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대한 예의 - 교열기자 이진원의 바른말 이야기
이진원 지음 / 서해문집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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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혼이 난 경험을 가진 선배가 많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안기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견통령(犬統領)’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안기부는 때에 따라서는 중앙정보부가 될 수도 있겠다.

 

예전에 납활자 시절에는 신문사 문선부(납활자를 하나씩 뽑아 낱말과 문장을 만드는 부서)에 가면 몇 개의 활자를 실로 묶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뽑아 보면 ‘大統領’이나 ‘朴正熙’ 같은 글자들이었는데, 묶어 놓은 이유는 여러분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신문사를 괴롭히던 오자는 주로 ‘대통령’과 관련된 것이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 한자로는 ‘견통령(犬統領), 태통령(太統領), 대령통(大領統), 대통통(大統統)’이 나오는가 하면 한글로는 ‘대령’이 나오기도 했다. 이래서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 아예 ‘대통령’이란 활자를 실로 묶어 놓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 역시 우리나라 신문에 관한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일본의 흉내를 낸 것이었다. 일본에서 우리의 ‘대통령’만큼이나 조심해야 할 말은 ‘천황(天皇)’이다. 그러나 종종 ‘부황(夫皇)이나 대황(大皇), 요황(夭皇)’ 같은 말이 뽑히는 바람에 일본 신문사에서도 고민을 하다 실로 묶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

 

어쨌거나 이렇게 실로 묶어 놓았는데도 어쩐 일인 지 신문에서는 종종 견통령이나 태통령이 나왔고, 또 신문사 사람들은 종종 ‘기관’에 불려 가곤 했다. 제작돼 독자의 손에 닿기까지 신문은 보통 서 너 단계, 많게는 예닐곱 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먼저 담당 취재 기자가 기사를 쓰면서 검증하고(사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글에서 틀린 걸 찾지 못한다. 누구라도 그렇다. 그래서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다.’고 하던가?) 담당 데스크가 원고를 다시 살피며, 데스크가 보기 전에 내근 차장이 먼저 보기도 한다. 그러면 벌써 2,3단계를 거쳤다. 거기다가 편집기자가 제목을 뽑기 위해 기사를 읽어 보며, 드디어(?) 교열기자가 틀린 본문을 잡기 위해 ‘직업적’으로, ‘전문적’으로 본다. 거기다가 교열 데스크가 또 보는 수가 있고, 비중 있는 기사일 경우 편집국장이나 부국장이 다시 본다.

 

그런데도 ‘견통령, 태통령’이 약을 올리듯 신문 지면에서 살아 날뛰니, 속된 말로 하면 ‘환장할 지경’이다. 그래서 흔히 신문사에서는 이를 두고 ‘활자가 둔갑을 부린다.’고 이야기 한다. 물론 실제로 활자나 글자가 둔갑을 부리지는 않으므로 글자를 놓친데 대한 자조의 뜻, 혹은 자위의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또 그만큼 활자(사전적인 의미로는 ‘네모기둥 모양의 금속 윗면에 문자나 기호를 볼록 튀어 나오게 새긴 것’이므로 요즘에는 ‘글자’로 쓰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를 다루는 직업이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교열기자들은 항상 ‘잘해야 본전’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조금 정도가 지나친 말로는 이런 것도 있다. ‘오자(誤字)는 인쇄문화의 꽃’이라고. 어쨌거나 모두 ‘오자의 숙명성이나 혹은 불가피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 그렇게나 어렵다. 교열기자가...  p.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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