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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독서 전략 - 21세기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권영식 지음 / 글라이더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온 세상에 무슨 소리가 가장 맑을꼬. 天地可聲第一淸
눈 쌓인 깊은 산속의 글 읽는 소리로세. 雪山深處讀書聲
신선이 패옥 차고 구름 끝을 거니는 듯 仙官玉佩雲端步
천녀가 달 아래서 거문고를 퉁기는 듯 帝女謠絃月下鳴
사람 집에 잠시라도 끊겨서는 안 되는 것 不下人家容暫絶
당연히 세상 형편과 함께 이룩될 일이로세. 故應世道與相成
북쪽 산등성이 오막살이 그 뉘 집일꼬. 北埯甕용云誰屋
나무꾼도 집에 가길 잊고 정 보낼 줄 안다네. 樵客忘歸解送情
정약용. <부득산북독서성(賻得山北讀書聲)>
다산은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 책 읽는 소리가 가장 맑고 좋은 소리라고 생각했기에 책 읽는 소리를 예찬하는 시를 지었다.
1. 내면을 키우는 묵상
한 권의 책을 읽어 나갈 때 모든 내용을 정독으로 읽을 수는 없다. 내용에 따라서 읽는 속도가 달라진다. 천천히 깊이 읽는 독서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천천히 읽는 방법 중에는 묵상이 있다. 묵상은 침묵하는 가운데 깨끗하고 은혜로운 단어에 귀를 기울이거나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묵상(黙想. meditation)의 어원은 '메디켈루스(medicelus)'라는 단어로 약(medicine)의 어원이기도 하다. 약이 몸에서 녹아 혈관을 통해 온 몸으로 퍼질 때 치료가 되듯이 거룩한 언어들이 묵상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영혼 속에 깊이 스며들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묵상은 라틴어로 메디타리(meditari)라고 하는데, ‘마음에 품다, 상상하다, 음미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신중히 생각하는 것, 반복하여 중얼거리는 것, 깊이 연구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묵상의 영어 단어와 비슷한 말로는 ‘되새김질(rumination)’이 있다.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들은 아침 일찍 풀밭에 나가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의 풀을 뜯어 먹는 데 온전히 집중한다. 그들은 일단 풀을 대강 씹어 삼킨 뒤 해가 뜨거워지면 그늘에 누워 위 속에 저장해 두었던 풀들을 다시 꺼내어 꼭꼭 씹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묵상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말들을 다시 떠올려 조용히 음미하며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지 상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명언, 좋은 글, 좋은 시, 특히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인격과 성품이 변화된다. 우리의 속사람이 새롭게 탄생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닭이 온몸으로 정성을 다해 알을 품으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이 마음으로 귀한 말씀을 품으면 새로운 내가 탄생한다. 우리는 그런 자신의 탄생에 감탄하게 된다.
묵상을 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평안해진다.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묵상은 깊이 있는 사람을 만든다. 깊이 있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고, 깨달음이 깊은 사람이며, 깊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깊이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 안에 있는 본질을 추구한다.
2. 온몸으로 읽는 낭독
낭독은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말한다. 유럽의 중세 시대나 우리나라의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낭독을 의미했다. 로마시대에는 낭독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운동의 하나로 보기도 했다. 낭독은 묵독과 달리 육체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예전에 동화구연을 배울 때 목소리 훈련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모든 글을 큰 소리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소화가 빨리 되어 금방 배가 고팠다.
낭독은 온몸으로 읽는 것이다. 책 읽는 소리에 정신이 맑아지고 몸에 있는 모든 세포들이 깨어나 힘을 얻고 글의 의미는 내면에 조용히 스며들게 된다. 낭독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평상심을 찾아주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내용은 크게 소리 내어 읽으면 이해가 훨씬 더 빨라진다.
마음에 위로가 되는 글은 그냥 큰 소리로 읽었을 뿐인데 새로운 힘이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요즘은 발표나 스피치 훈련을 위해서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은데 꽤 도움을 받을 것이다.
집안에서의 낭독은 가족관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준다.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아이들은 엄마 또는 아빠가 책 읽어주는 시간을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어휘력과 기억력, 집중력이 좋아지고 언어능력이 발달된다. 또한 평생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독서습관이 길러진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낭독하는 책을 통해서 아이의 관심사와 좋아하는 단어, 이해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부족한 부분은 메워주고 좋아하는 건 함께 나눌 수 있게 되니 사이가 더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아침 밥상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글을 읽어 주고 함께 아침을 먹는다면 아이들에게는 밥 먹는 시간이 특별해질 것이다. 가족이 서로 돌아가면서 좋은 시나 문구를 서로에게 낭독해주면 매일매일 특별한 이벤트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있다면 책을 읽어주고 큰 소리로 따라 읽게 하면 집중력과 학습능력이 좋아진다.
3. 반복읽기
반복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생명을 지속시키는 힘이 있고, 둔재를 천재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으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신분상승이라는 선물을 주기도 하고, 총명한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기도 한다.
조선 중기의 시인인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은 어릴 때 둔재로 유명했다. 주변 사람들은 온 동네에 바보로 소문난 김득신을 가르치는 일은 시간낭비라며 부친이 김치(金緻)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말렸다. 하지만 김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김득신에게 되풀이해서 글을 가르쳤다. 김득신은 스물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 한 편을 지어 부친에게 올렸다. 김치는 그 글을 받아보고 크게 감격했다. “더 노력해라. 공부란 꼭 과거를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을 들은 김득신은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더욱 분발해서 밤낮없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김득신에게는 독서록이 있었는데, 천 번을 읽지 않은 것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전’ 같은 것은 1억 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1억은 10만의 숫자를 나타낸 것이니 11만 3천 번을 읽은 것이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김득신의 서재는 ‘억만재(億萬齋)’라 이름이 붙여졌다.
김득신이 죽기 살기로 책을 읽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긴 했지만 서른아홉 살에는 진사과에 합격했고, 쉰아홉 살에는 과거에 급제했다. 무엇보다 그는 누구보다도 빼어난 작품을 남긴 조선 중기의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미련하고 둔한 김득신이었지만 독서를 반복함으로써 글을 암송하고 시를 쓰는 재주를 갖추게 되었으며 후세까지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부족한 사람은 있어도 부족한 재능은 없음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렸을 따름이다. <김득신의 묘비명>
세종대왕은 사서오경을 100번씩 읽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학>을 좋아했다. <대학>은 송나라의 사마광이 사서오경 중 <예기>에 있던 내용을 따로 떼어 만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덕을 밝히는 일,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 지극히 착한 것에 머무르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드는 격물, 사물의 도리를 깨닫는 치지, 정성을 다하는 성의, 마음을 올바르게 하는 정심,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는 수신, 집안을 바로잡는 제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치국, 천하를 평온하게 하는 평천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바로 세우고 집안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세종대왕은 이 책을 수백 번이나 읽었다. 이런 책을 수백 번 읽으면 그 누구라 하더라도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다만 수백 번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 뿐이다.
세종은 경전뿐만 아니라 조선의 악기, 음악 정비, 음운학, 한글 창제, 국방과 과학에 관한 수많은 책을 읽었다. 조선의 오백년 역사는 그의 독서력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왕, 가장 열심히 노력하고 부지런히 일한 왕, 수많은 업적과 귀중한 발명품을 후손들에게 선물로 남긴 왕이 바로 세종이다. 그 위대한 업적을 뒷받침했던 것이 바로 방대한 독서력이었다. p.118~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