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장에 삿갓 쓰고 - 방랑시인 김병연
윤신행 지음 / 서예문인화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江家(강가의집)

 

                                    金炳淵(일명 김삿갓. 1807~1863)

 

船頭魚躍銀三尺 (선두어약은삼척)  뱃머리에 물고기 뛰어오르니 은이 석자요.

門前峰高玉萬層 (문전봉고옥만층)  문 앞에 산봉우리 높으니 옥이 만 층,

流水當窓稚子潔 (유수당창치자결)  바로 창 앞에 물 흐르니 어린아이는 늘 깨끗하고

洛花入室老妻香 (낙화입실노처향)  꽃잎이 방으로 날아드니 늙은 아내까지 향기로워진다.

 

김병연은 조선후기의 방랑시인으로,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다.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 난(1811)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되었으나,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노복(奴僕) 김성수(金聖洙)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도망가 살았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廢族)으로 사면(赦免)되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살다가 과거에 장원급제했으나, 자신의 집안 내력을 모르고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제(詩題)를 택한 자책과 폐족자(廢族子)에 대한 멸시 등으로 방랑길에 올랐다.

 

57세 때 전라남도 동복(同福)에서 객사하기까지 삿갓을 쓰고 죽장(竹杖)을 짚고 전국 각지를 유랑했으며, 발걸음이 미치는 곳마다 기경(奇驚)한 시구와 풍자시와 함께 숱한 일화도 남겼다. 그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畵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9년에 이응수(李應洙)가 <김립시집(金笠詩集)>을 간행하였다. 1978년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 기슭에 시비(詩碑)를 세웠고, 1987년 영월에 전국 시가비(詩歌碑)건립 동호회에서 시비를 세웠다. 그의 수많은 한시는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가수 명국환(1933~)이 노래한 <방랑시인 김삿갓>은 유행가 가사지만 그 어떤 시보다 김삿갓의 면모를 잘 드러내 준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든 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바랑에 지치었나 사랑에 지치었나,

괴나리 봇짐지고 가는 곳이 어데냐?

팔도강산 타향살이 몇몇 해든가.

석양지는 산마루에 잠을 자는 김삿갓.

 

김삿갓 하면 늘 그의 풍자시나 기발하게 표현한 시들만 떠올리는데 드물게 서정적인 작품도 있다. 평생을 유랑걸식(流浪乞食)하던 김삿갓도 이런 생활을 꿈꾸기는 했던 모양이다. 김삿갓은 비록 불우한 인생을 보냈지만, 그의 생애를 보면 부러운 생각도 든다. 신경 쓸 가족도 없고, 눈치 볼 사람도 없고, 돈과 명예와 부귀에 얽매일 것도 없고,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으니 그 얼마나 자유로운 삶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