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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고 꽃을 보라 - 정호승의 인생 동화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해냄 / 2011년 8월
평점 :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는 늘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었다. 사시사철 그 어느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사람들은 평생 물 걱정을 하며 사는 일이 없었다. 논바닥이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지는 여름 가뭄 때에도 유독 그 샘에서만은 차고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났다. 겨우내 눈이 내리지 않아 몇 십 년 만에 겨울 가뭄이 들었다고 난리가 나도 우리 동네 샘물만은 결코 마르는 법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그 샘을 자랑하였으며, 또한 사랑하였다. 어른들은 들에 나가 김을 매다가 돌아와서는 꼭 그 샘물에다가 손발을 씻었다. 나와 같은 조무래기들도 하루 종일 땡볕에서 뛰어 놀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면 그 샘가에 가서 땟국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보자기에 싼 책 보따리를 등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10 리나 되는 읍내 초등학교에서 지쳐 돌아올 때면 나는 으레 그 샘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나서야 다시 힘을 얻곤 했다. 동네 아낙네들은 매일같이 그 샘물을 길어다 밥을 지었으며, 그 샘가에 와서 빨래를 하는 젊은 아낙네도 있었다.
샘은 바로 마을 사람들의 젖줄이었으며, 마을 사람들 중에 그 샘을 애지중지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나는 그 중의 한 사람 이었다. 내가 청년이 되어 고향 마을을 떠날 때까지 그 샘은 나를 키워 준 또 하나의 어머니였다. 그런데 나는 늘 흘러넘치는 샘물이 아깝다고 생각되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 그 샘물을 길어가는 것조차 아까워 어떤 땐 속이 상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물을 일부러 몇 바가지씩 떠서 물배를 채워보기도 하고, 아무 쓸데도 없이 물을 길어다가 그냥 길가에 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물을 몇 동이나 길어다가 뒷간을 말끔히 청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물은 언제나 흘러넘치기만 할 뿐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 아까운 샘물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해도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의 그러한 생각은 내가 고향을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도시에서 돈을 주고 물을 사먹을 때마다 그러한 생각은 점점 더 깊어져갔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때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샘물이 흘러넘치지 않으면 그대로 썩고 만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죽고 만다는 것을, 사람도 늘 그 샘물처럼 서로 사랑이 흘러 넘쳐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p.14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