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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ㅣ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평점 :
동서양 고전에는 유명한 고사성어와 명언이 많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려운 고전을 읽으라고 독려한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사실만 인정하려 하고,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인들은 대부분 책을 많이 읽고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세계에 대하여 간접경험을 통해 지식을 쌓는다.
故 신영복 선생이 작고하신지도 1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큰 스승이 살아계실 땐 여름날 정자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쉼터를 제공하는 것처럼 그 고마움을 잘 몰랐는데, 세상에 안계시니 좋은 말씀도 들을 수 없고, 책도 펴낼 수 없으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선생은 감옥에서 오래 계시면서 독서를 많이 하셨다. 내가 보통사람으로 살았다면 동양고전을 배우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전에 말씀하셨다. 지식인이 시대의 낭아로 남아서 갑갑한 감옥에서 무얼하겠는가? 아마 책을 읽는 일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몰라도 오랫동안 옥고를 치른 끝에 독자들은 선생의 좋은 글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감옥에서 독수공방하면서 무엇이라도 배워야 겠다는 신념 때문에 어려운 동서양 고전에 달통하게 되었고, 붓글씨도 날로 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선생이 좋아하는 한자성어 중에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단어가 있다.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에서 선생의 인품의 깊이와 그릇을 알게 되었고 나 또한 이 성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니 세계인이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의 언어가 바로 석과불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태어나 대부분 평생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경쟁하며 치열하게 삶을 살아 간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국가의 과제도 마찬가지다. 자국의 국민들을 좀 더 배불리 먹이고, 잘 살게 하기 위해 불철주야 각국이 눈에 불을 켜고 경쟁하는 시대다. 개인이나 국가나 양보란 아예 생각할 수조차 없고, 경쟁에서 밀리면 바로 낭떠러지로 추락이다.
나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선생의 글귀를 떠올려 본다. '석과불식(碩果不食)' 즉,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는 이 성어는 심오원려한 뜻을 담고 있다. 요즘 세상은 한마디로 소비의 시대이다. 새로운 맛과 유행에 따라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많이 소비하게 해야 잘 살고 돈을 많이 벌게 된다. 미래를 위해, 후손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남겨둘 자원을 생각하는 것은 배부른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왜 이토록 오염의 덤터기를 덮어쓰고 사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사시사철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도 모두 무자비한 자원개발과 과도한 소비문화 탓이다. 혹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백 년 안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얘기도 한다. 철을 가리지 않는 폭염과 홍수, 남북극의 해빙 등으로 나날이 지구는 망가지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욕심을 줄이고, 자원개발 속도를 줄이면 조금씩 나아지련만 욕심에 가득 찬 문명국가들은 발전속도를 늦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번번이 기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선진국들이 모여 회의를 하지만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는다.
선생이 강조하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은 현대문명에 대한 개탄일 수도 있고,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마지막 희망의 언어일 수 있다. 세상이 온통 기술개발의 전장이 되어 가는데, 우리만 그 대열에서 빠진다면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길 수 있지만, 더 나은 미래와 더 깨끗한 환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 세대만이 잘 살고 떠나면 그만이라 단견을 버리고 후손을 위해서,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세계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자원개발 속도를 조금씩 늦춰 지구환경이 회복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