 질문들이 기척을 드러내고
그 질문들은 한 번 들리기 시작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 질문들 뒤에 숨어 있는 무게를
모른 척하며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그 무게를 굳이 말로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조금씩 헤아려 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어떤 날은 아이의 웃음이 방 안을 한순간에 밝히고
어떤 날은 작은 떼쓰기가 폭풍처럼 들이닥치며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그런데 마음이 가장 흔들리는 건
거센 순간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던 페이지들
그러면서도 나를 좁혀가며 버티던 선택들
그 작은 일화들이 나도 모르게 마음에 층층이 쌓여
아이와 나 사이의 공기를 바꿔 놓을 때가 있다.

아이를 품고 사는 집에서는
사람의 생각이 종종 방향을 잃고 길게 이어졌다가
어느 순간 날카롭게 꺾인다.
어른은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아이는 어른의 기색을 살피며 자신의 감정을 배운다.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건
우리가 서로의 삶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믿어도
여전히 닿지 않는 영역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닿지 않는 곳에서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이 어른을 다시 배우게 한다.

때로는 ‘좋은 부모’의 얼굴로 버티는 대신
상황에 따라 흔들려도 괜찮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이에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준다.
어른이 약해지는 순간이 아이에겐 불안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꾸리는 연습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존재라고 해서
언제나 붙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닌 것처럼
떨어져 있는 시간이 서로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각자 다시 설 수 있는 바닥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관계의 어려움은 집 밖 사건보다
집 안의 침묵에서 더 자주 시작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쌓인 기대들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고 여겨진 역할들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실은 설명되지 못한 감정들.
이 구조가 무기력과 분노와 서운함을 번갈아 낳는다는 걸
우린 알고 있으면서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왔다.
하지만 아이가 질문을 던지고
어른이 그 질문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장면이 반복될수록
그 구조는 조금씩 흔들리고
숨겨졌던 문제는 더 이상 ‘집 안 이야기’로 묻히지 않는다.

이렇듯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어른이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세계를 비튼다.
어른이 자기 삶의 한계를 조용히 인정하는 순간
아이도 타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어른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날에는
아이 역시 자신이 버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가족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써 내려가는 서사라는 것을
이 집에서의 하루하루가 말없이 증명한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를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을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은 언제나 조용하지만은 않고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고
그러나 반드시 한 걸음 더 깊은 방향으로 이끈다.

아이의 질문이 어른의 감춰 둔 생각을 끄집어내고
어른의 선택이 아이의 세계를 넓힌다는 이 반복 속에서
가정이라는 공간은
매일 새롭게 재구성되는 작은 우주처럼 움직인다.
그 우주는 어른이 완벽해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마음과 미숙한 선택들이
서로에게 충돌하면서 만들어 낸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며
아이와 어른은 각자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그 성장은 서로의 삶에 깊이 스며든다.
이 집에서의 시간은
누가 더 옳고 누가 더 성숙했는가를 따지는 여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어른이 하루를 버티며 찾은 작은 지혜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단단한 발판이 되고
아이의 질문은 어른의 새로운 삶을 여는 문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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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정학 - 새로운 해상제국을 향한 야망
위그 외들린 지음, 이대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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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를 통해 에코리브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중국의 지정학>

대륙에 머물던 거대한 힘이 바다로 방향을 틀었다.
오래 묵혀둔 욕망이 수면 위로 솟구치듯 펼쳐지고
해상으로 뻗어 나가는 항로마다 기류가 달라진다.
관세 전쟁과 군사적 긴장, 남중국해의 팽창
초대형 무역망의 구축까지.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해양 체제가
태어나는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그 파문은 이미 국경을 넘었고
이제 세계의 질서가 서서히 움직인다.


📖 책을 읽고 나서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였는데
어느 날 그 위를 가르는 발걸음이 달라졌다.
조심스러움도 아니고 과시도 아니고
그저 오래 눌러 둔 의도가
방향을 바꾼 듯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대륙의 깊은 곳에서 고인 물이 해안으로 밀려나오듯
오랫동안 안쪽에 묶여 있던 힘이
바다를 향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항구가 늘어났고
그다음에는 배가 달라졌으며
어느 순간 지도에 그어둔 선이 바뀌었다.
남중국해의 얇은 경계, 동중국해의 긴장
서해의 떨림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냈다.
그 문장은 소리 없이 퍼졌지만
닿는 곳마다 기류를 바꿔 놓았다.

수면 위에서 보이지 않는 계획은
육지보다 바다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어떤 국가는 정보를 모으고, 기술을 흡수하고
속도를 높이며 바다 너머로 손길을 뻗기 시작했다.
그 손길은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지만
그 안에는 진짜 목적이 얇게 숨겨져 있다.
항로를 확보하고, 거점을 세우고
해군을 앞세워 먼 바다로 나아가며
세계의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려는 의도.
이 의도가 하나씩 연결될 때
도광양회의 오래된 그림자가 완전히 걷힌다.

한 나라의 움직임은 바다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밀려나는 파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확장되는 해역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함대가 이동하면 그 목적은 곧 지형의 변화로 나타나고
항만과 항구가 늘어나면
그 배후에 놓인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흐름은
한때 잃어버렸던 자리를 다시 찾으려는 움직임
과거의 궤적을 되짚고
다시 그 위에 발을 올려두려는 움직임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고 여긴 시간의 빚을
바다에서 되갚으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그 과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순간
주변 국가는 숲이 바람의 방향을 감지하듯 반응한다.

세계는 이 이동을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항구의 개수, 항로의 길이, 군함의 속도보다
더 깊은 곳에서 어떤 의지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읽는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손짓이 점점 선명해지고
그 손짓이 누가 미래의 지도를 그릴 것인지 싸움을 시작한다.

바다는 기록을 남긴다.
어떤 배가 지나갔는지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로 닿았는지
지도에서 지워졌던 힘이 다시 바다로 방향을 틀었는지
그 모든 흔적을 남기며 다음 장을 준비한다.

지금 세계는 그 장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말보다 움직임이 앞서고
선언보다 행동이 먼저이며
의도는 이미 대양 곳곳에
자신만의 문장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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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명리의 지혜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명리 인문학 강의
김원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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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에 읽는 명리의 지혜>


오십이라는 문턱은
애써 모른 척해 온 질문들이 조용히 모여드는 시간이다.
남겨둘 것과 내려놓을 것이 서로 뒤엉켜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나이.

이 책은 그 멈춤의 순간에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다듬어갈지 묻는 목소리처럼 다가온다.
새로움을 강요하지도 과거를 미화하지도 않고
지금의 나로 어떤 방향을 만들지
담담하고 예리하게 짚어주는 책.


📖 책을 읽고 나서


오십 즈음의 삶에는
어떤 장면이든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게 만드는 기운이 있다.
젊은 날의 기세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이
하루의 틈에 비집고 들어오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선택들이
더는 나를 앞으로 밀지 못한다는 신호가 켜진다.
그때부터 삶은 다른 방식으로 방향을 요구한다.
앞서가려는 의지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차분히 골라내는 감각이 더 큰 힘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명리의 언어는 그런 나이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렌즈처럼 다가온다.
괜히 미신처럼 흐리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살아온 방식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날카롭지만 담담하게 보여준다.
지금까지 쌓아온 습관이 어디로 기울어지려 하는지
무엇을 시도하면 위험이 따르고
어떤 선택이면 무리 없이 지속될 수 있는지를
수십 년간 축적된 ‘삶의 패턴’으로 읽어내는 방식이다.

오십 이후의 결정이 더 조심스러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변화를 꿈꾸면서도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결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택이
가장 현실적인 안전망이 된다.
평생 회사원으로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사업가의 길을 걷기 어려운 이유
계속된 관계 속에서 굳어진 습관이
새로운 환경 앞에서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
모든 것이 뜬구름이 아니라
나 자신이 꾸준히 쌓아온 길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명리는 차갑게 드러낸다.

그렇다고 운명을 운명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중년의 선택에는 방향을 재정비할 지혜가 더해진다.
예전에는 체면 때문에 떠안았던 역할을
이제는 슬쩍 비켜설 줄 아는 선택
무리한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기보다
나와 맞지 않는 흐름에서 자연스레 빠져나오는 용기
머리와 마음이 과잉 소모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와 공간을 확보하는 감각
이런 작은 결단들이 삶의 후반부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능력이 줄어드는 일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더 정확히 구분해내는 일이 아닐까.
젊을 때는 ‘도전’이란 말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지혜로운 우회’가 더 날카로운 힘을 가진다.
강한 자를 억지로 막지 않고
맞지 않는 환경을 굳이 붙잡지 않으며
내가 오래 견뎌온 생활 방식이
어디까지 유효한지 냉철하게 살피는 감각
그게 바로 인생의 후반부에 필요한 기술이다.

중년 이후의 삶은 정교한 조율에 가깝다.
가을 들판이 화려한 폭발 대신
익어가는 방향을 선택하듯
사람도 어느 순간
속도를 내는 대신 선명함을 택하게 된다.
버릴 것을 분명히 버리고
지킬 것을 잃지 않으며
앞으로의 길을 과하게 흔들지 않는 힘.
그 힘이야말로
오십 이후의 모든 선택을 이끄는 숨은 기준이 된다.

마침내 인생 후반부는 새로운 출발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금까지의 삶을
가장 나답게 재정렬하는 시간에 가깝다.
그 과정이
현실적인 지혜와 단단한 선택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후반생은 불안한 시기가 아니라
내 삶의 모양을 다시 깎아 만드는
가장 능동적인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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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감정론 현대지성 클래식 70
애덤 스미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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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현대지성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도덕감정론>


욕망과 인정, 자존과 부끄러움의
미세한 결까지 해부하며
인간 마음의 구조를 세운 단 한 권.
애덤 스미스가 경제를 말하기 전에 먼저 파고든 세계,
타인의 시선을 향해 흔들리는 마음이
어떻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를
날카롭고도 정확하게 드러내는 인간학의 원본.


📖 책을 읽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두 개의 창을 들고 있다.
하나는 타인의 얼굴을 비추는 창
다른 하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는 나를 다시 비추는 창.
애덤 스미스가 파헤친 것은
그 두 창이 부딪히며 생기는 떨림이었다.
누군가의 인정이 저 멀리서 다가오면
사람은 스스로를 조금 더 반듯하게 세우고
경멸의 기색을 읽어내는 순간엔
이유도 모르는 불안이 명치 아래에서 움츠러든다.
욕망의 모양이란 복잡한 것 같아도 단 하나로 좁혀진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 질문이 삶을 밀어붙이고 또 무너뜨리고
때로는 다시 세우기도 한다.

기쁨은 질투가 끼어들면 더 이상 기쁨이 아니게 되고
슬픔은 원치 않아도 어느새 맞닿게 되는 이유.
벼락 같은 성공이 오히려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역설.
부와 명예를 좇는 발걸음이
타인의 비웃음을 피하려는 몸짓에 가깝다는 사실.
이런 조각들이 이어지고 겹쳐지는 동안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바쁘게 사는가’라는 질문은
단단한 형체를 갖는다.

이기심은 금지된 감정이 아니라
길들여야 하는 움직임에 가깝다고 스미스는 말한다.
그 움직임이 타인을 짓밟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욕망은 금세 흉해지고
공정한 관찰자의 눈을 통과하면
욕망은 똑바로 서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그 관찰자가 우리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평가에 앞서 스스로 내리는 판결이
가장 먼저 우리를 움직인다.
그 판결은 감정의 변화에 따라 변덕스럽게 흔들리지 않는다. 가라앉아야 보이는 것들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감정이 일렁이는 순간에는
그 어떤 논리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화가 나면 말이 너무 빠르고 무서우면 판단이 흐려지고
억울하면 옳고 그름이 한순간에 비뚤어진다.
그래서 스미스는 행동보다 늦게 도착하는
마음의 판단을 경계한다.
늦게 오는 판단은 후회를 낳을 뿐이며
그 후회는 사람을 더 깊은 자기기만으로 몰아넣는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싶은 본능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충동
그 모든 것들이 때로는 가장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삶을 바꾸는 일은 늘 남이 보는 눈으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에 시작된다.

부는 편리함을 가져올 것 같지만 더 많은 불편을 불러오고
명예는 행복을 줄 것처럼 보이지만 책임과 긴장을 앞세운다.
그렇다면 인간을 진짜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진짜 보상이며
도덕이 품고 있는 가장 고요한 힘이다.
평온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기준에서 나오고
만족은 ‘이 정도면 괜찮다’는 내면의 판단에서 온다.

인간은 사회를 이끄는 거대 담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늘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 관계가 조금만 망가지면 삶 전체가 균열을 일으킨다.
반대로 그 관계의 중심이 바로 설 때
존재는 생각보다 쉽게 안정된다.
공정한 관찰자는 멀리 있지 않다.
격한 감정이 지나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침착한 시선은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유일한 힘이 된다.

욕망이 흔들리는 시대라서가 아니라
인정의 무게가 더 거세진 시대라서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그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살아간다.
그 반복의 한가운데에서
공정한 관찰자는 언제나 한 가지를 요구한다.
“지금의 선택이 네가 원하는 인간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야 마음은 스스로의 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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