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멘탈의 힘
김병준 지음 / 예문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듯이, 인생을 사는데도 `멘탈`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강력한 멘탈을 유지하는 노하우를 배워 무한경쟁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싶다.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은 이미 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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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물 사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지음, 휴머니스트 편집부 엮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고려말, 조선개국 이전부터 조선멸망까지 조선왕조와 운명을 같이 한 700여명의 인물을 망라한 인물백과사전이다. 요즘 스마트폰에서도 쉽게 인물검색은 가능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이 책은 각 인물마다 얼굴의 특징을 만화로 그려 초상화를 보는 듯 오래  기억되고, 인물의 일생사에 핵심만을 간추려 간결하게 정리했다. 시사 및  역사상식을 기르는데에도 도움이 되겠고, 노소 구분없이 누가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실록하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 인물사전은 누구나 쉽게 읽고 우리 선조들을 생애를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게 재미있게 구성된 책이다.

 

책 제목이 그렇듯이 조선왕실록의 편제에 따라 왕이 등장하고 ,다음 그 왕의 재위기간에 활동했던 인물들이

열거되는 식이다.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조선왕조의 흐름을  개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더불어 역사지식도 함양할 수 있어 중,고등학교 역사 보습교재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역사공부를 하다보면 밤하늘의 뭇별처럼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에 지레 겁먹고 흥미를 잃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 한 권이면 조선왕조의 인물에 대해서는 그런 염려를 놓아도 되겠다.  역사가 이루어지려면 시공간과 더불어 그 시대를 살다간 인물이 어우러져야 하기에, 인물을 떠나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 인물이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이 바로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물을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곧 역사를 낱낱이 해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권쯤 책상에 비치해 두고 역사공부에 활용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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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6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신라 제27대 선덕왕 즉위 5년인 정관 10년 병신년(636년)에 자장법사가 서쪽(중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바로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감화되어 불법을 전수받았다.

문수보살은 자장법사에게 말했다.

 

“너희 나라 왕은 천축 찰리종(刹利種)의 왕으로 이미 불기(佛記)를 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인연이 있어 동이(東夷) 공공(共工 : 요순시대 흉포하기로 이름난 종족)의 종족과는 다르다. 산천이 험준한 탓에 사람의 성품이 거칠고 사나워 사교(邪敎)를 믿어 때때로 천신이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법문(法文)을 많이 들어 알고 있는 승려들이 나라 안에 있기 때문에 군신이 편안하고 모든 백성이 평화롭다.”

 

말을 마치자 문수보살은 이내 보이지 않았다. 자장법사는 이것이 보살의 변화임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다. 그가 중국 태화지(太和池) 둑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신령한 사람이 나타나 물었다.

“어찌하여 이곳까지 왔는가?”

자장법사가 대답했다.

“보리(菩提)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신령한 사람이 그에게 절하고서 다시 물었다.

“너희 나라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자장법사가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북쪽으로 말갈과 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왜와 이어져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가며 국경을 침범하여 이웃의 침범이 잦으니, 이것이 백성의 고통입니다.”

 

신령한 사람이 말했다.

“지금 너희 나라는 여자를 왕으로 삼아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으므로 이웃 나라가 침략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거라.”

자장법사가 물었다.

“고국으로 돌아가 무슨 일을 해야 이롭겠습니까?”

신령한 사람이 말했다.

“황룡사의 호법룡(護法龍 : 불교나 불법을 보호하는 용)은 바로 내 큰아들인데, 범왕(梵王 : 인도 바라문교의 최고 신)의 명령을 받고 가서 절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절 안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들이 항복하고 동방의 아홉 나라(九韓)가 와서 조공을 바치며 왕 없이도 영원히 편안할 것이다. 그리고 탑을 세운 후에 팔관회(八關會)를 열고 죄인을 풀어 주면 밖의 적이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나를 위해 서울 남쪽 언덕에 정사를 하나 짓고 함께 나의 복을 빌어 주면 나 역시 덕을 갚을 것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신령한 사람은 자장법사에게 옥(玉)을 바치고는 갑자기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정관17년 계묘년(643년) 16일에 자장법사는 당나라 황제가 내려 준 불경, 불상, 가사, 폐백을 갖고 본국으로 돌아와 왕에게 탑을 세울 것을 권했다.

선덕왕이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자 신하들이 말했다.

“백제에 부탁해 공장(工匠)을 데려와야 가능합니다.”

선덕왕은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 백제로 가서 공장을 청하게 했다. 아비지(阿非知)라는 공장이 명을 받고 와서 재목과 돌을 다듬고, 이간(伊干) 용춘(龍春)이 수하 공장 200명을 거느리고 일을 주관했다.

 

처음 이 탑의 기둥을 세우던 날 아비지는 백제가 망하는 형상을 꿈꾸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의심이 되어 손을 떼려 했다. 그러자 갑자기 대지가 진동하고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한 노승과 장사가 금전문(金殿門)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우고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공장은 뉘우치고 탑을 완성했다. <찰주기(刹柱記)>에 이렇게 말했다.

 

“철반(鐵盤) 이상의 높이는 42자, 그 이하는 183자다.”

자장법사는 오대산에서 받은 사리 백 개를 기둥 속과 통도사 계단(戒壇 : 승려가 계를 받는 제단) 및 대화사(大和寺) 탑에 나누어 모셔, 못에 있는 용의 청원을 들어 주었다.

탑을 세운 이후에 천지가 태평하고 삼한이 통일되었으니, 어찌 탑의 영험이 아니겠는가?

그 뒤 고구려왕이 장차 신라를 정벌하고자 계책을 세우고 이렇게 말했다.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무엇을 말하는가?”

“황룡사의 장륙존상과 9층탑, 그리고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입니다.”

이 말을 듣고 고구려왕은 신라를 치려는 계획을 그만 두었다. 주(周)나라에 구정(九鼎 : 중국 하나라 우 임금 때 전국의 쇠를 모아 아홉 주(州)를 상징하는 솥을 만들었다.)이 있어서 초(楚)나라 사람들이 감히 북쪽(周)을 엿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다음과 같이 기린다.

 

귀신이 받치는 힘으로 수도 장안을 누르니,

휘황찬란한 금벽색이 기왓장을 움직이네.

올라가 굽어보니 어찌 구한(九韓)만 복종하랴.

천하가 특히 태평함을 비로소 깨달았네.

 

또 해동(海東) 명현(名賢) 안홍(安弘)이 지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신라 제27대에는 여자가 임금이 되니 비록 도는 있으나 위엄이 없어 구한이 침략했다. 대궐 남쪽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운다면 이웃 나라의 침략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4층은 탁라(托羅), 5층은 응유(鷹遊), 6층은 말갈(靺鞨), 7층은 거란(丹國), 8층은 여적(女賊), 9층은 예맥(穢貊)을 억누른다.”

 

또 <국사>와 <사중고기(寺中古記)>를 살펴보면, 진흥왕 14년 계유년(553년)에 절을 세운 뒤 선덕왕 때인 정관 19년 을사년(645년)에 탑을 세웠다. 제32대 효소왕(孝昭王)이 즉위한 (698년)부터 고려 숙종(肅宗) 병자년(1096년)까지 여섯 번째로 다시 지었지만, 고종16년 무술년(1238년) 겨울에 몽골이 침입하여 탑과 절, 장륙존상과 전각이 모두 불에 타 버렸다.

p.30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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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99篇 - 우리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오성수 지음 / 김&정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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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학루(黃鶴樓)

                                         최호(崔顥.704~754)

 

昔人已乘黃鶴去 (석인이승황학거)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此地空餘黃鶴樓 (차지공여황학루)  이곳에는 부질 없이 황학루만 남아 있구나.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일거불부반)  황학은 한번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白雲千載空悠悠 (백운천재공유유)  흰구름만 천 년이 지나도 헛되이 흘러가네.

晴川歷歷漢陽樹 (청천역력한양수)  맑은 강물에는 한양의 나무들이 뚜렷하고,

芳草萋萋鸚鵡洲 (방초처처앵무주)  향기로운 풀들은 앵무주에 무성하구나.

日暮鄕關何處是 (일모향관하처시)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인가?

煙波江上使人愁 (연파강상사인수)  안개 자욱한 강 물결이 시름에 잠기게 하네.

 

 

이 시는 당대(唐代) 칠언율시(七言律詩)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유명한 작품이다.

송대(宋代)으 시인 엄우(嚴羽.1197~1253)는 이 시를 “당인(唐人)의 칠율시(七律詩)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또 전하는 말로는 이백(李白)이 황학루에 와서 보고는 이렇게 칭찬했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 말로 표현할 길 없으나, 최호의 시가 머리끝에 있도다.”

 

그러고는 시를 짓지 못하고 떠났으며, 뛰어난 문장가들도 이 시 앞에서는 손을 모았다고 한다. 이백은 대신 금릉(金陵)의 봉황대(鳳凰臺 )에 올라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 : 금릉의 봉황대에 올라)>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백이 황학루에 대한 시를 짓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황학루에서 양주(楊洲)로 배를 타고 떠나는 맹호연에게 보내는 송별시가 있으니. 바로 <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 : 황학루에서 광릉으로 맹호연을 보내며)이며, <황학루문적(黃鶴樓聞笛 : 황학루에서 피리 소리를 들으며)>도 있다. 그 당시에는 예전에 불리던 대로 양주를 광릉이라고도 했다.

 

이 시는 예로부터 극찬을 받은 작품이지만 한시의 각운과 율격에 그다지 조예가 없는 사람들이 보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 시를 들고 중국에 패키지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

 더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번역을 잘한다 해도, 한시와 영시는 아무래도 구구절절이 다가오지 않는다. 음식도 마찬가지 아닌가. 외국여행을 가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맛있게 먹는 음식이라도 우리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부정적인 사고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그네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들면 된다. 그러면 낯선 문화가 그다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명승과 절경도 따지고 보면, 다 당대(唐代)에 유명한 것들이다. 기나긴 세월과 숱한 전란 속에서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적게는 서너 차례부터 많게는 십여 차례 이상 고친 유적들도 있다. 아예 허물어지거나 불타고 없어져서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들도 있다. 예전 시인들이 노래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 책에 실린 시들을 되뇌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과연 노란 학이 있기는 한 것일까? 그 당시에는 유전자 조작도 할 수 없었을 텐데 웬 노란 학이 등장하는 것일까? 신선이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해서, 인간과 격이 다른 어떤 신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윤색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p.477~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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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0-3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호의 황학루...멋진 시입니다. 황학일거불부반이요 백운천재공유유라. 캬~~ 역수의 시 한구절이 떠오르는군요....ㅋㅋㅋㅋ
황학인 이유는 기인이 귤 껍질로 벽에 그린 학이 그림에서 튀어나와서 황학이라고 하네요...ㅋㅋ

예전에 제가 쓴 페이퍼가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2003년에 쓴 페이퍼군요....세월이 참 무상합니다. ㅜㅜ

http://blog.aladin.co.kr/733305113/255937
링크가 안되는 군요....ㅜㅜ

시골향기 2015-10-3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노란 학이 된데는 그런 사연이 있었네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 학(鶴)을 자식처럼 사랑한
임포(林逋)의 `호의현상(縞衣玄裳)`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인생무상, 세월 무상이 절절이 느껴지네요.
 
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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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래지 않는 전설

 

구름무늬 곱게 수놓은 흉배에 한 쌍의 학이 날갯짓한다. 이를 보면 당상관에 오른 문신의 초상이다. 허리에 두른 띠도 품계를 귀뜸해 준다. 다섯줄의 금색을 치고 그 위에 무소뿔로 만든 장식을 곁들였다. 곧 1품이 두르던 서대(犀帶)다. 깃이 둥근 관복 속으로 흰옷이 목을 감쌌는데, 머리에 쓴 관모는 불쑥 턱이 솟아 그러잖아도 높은 벼슬이 더 우뚝해 보인다.

 

한눈에도 지체가 훌륭해 뵈는 이 사람은 영조 때 병조, 호조, 예조에서 두루 판서를 지낸 박문수(朴文秀. 1691~1756)다. 누구냐고 되묻지 마라. 그 이름은 지나가던 어린애도 알았다.

 

박문수는 이인좌의 난(1728) 당시 세운 전공(戰功)으로 조선 왕조의 마지막 공신에 오른 인물이다. 젊어서 일찌감치 영조의 눈에 든 그는 나랏일에 늘 마음을 다잡았고 군사 정책과 세무 행정에 밝아 개혁을 이루어냈다고 실록은 전한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박문수의 붙박이 이미지는 어사(御使)다. 조선사를 통틀어 수백 번의 어사출또가 있었다 해도 박문수 하나를 당할 재간이 없을 정도다. 겨우 몇 차례 임무를 수행하는 데 그쳤음에도 그는 어사또의 전설이자 롤 모델이 돼 버렸다. 혹 그의 얼굴에 그 이미지가 씌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박문수의 초상 중에서 이 얼굴은 만년의 모습이다. 이마에 주름살이 분수같이 갈라지고 눈 썹 끝은 먼 산처럼 물러나 있다. 눈머리는 새의 부리를 닮아 날카롭고 입술은 단단한 대춧빛으로 물들었다. 굳은 표정으로 마치 남들 하는 짓거리를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 아니나 다를까 단호하다. 화가의 솜씨는 섬세하다. 골상은 찬찬히 선묘로 지어냈고, 안색은 자국이 남지 않는 붓질로 완성했다.

 

어사는 여차하면 지역 관리의 목줄을 쥐고 흔든다. 박문수의 감찰은 공사(公私)와 시비를 잘도 분간했다. 무엇보다 백성의 이익을 앞세웠다. 그의 행적은 뒷날 야사와 민담으로 한껏 부풀려졌다. 그래도 전설은 빛바래지 않는다. 백성이 그 까닭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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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기 <채제공 초상> 1792년. 비단에 채색.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초상화에 비뚠 붓은 없다.

 

실례지만, 이분 눈길이 어색하다. 왼쪽 눈동자가 바깥으로 쏠렸다. 아뿔싸, 사시다. 뺨은 살짝 얽었다. 마마가 다녀간 자국이다. 표정이라도 개운하면 나을 텐데, 어쩐 셈인지 딱딱하고 어둡다. 복색으로 보아하니 지체가 높겠다. 뉘신가, 이분. 일흔세 살의 좌의정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다. 영 ․ 정조의 두터운 신임으로 관운이 일찍 트인 그였다. 삼정승 중 두 자리가 빈 채 독상(獨相)으로 수년간 정사를 오로지했을 정도다. 오죽하면 사관이 ‘100년 이래 처음 있는 인사(人事)’라고 의아해했을까.

 

누구도 치부는 들키고 싶지 않다. 채제공의 마마와 사시도 공식적인 기록에는 없다. 오직 초상화에 나온다. 만인지상에 오른 그도 모델이 되면 민낯을 못 숨긴다. 조선 초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겉만 아니라 속까지 뒤지는 붓질로 겉볼안(겉을 보면 속은 안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을 따진다. 채제공의 속내를 미리 털어놓는다.

 

그림 왼쪽에 자필로 썼다. ‘너의 몸 너의 정신은 부모 은혜. 너의 이마에서 너의 발꿈치까지 임금 은혜. 부채도 임금 은혜. 향도 임금 은혜. 꾸며 놓은 한 몸, 무언들 은혜가 아니랴. 죽어서도 부끄러운 바는 은혜에 보답할 길 없어서라네.’벼슬살이 하는 자의 지나친 공손이 다 드러났다.

 

이 초상화는 정조의 특명으로 그려졌다. 채제공은 감읍했다. 하사품인 부채와 향주머니를 보란 듯이 들었고, 태깔 고운 화문석 위에서 연분홍 둥근 깃 시복(時服.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뵐 때나 공무를 볼 때 관원들이 입던 옷)차림으로 멋을 부렸다. 충정이라 해도 그의 고백은 요새 귀에 간지럽다. 낳아주신 부모를 제하면 온통 성은에 대한 치레 아닌가.

 

그린 이는 화원 이명기다. 도화서의 한 식구 김홍도도 얼굴 그림에서는 한 수 접은 실력파다. 그릴 때 결점을 감춰달라 부탁하는 일은 혹 없을까? 천만에, 조선 초상화에 곡필은 없다. 채제공도 마찬가지. 시선은 엇나갈망정 불편부당한 탕평을 꾸준히 옹호했다. 그 화가에 그 모델이다.

손철주 <사람보는 눈> p.7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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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0-3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마음에 듭니다..주문해야겠어요..일단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땡스투는 당연히 시골향기님께 하겠습니다.
갑자기 마일리지가 135원 증액되면 제가 땡스투한줄 아세요^^
약소하지만 살림에 보태쓰세요 ㅋㅋㅋㅋ 너무 약소해서 ㅋㅋㅋㅋㅋ

시골향기 2015-10-30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붉은돼지님 서재를 잠시 둘러 봤는데, 정말 잘 꾸며 놓으셨네요.
내용도 알차고요.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