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신경과학
프란체스카 마푸아 필비 지음, 홍욱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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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chae_seongmo 를 통해 에코리브르 @ecolivres_official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독의 신경과학> - 중독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
커피를 하루에 몇 잔이나 마시고 있는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있다.

“그냥 좋아서” 라고 말하지만
그게 정말 좋아서인지,
아니면 없으면 불안해서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날도 생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머릿속에서 ‘중독’ 이라는 단어가
조금 다른 색으로 떠올랐다.
 
 
🫧
뇌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회로가 반복을 유도하고,
어디서 끊어내야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단순히 '끊기 어려운 습관' 같은 말로
포장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약물은 말 그대로 뇌를 재설계하고,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마저 바꿔버린다.

그걸 멀리서 보는 게 아니라
안쪽에서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기분.

도파민 분비, 전두엽 기능, 시냅스 변화.
평소엔 관심도 없던 용어들이
지금은 손에 잡혔다.
 
 
🫧
중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단지 약물의 작용 원리를 넘어서
사람이 어떻게 무너지고,
어디서 되돌아오기 어려워지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게 파괴되는 건 아니었다.
‘감소’ 에서 시작해
‘기억’, ‘충동’, ‘회피’, ‘보상’ 같은 신호들이
하나씩 어긋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을 보고 있자니,
중독은 스스로 멈추지 못해서
생긴 게 아니라
애초에 뇌의 기능이
‘멈추지 못하게’ 설계돼버린 상태 같았다.
 
 
🫧
책 속에는 다양한 이미지가 등장한다.
MRI로 찍은 뇌 사진,
전두엽의 활성화 정도,
시냅스 구조의 변화.

말로 설명하면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이
그림으로는 쉽게 이해된다.
특히 반복적 약물 사용 후
신경세포의 가지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나뭇가지 모양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기억에 남았다.
 
 
🫧
약물이 단순히
감정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사람의 판단력, 충동 조절, 공감 능력까지
천천히 무디게 만든다는 설명이
낯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의 변화를
“사람이 달라졌다” 는 말로 퉁치기보다는
그 사람의 뇌 안에선
어떤 회로가 무너졌는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뇌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습관이 어떻게 구조로 고착되는지,
회복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를
차근차근 짚어간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중독에 빠진 누군가를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 말고,
그 안의 신호들을 생각하게 되니까.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지력’ 이
사실은 신경 전달 물질과
관련된 반응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중독은 너무 가까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 어딘가와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
중독을 말할 땐,
“그냥 끊으면 되잖아” 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떤 행동은 습관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뇌 안의 회로가 어긋나고,
감정이 무뎌지고,
스스로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무언가를 반복하고, 멈추지 못하고,
그 안에서 무너지는 사람을 보면
다음부턴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너 혼자 싸우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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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 이런 책 - 인생의 고비마다 펼쳐 볼 서른일곱 권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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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 이런 책> - 책이 나를 대신해주는 순간들
 
 
 
🫧
요즘, 책이 쌓이는 게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위로가 된다.

어릴 땐 방을 꽉 채운 책들이
어른스러워 보여서 부러웠다.
지금은 그게 단순한 ‘많음’ 이 아니라
‘살아낸 기록’ 이라는 걸 안다.

어떤 사람의 책장은,
그 사람의 일기장을 넘겨보는 느낌이다.
박균호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다.
수천 권의 책을 품은 채,
오늘도 한 권씩 꺼내 읽는 사람.
 
 
🫧
누가 무례하게 굴면
말로 한 방 날리고 싶은 마음.
그럴 때 “복수는 이득이지만,
은혜는 손해라고 생각한다” 는
문장을 보았다.
뜨끔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혼내는 건 그때뿐,
결국 뒤끝만 남는다,
 
 
🫧
요리는 능력이고,
생존이고, 독립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안 한다.
“요리는 남자도 할 수 있어” 가 아니라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멋지다” 는 이야기.

베이컨 하나, 계란 하나 굽는 걸로
자존감이 올라갈 줄 몰랐다.
의외로 요리는
인생의 작은 자신감을 키워준다.
 
 
🫧
누가 봐도 무능해 보이는데
왜 자꾸 승진하지?
그런 생각, 다들 한 번쯤 해봤을 거다.

그 사람이 가진 걸
내가 못 볼 수도 있다는 말에 멈칫했다.
내가 모르는 능력이 있다는 걸 전제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기준으로 재단하던 태도를
조금 내려놨다.
 
 
🫧
버릴까 말까 고민될 땐,
그냥 쌓아두기로 한다.

정리와 갈무리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버릴 줄 아는 게 멋지다지만
가끔은 쌓아두는 게 나를 더 잘 지켜준다.

책, 편지, 노트, 사진.
버리면 다시는 못 보는 것들.
그게 쌓여서 내 시간이 되고,
내 기억이 된다.
 
 
🫧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의 문장이 나와서 반가웠다.
‘바른 삶’ 은 없고
‘다른 삶’ 만 있을 뿐이라는 말.
지금 내 상황과 딱 겹쳐졌다.

애써 정해진 틀에 맞추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내가 없어지더라.
잘 살고 싶은 마음과
남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다른 말이라는 것.
 
 
🫧
누군가는 마쓰야마로 여행을 가고
누군가는 책으로 여행을 한다.

<도련님> 의 무대가 된
도시를 조사하면서
결국은 책으로 도착한
그 풍경이 웃음을 줬다.

기차가 성냥갑 같았다는
구절 하나를 찾아
기대와 현실을 오가며 웃을 줄 아는 태도.
그 유쾌함이 좋았다.
 
 
🫧
마늘과 양파 이야기에서 괜히 움찔했다.

아무리 예의 바르고,
잘생기고, 친절해도
입냄새 하나로
모든 인상이 날아가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 않나.

냄새는 기억보다 강하다는 말이
뼈를 때린다.
 
 
🫧
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읽고 나면 생각이 하나쯤 더해진다.
“맞아, 나도 그랬는데” 싶은 순간들이
아무렇지 않게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이 책의 37권은 그런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책이,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그저 버티는 힘이 되는 시기.

조금씩 페이지를 넘기며
조용히 살아낸 흔적을 따라가 본다.
 
 
 
📍
살다 보면 괜히 마음이 복잡한 날이 있다.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되고,
무슨 행동도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런 날.
그럴 땐 누군가 묵묵히 읽어온 책들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다.
이 책은 정답을 주진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순간이 분명 있다.
다 읽고 나면,
나도 내 방식대로 조금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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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너에게 - 게으른 걸까, 시간이 없어서일까, 잘하고 싶어서일까?
고정욱 지음, 개박하 그림 / 풀빛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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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너에게> - 해야 할 일보다, 지금 내 상태부터
 
 
 
🫧
할 일은 많고,
머릿속엔 그 목록이 빙글빙글 도는데
손이 안 간다.

시작하려다가 주방 정리를 하고
앉았다가 갑자기 청소기를 꺼내고
파일을 열었다가, 유튜브를 틀었다.

이게 무슨 흐름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그랬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나만 이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속상했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히 해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자꾸 제자리일까.

작심삼일로 끝나는 계획들,
적기만 하고 실천 못한 플래너,
미루다 놓친 기회들.

그러다 결국,
“난 왜 이렇게 의지가 없지?”
그 말로 끝나버린다.
 
 
🫧
근데 진짜 그게 의지 부족 때문일까?

그동안은 그냥 내가
게으르다고만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고.
“그럴 시간에 하지.”
“그냥 해, 생각하지 말고.”
이런 말이 칼처럼 날아들었다.
 
 
🫧
“지금은 네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걸지도 몰라.”

별 거 아닌 문장인데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왜 눈물이 나려고 했을까.

미루는 날들은
게으른 날들이 아니라
마음이 엉켜 있는 날일지도.

처음에는 진짜 하기 싫은 게 아니라
그 일을 하려면
마주쳐야 하는 감정이 있어서
계속 피하게 되는 거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고
혼자서도 설명이 안 되는 감정.
그게 쌓이면
일보다 마음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는 걸
이제 알 것 같다.

다짐도 좋고, 루틴도 좋지만
그 전에 내 상태를 먼저 살펴보는 일이
진짜 중요한 거였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 훈계 없이, 충고 없이
내가 직접
알아차리게 해주는 글이 있다는 게
의외였다.
 
 
🫧
무기력은
마음의 감기 같다고 누가 말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에선 계속 기운이 빠진다.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실행은 안 된다.
 
 
🫧
해야 할 일을 매일 내일로 미루는 사람,
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몸이 안 따라주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건
꾸짖는 말이 아니라
질문 하나다.

"오늘 너는 어떤 상태였어?”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할 일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그전에 내 마음을 풀어주는 일.

그게 나한테는
더 시급한 일이었나 보다.
 
 
 
📍
오늘도 뭔가를 미뤘다면,
그게 게으름이라 단정 짓기 전에
그냥 한 번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그 질문부터 해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별일 아닌 감정 하나가
온종일 내 발목을 잡을 때도 있으니까.

지금 해야 하는 일이
꼭 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을 살피는 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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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시대
스티븐 J. 파인 지음, 김시내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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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한국경제신문사 @hankyung_bp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의 시대> - 불이 만든 세계, 우리가 만든 시대
 
 
 
🫧
불은 언젠가부터
뉴스에만 등장하는 존재가 됐다.
산불, 화재, 연기, 대피, 사망자 수.
그 모든 단어들이 붙어 다니다 보니
불은 그냥 위험한 것, 끔찍한 것,
피해를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불이 뭔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멍하니 보게 되는 캠프파이어 말고,
전기레인지 위에 조절되는 불꽃 말고,
정말로 세상을 재조립하는
‘존재’ 로서의 불.
 
 
🫧
우리가 사는 지구는
불을 지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성이다.
불을 낼 수 있고,
불을 다룰 수 있는 생명체가
이곳에만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강하게 다가온다.

인류는 불과 함께 살아왔다.
밥을 지을 때, 길을 밝힐 때,
신을 만나려 할 때도,
심지어 누군가를 태워 없애려 할 때조차.

불은 너무 오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이젠 그걸 잘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낯설어져버린 존재.
 
 
🫧
지금 우리가 겪는 기후의 혼란은
단순히 온도가 높아지는 문제가 아니라
불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데 있다.

불은 더이상 통제 가능한 도구가 아니다.
예전엔 생명을 위해 불을 피웠는데
지금은 그 불이 생명을 위협한다.
불이 기후를 바꾸고,
기후는 다시 불을 키운다.

이 악순환을
‘파이로신(Pyrocene)’ 이라고 부른다.
불의 시대.
정말로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화염은 모든 걸
태워 없애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서 생태계가 다시 조립된다.
식물은 연소되고,
뿌리는 타고,
씨앗은 다시 뿌려지고,
동물은 이동하고,
경관은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다.

혼돈이지만, 그 안에 질서가 있고
파괴인 동시에 시작이기도 하다.

경제로 치면 이건
‘창조적 파괴’ 에 가깝다.
원래 있던 걸 무너뜨리고
그 재로 다음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식.
다만, 너무 자주,
너무 넓게 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
놀라운 건
이토록 중요한 존재인 불이
정작 과학 안에서
자기 ‘자리를 못 갖고’ 있다는 거다.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기상학을 전전하면서
분명히 실체는 있는데
학문적으로는
‘주제 없는 존재’ 처럼 다뤄진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불을 체험하기보다는 뉴스에서 본다.
언론이 붙이는 단어는
늘 ‘참사’, ‘비극’, ‘경고’
그러니 불은 점점
실체가 아닌 이미지가 된다.
위험한 상징, 공포의 풍경,
통제 불가능한 것.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불은 여전히, 우리가 만든 세계를
다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
누군가는 불을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사실 지금 필요한 건
불을 정확히 아는 일이다.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번지고,
무엇을 바꾸고,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은
‘그냥 자연재해’ 로만 넘길 수 없다.
이건 인간이
불을 다뤘던 방식의 결과이고
그 결과가 이제
인간을 되돌아보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는 불을 만들었고,
지금은 불 안에서 살아간다.
 
 
 
📍
불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무언가를 태우고
바꾸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나무든, 땅이든,
혹은 인간의 욕망이든 간에.

이제는 불을 없애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타게 둘지를

스스로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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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뒤집기 트리플 32
성수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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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자음과모음 @jamobook 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찻잔 뒤집기> - 당신 없이 존재하는 나를 상상해본 적 있나요
 
 
 
🫧
강희는 사라졌고,
해진은 그 자리에 남았다.

누가 누구를 더 동경했는지,
누가 누구에게 더 기대고 있었는지는
세 편을 다 읽고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한 사람의 흔적이
다른 사람의 세계를
뒤집을 만큼 크고 날카로웠다는 것.
 
 
🫧
해진은
늘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
강희 곁에서
유용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했다.
강희가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자신의 쓸모를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러다 강희가 사라지자
해진은 혼자 남아버린다.
그 사람의 기준도 없이,
그 사람이 주던 월급도 없이.

불안해지고,
스스로를 자꾸 측정하게 된다.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일까,
누군가에게 여전히 필요할까.
 
 
🫧
반면 강희는
무언가를 더 가지기보다
하나씩 덜어내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말은 느리고, 반응은 늦고,
시간이 흘러야
겨우 마음이 드러나는 사람.

그 속도에 맞춰준 사람이 해진이었고
해진은 그 ‘느림’ 을
한때 멋지다고 여겼다.
그게 사랑이었는지,
존경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결핍이 만든
집착이었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과
쓸모라는 말 자체를
해체하고 싶어 하는 사람.
서로 반대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닮아 있었다.

그 둘 다,
누군가의 시선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제 자리에 단단히 서지 못하는 사람들.

그게 조금 아프기도 하고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
어떤 사람은
자기 얼굴을 바꾸고 싶어서 사라진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공백을 붙잡고서
자기 얼굴을 겨우 떠올린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의 실루엣이
크게 자리 잡고 있어야만
스스로의 형태가
완성되는 사람들이 있다.

<찻잔 뒤집기> 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뒤집어야만 보이는 뒷면,
거기서야 겨우 꺼낼 수 있는 말들.
 
 
 
📍
아무리 뒤집어도
여전히 남는 감정이 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납득되는 거리감,
닿지 못했기에
오래 남는 감촉 같은 것.

강희는 사라졌고,
해진은 그 자리를
비워두지 않기로 한다.

그게 삶을 이어가는 방식 중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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