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莊子) - 그림으로 쉽게 풀어쓴 지혜의 샘
장자 지음, 완샤 풀어쓴이, 심규호 옮김 / 일빛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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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나비 꿈

 

언젠가 장주(莊周 : 장자의 본명)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며 마치 한 마리 나비처럼 즐겁기만 했다.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자신이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자기는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그렇다면 장주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주가 된 것인가.

 

당대의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은 칠언 율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금슬은 공교롭게도 현(絃)이 오십 개, 현마다 슬기둥마다 화려했던 세월을 생각한다. 장주, 꿈에서 깨어 나비었나 헷갈리듯, 망제 춘심을 두견새에 기탁한 듯, 창해의 달빛 아래, 맑은 구슬 반짝이는 눈물 같고, 따사로운 날 남전(藍田 : 색료로 쓰이던 쪽을 기르는 밭) 옥에 연기 피어나는 듯 한데, 이런 정회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나, 그때는 실로 망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네.“ 이 시에 나오는, ”장주, 꿈에서 깨어나 나비었나 헷갈리듯“이라고 노래한 대목은 <장자> ‘제물론’의 호접몽에서 유래했다. 이상은은 이를 통해 자신의 회재불우(懷才不遇 : 재주는 지녔으되 때를 만나지 못함)와 비극적인 사랑의 안타까움, 그리고 꿈같은 인생에 대한 아쉬움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상식적으로 장주가 나비 꿈을 꾼다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나비가 장주를 꿈꾼다는 것은 황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인간과 대상의 관계는 대립적이기도 하고 통일적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대립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서로 융화하는 통일적인 측면도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객관 사물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방법에는 논리적인 추론에 따른 이성적 사유도 있고, 직접적인 체험과 깨달음을 통한 직각 사유도 있다. 전자는 인간의 이지에 편중하고, 후자는 정감적 요소를 강조한다. 장주의 ‘나비 꿈’은 인간과 자연의 화해와 통일의 측면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술적인 직각 사유를 운용하여 정감적 체험을 통해, 내재적 인식방법으로, 인간과 자연이 생명의 근원에서는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심오한 철리를 설파한다.

 

꿈이란 인간의 잠재의식이 자유롭게 드러남이다. 현실에서 인간은 온갖 이해관계 속에서 하루 종일 더 많은 이익과 공적을 얻기 위해 분주하다. 생활의 무게와 문화 규범의 제약은 개체의 자유로운 자아의식을 구속하고 억제한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모든 이해관계와 세속의 잡념이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춘다. 꿈에서는 생각과 마음이 탁 트이고, 정감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풍부한 상상력이 발휘되면서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천지에서 노닐 수 있다.

 

평소 억압되어 있던 잠재의식이 드러나면서 아주 명료하고 생동감 있는 형상으로 인간의 심리 세계에 표출된다. 장주의 ‘나비 꿈’은 현 사회에서 억압되어 있던, 자유를 갈망하는 잠재의식을 반영한다. 이는 개인의 이상 속에 존재하는 ‘자유 왕국’의 예술적 재현이다. 또한 소박하고 돈후하며 무사무욕을 갈망하는 장자라는 개인의 감정과 자유로운 창조활동의 이상과 소원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나비’는 아름다운 삶의 화신이자 자유로운 인생의 상징이다.

 

 

이정(移情)과 물화(物化)

 

사람과 사물은 구별된다. 사람은 대상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지만, 대상은 인간의 오묘한 심리를 감지할 수 없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장자의 나비 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는 공리적이고 논리 분석적인 각도에서 사람과 사물의 대립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심미적인 시각, 예술적인 시야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오랜 세월 자연을 관찰하고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자연물의 특징과 본질을 탐구했다. 외형적인 구조나 운동 변화 속에서 자연물이 지닌 여러 가지 형태로 인해 사람들은 정감이나 이지가 더욱 풍부해 졌다.

 

사람들은 자연물과 생명 정감을 교류하는 가운데 일종의 정신적 즐거움과 심리적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일러 ‘이정(移情)’이라고 한다. 장자는 사회규범의 제약과 인간의 공리적 욕구의 간섭을 배제한 자유로운 꿈의 경계에서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는 정감 의식을 아무런 구속도 없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에게 옮겨 놓았다. 이로써 나비는 사람의 속성을 지니게 되고, 아름다움의 화신이자 자유의 상징으로 변화한다. 심미적인 태도, 예술적인 관점을 지닐 때 비로소 인간과 자연만물이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동질성을 지닌다. 이를 깨달아야 ‘장자의 나비 꿈’이 지닌 합리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독특한 객관적 체계에 대한 인식방법은 정감의 체험이자 직각적인 깨달음이므로 그것을 말로 전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의회(意會)’ 즉 마음으로 깨닫는, 일종의 직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정한 사회 현실의 참혹한 상황과 삶에 대한 감개로 인해 사람들은 때로 ‘장자의 나비 꿈’이 지닌 의미를 오해했다. 특히 후대의 문인이나 사대부들은 환로(宦路 : 벼슬길)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인생은 꿈과 같다.’는 식으로 소극적인 정서를 표출하곤 했다. 이처럼 ‘인생은 꿈과 같다.’는 뜻이 점차 ‘호접몽’ 자체를 대체하면서 인생의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 ‘장자의 나비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어쩔 수 없는 숙명론이 심미적인 이상과 인생의 희구를 생동적으로 표현한 ‘장자의 나비 꿈’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장자의 나비 꿈에서 그가 강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상은 ‘물화(物化)’다. 사람과 자연의 뿌리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면, “천지와 나는 함께 태어나고 만물과 나는 하나가 된다.(天地與我同生, 萬物與我爲一).“ 나와 외물이 서로 변화하여 ‘물아양망(物我兩忘 : 일체의 사물과 나를 모두 잊음)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속의 잡념을 떨쳐 버리고,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여 자아와 외물이 떨어질 수 없는 특수한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 일종의 심미정취인 이것은 직각(直覺)을 통해 사람과 자연 만물이 혼연일체임을 깨닫고 경험하는 것이다. 특히 이는 예술 감상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자연의 왕성한 활력을 맛보고, 가장 완미한 삶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의경 속에서 비로소 장자의 나비 꿈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P.9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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