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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원가행(怨歌行)
반첩여(班婕妤:첩여는 비빈의 품계칭호)를 이야기할라치면 <원가행(怨歌行)>부터 시작하고, 양귀비(楊貴妃)를 언급할라치면 <장한가(長恨歌)>를 꺼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청나라 초기 사(詞)로 이름을 날린 납란성덕(納蘭性德 : 1655~1685)의 시 한 구절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이 있고부터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깊은 밤 잠 못 이루며 <음수사(飮水詞)> 전편을 읽고 난 후 역시 이 구절만큼 빼어난 시구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기실 이 시집은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이 한마디는 사람을 절로 아연케 만듭니다. 이는 마치 장승요가 용을 그릴 때의 ‘화룡점정’ 같은 점이고, 고룡의 <육소봉전기(陸小鳳傳記)>에 나오는 서문취설(西門吹雪)의 검이 정확하고 우아하게 소리 없이 당신의 목을 겨누는 것에 견줄만 합니다. 그 섬뜩한 검기를 느꼈을 즈음 이미 당신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어찌 가을바람은 화선을 슬프게 하는가(何事西風悲畵扇)?” 이는 한나라 성제(成帝.BC 52~BC 7) 의 비인 반첩여(BC 48~BC 2) 를 두고 이른 시구입니다. 역사서에 전하는 그 명문가 출신의 고결하고도 현덕한 여인 말입니다. 그녀는 성제 초년에 입궁하여 뛰어난 미모와 현명함으로 남다른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번은 성제가 그녀를 불러 함께 수레에 올라 바깥나들이를 가자 했다지요. 이에 그녀는 “예부터 모든 성군은 훌륭한 신하를 곁에 두었으나, 하․상․주 삼대의 마지막 군주만이 폐녀(총애하는 여자)를 곁에 두었답니다.” 하고 말하며 감히 황제의 명을 받들지 않았답니다.
당시는 성제의 사랑이 무르익던 시절, 반첩여의 이러한 언행은 현명하다고 칭송 받았고, 후궁들 또한 그녀에게 아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일은 하나의 미담이 되어 그녀가 마치 초 장왕의 번희나 이세민의 장손현후인 것같이 여겨졌습니다. 그녀 역시 이에 큰 자부심을 가졌고, 황은을 깊이 받았다고 여겼으며, 또한 다함없는 가훈으로 삼아 서로 돋보이게 되었습니다. 허 황후는 우둔한 사람이었고, 반첩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총애가 육궁 가운데 으뜸이었으니, ‘장신(長信)‘이란 궁궐의 이름처럼 이런 좋은 나날이 영원히 계속되길 바랐겠지요. 그러나 어느 날 그녀가 왔습니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의 동생 합덕(合德)도 함께 입궁한 것입니다.
조비연(趙飛燕. BC 45~BC 1)이 궁궐에 들어오는 날로 반첩여의 외로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측불허,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의외였습니다. 그 깊은 사랑과 총애도 제비처럼 가볍게 춤을 추는 그녀가 궁에 들어오면서 깨끗이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랑의 맹세는 변함이 없건만 애정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세상사라는 것은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몰려드는 비구름처럼 변덕스럽기 마련입니다. 이는 마치 능가산인이 “매정한 임 까닭 없이 마음 바꾸며, 사랑은 원래 쉽게 변하는 것이라 말하네.(等閑變卻故人心, 卻道故人心易變)”라고 한 것이나 유우석(劉禹錫)이 <죽지사(竹枝詞)> 11수 중 제6수에서 “한스럽네! 사람의 마음은 강물만 못해 까닭 없이 평지에서도 파란을 일으키네.(長恨人心不如水, 等閑平地起波瀾)”라고 노래한 것과 같습니다. 그녀는 <원가행>, 일명<단선가(團扇歌)>를 지어 자신을 둥근 부채에 빗대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새로 자른 제나라 흰 비단, 서리나 눈처럼 선명하고 깨끗하여
재단하여 합환선을 만드니, 둥근 것이 보름달 같구나.
임의 소매 드나들며 흔들어 미풍을 일으켰지만
항시 두려운 것은 가을이 되어 차가운 바람이 더위를 앗아가면
대나무 상자 안에 버려져 임금의 사랑도 중도에 끊기게 됨이라.
新裂齊紈素(신열제환소), 皎潔如霜雪(교결여상설).
裁爲合歡扇(재위합환선), 團圓似明月(단원사명월).
出入君懷袖(출입군회수), 動搖微風發(동요미풍발).
常恐秋節至(상공추절지), 凉飇奪炎熱(양표탈염열).
棄捐篋笥中(기연협사중), 恩情中道絶(은정중도절).
이는 한낱 아녀자의 입장이기보다 지식인다운 그녀만의 마음 달래기였습니다. 그녀는 허 황후와는 달랐습니다. 비연이 한창 총애 받던 시절. 허 황후는 자신의 자리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으려다가 끝내 버림을 받았습니다. 반첩여는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태후 모시는 일을 자청하거나, 성제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성제의 능묘를 지키다가 외롭게 늙어 죽지는 않았을테지요.
그녀는 다만 예상치 못했을 뿐입니다. 맑고 고고하며 속세에 물들지 않은 자신이 훗날 궁원(宮怨, 궁궐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원망에 관한 이야기)의 대변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왕창령(王昌齡. 698~756)이라는 인물은 마치 <단선가>에 담긴 그녀의 아픔을 엿보기라도 한 듯, <장신추사(長信秋詞)> 5수를 지어 그녀의 삶을 애석해했습니다.
우물가 오동나무 가을 잎 누렇게 바래고,
걷지 않은 주렴에 밤새 서리 내렸네.
향로와 옥 베개는 빛을 잃었고,
자리에 누운 채 남궁의 긴 물시계 소리 듣고만 있네.
높은 궁전의 가을 다듬이 소리 한밤에 울려 퍼지고,
서리 짙어지니 어의 차가워질까 걱정되네.
푸른빛 자물쇠 잠긴 궁 등잔 아래에서 바느질 멈춤은
여전히 황금빛 성안의 영명하신 주상 보려 해서네.
이른 아침 빗자루로 청소하고 궁전 문 열어놓고,
이어서 단선 흔들며 잠시 이리저리 서성이네.
옥처럼 아름다운 얼굴 갈까마귀 빛깔만도 못함은,
소양전(성제가 머무르는 곳)이 해 그림자 여전히 가져와서 일세.
진정 박복한가 한참이나 생각하여,
꿈속에 군왕을 뵈었으나 깨고 나니 헛것이었네.
불빛 환한 서궁에선 연회가 한창인 듯
은총 받들던 시절 아직도 분명한데.
중추절 장신궁의 달은 밝기만 하고
소양전 아래 다듬이질 소리.
이슬 내린 집 안에 애기 풀 흔적 남아
붉은 비단 휘장 안에서 정을 이기지 못하네.
추측건대, 그녀는 결코 이렇게 외로운 신세가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알았더라면 비록 등불만 비추는 장신궁의 냉랭한 방 안의 고독일망정 견뎌냈을 것이며, 고운 이를 악물어가며 <원가행>을 지어 사람들의 웃음거리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인불숙(遇人不淑. <시경> 왕풍(王風)에 나오는 ‘중곡유퇴(中谷有蓷)’에 나오는 말로 여자가 남자를 잘못 만남을 가리킴)이란 말이 딱 어울립니다. 그녀는 이를 데 없이 현숙한 여인이었으나 그녀의 부군은 ‘말 한마디로 천하를 떨게 할’ 패기가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녀는 옛날 ‘번희’에 비길만하지만 그녀의 부군은 ‘초 장왕’ 에 비길 수 없었겠지요. 사실 그녀는 연약하지 않았고 미모와 재기를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예법에 얽매이고 엄격할 정도로 규정에 따르고자 한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황실 주렴 사이를 에돌며 춤추는 조비연의 나긋나긋함이 없었고, 합덕처럼 함께 목욕을 하며 애교를 부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녀는 지나치게 엄숙했고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교를 따르려 했지만, 정작 자신은 첩여에 불과할 뿐 황후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비의 자리에 올랐다 해도 영원히 첩에 불과했을 터. 천하의 여인이란 황궁에 있건 아니건 결국 똑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황제가 원하기만 하면 그녀들은 기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첩여와 무희는 본질적으로 같은 수준, 단지 명칭이 다를 뿐이었으니 무슨 의미가 더 있겠습니까? 황궁은 그저 금빛 찬란한 기루에 불과하며, 황제는 천하제일을 난봉꾼이었던 것입니다.
주성치가 주연한 <녹정기>를 혹 기억하실는지요. 위소보가 처음 천지회(天地會)에 가입했을 떼 진근남은 짐짓 정색을 하며 그를 밀실로 데려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반청복명(反淸復明)을 외치는 것은 사실 돈과 여자를 빼앗기 위함이다.” 위소보가 그렇다면 왜 얼토당토않는 반청복명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묻자 진근남이 대답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오직 똑똑한 사람한테만 진실을 말하는 법, 저 밖에 있는 멍청한 무리들은 그저 헛된 이상 하나만 갖고도 요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에 큰 깨달음을 얻은 위소보는 진근남과 의기투합합니다. 밀실에서 나온 두 사람은 정색을 하고 밖에 있는 조무래기들을 향해 분기 어린 어조로 일장연설을 늘어놓습니다. 연설은 제대로 먹혔습니다.
나중에 누군가로부터 무엇을 타도하고 무엇을 되살려야 한다는 따위의 말을 듣게 되면, 바로 이 장면이 떠올라 씁쓸한 웃음을 물게 됩니다. 역시 영화 <녹정기>를 감독한 왕정의 단순명쾌함과 주성치의 예리함은 마음에 듭니다. 남자는 남자가 봐야 그 악독함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할까요? 사실 남자들이란, 황제든 누구든 결국 오입쟁이끼리의 투쟁을 치를 뿐입니다.
비연과 합덕, 이 두 자매는 경국지색이었고, 남자를 꾀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었습니다. 성제는 합덕의 온유향(溫柔鄕. 미인의 품 안)에서 늙어 죽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 한마디가 그의 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반첩여가 사랑한 남자가 마침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다른 여자 합덕의 품에 안겨서 말이지요.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절이 다하여 천자 또한 범인들과 마찬가지로 차가운 무덤에 눕게 되었을 때, 황제에게 버림받았던 여인, 냉대 속에서 버려졌던 반첩여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생토록 황제의 능원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반첩여 역시 눈을 감아야 했을 때, 혹시 처음 입궁하던 시절을 떠 올리진 않았을까요? 그 옛날 황제가 높은 황금수레에 앉아 미소 띤 얼굴로 손을 내밀 때, 차마 그 손을 잡을 수 없어 함께 수레에 오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요? 궁금증은 거기에 미칩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정히 기대고 있던 그 시절, 어쩌면 그때가 그들의 유일하고 또 가장 친밀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 너무 짧기만 한 시절.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p.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