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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깨어있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4년 12월
평점 :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복잡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이라는 것은 복잡하고 말고 할 것 없이 그냥 그런 거예요. 날씨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켜고 조금만 추워도 히터를 켠다고 난리지만 변덕을 부리는 것은 사람일 뿐 날씨는 지금처럼 늘 그랬습니다. 늘 맑기만 해도 살 수 없고 늘 비만 와도 살 수 없어요. 맑은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어서 우리 삶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욕구에 맞지 않는다고 맑은 걸 시비하고 비 오는 것을 시비하지요. 자기 관념의 틀에 세상을 꿰어 맞추려 드니 자기 관념의 틀로 이해가 될 때에는 세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가도 자기 관념의 틀에 세상이 맞지 않으면 당장 세상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고 한탄합니다. 자기가 세상을 잘못 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사람에다 옷을 맞춰야 하는데 옷에다 사람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복잡한 것은 우리들의 생각이고 어리석은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지 세상은 어리석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아요. 세상은 그냥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를 고집하고, 자기 것을 고집하고, 자기가 옳다고 고집해서 결국은 자신을 괴롭힙니다.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외로워하는 것은 모두 괴로움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어요. 누가 날 이렇게 괴롭힐까요?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함부로 한다, 자기를 아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과음을 하다가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몸이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사람이 어떻게 보입니까? 본래의 몸은 건강하지만 어리석어서 자기가 자기 몸을 병들게 만들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마음은 본래 청정한데 내가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결국은 미워하고 원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이렇게 함부로 하고 학대하는데 누가 나를 좋아하겠습니까? 나도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데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줄까요? 내가 나를 사랑할 줄 모르고 소중히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자유롭게 하겠으며, 내가 나 자신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말이 안되지요.
그러니 먼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더 이상 학대하고 못살게 굴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며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남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출발점이자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자기를 고집하고 자기 것을 고집하고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것이 바로 자기를 학대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이것을 늘 살펴서 자기에게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천하 만물이 본래 내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티끌 하나 속에도 천지의 은혜가 있고 만인의 노고가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 물건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그 물건이 기꺼이 쓰이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약은 아픈 사람이 먹을 때 약이지 아프지 않은 사람이 먹으면 독이 됩니다. 그런 것처럼 음식은 배고픈 사람이 먹어야 음식이지 배부른 사람이 먹으면 그것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혓바닥의 맛에 집착하거나 그 습관에 사로잡혀 해로운 먹을거리를 찾고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어 자신을 해칩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지만 오랫동안 나와 주위 사람 모두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잘하는 일인 양 생각하는 것이지요. 많이 먹고는 소화제를 찾고, 많이 먹고는 살을 빼야 한다고 동동거립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에 걸려서 병원에 간다면 이해가 되지만 많이 먹고 배탈이 나고 많이 먹고 살이 쪄서 병원에 실려와 지방 제거 수술을 받고 위세척을 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는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를 알지못하고 존재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법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집에서 아내를 봐도 답답하고 남편을 쳐다봐도 답답하고 애가 하는 짓을 봐도 답답합니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도 답답하고 스님이 하는 모양을 봐도 답답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새치기하는 사람을 봐도 답답하지요.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인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평불만 거리가 많은 것이 이번만, 아니면 올해만 그런 것일까? 세상은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습니다. 내년 내후년도 그럴 것입니다.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이걸 때리면 저게 튀어나오고 저걸 때리면 이게 튀어나오고 빨리 때리면 빨리 튀어나옵니다. ‘이것만 해결이 되면 이제 소원이 없겠다.’ 이렇게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취직만 되면, 장가만 가면, 애만 낳으면, 애 대학만 가면 인생이 좋아질 것 같지만 갈수록 고민과 불평은 더 많아집니다. 인생이 정리되는 맛이 있기는커녕 갈수록 걱정이 많아집니다. 정년퇴직하면 삶이 한가해질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살면 살수록 바빠지고 살면 살수록 복잡해집니다. 자유로워지기는커녕 걸리는 것이 점점 더 많아져요. 그래서 이 세상을 고쳐서 내가 편안해지겠다고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그리 될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이생뿐 아니라 내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늘 그런 것이니까요.
세상을 복잡하다고 말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세상의 이치를 모르니까 세상이 복잡한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의 이치를 안다면 복잡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자동차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닛을 열어보면 어지러이 얽히고설킨 부속에 기가 죽지만 자동차를 잘 아는 사람이 보면 하나도 복잡한 게 없는 구조입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있을만한 것들이 있을 자리에 있고, 생길만 하니까 생겼습니다.
그러니 일이 없어서 한가한 게 아니라 일이 많은 가운데 한가하고, 인연을 다 끊어버려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인연이 있는 가운데 자유로워야 합니다. 연꽃이 진흙탕 속에서 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듯이 우리도 온갖 혼잡함 가운데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연잎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은 연잎이 스스로 매끄럽기 때문이지요. 내가 걸림이 없다면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도 나는 걸릴 게 없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정진해야 합니다. p.246~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