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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 ㅣ 한국적 행서 시리즈 8
황성현 지음 / 서예문인화 / 2011년 11월
평점 :
귀거래사(歸去來辭)는 “돌아가련다! 고향의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명구로 시작된다. 전반에는 관직을 사퇴하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해방감을 가을 정경 속에 그려냈고, 후반에는 다가오는 노년의 삶을 천명에 맡기는 심경을 봄의 정경 속에 묘사했다. 전체적으로 영탄조가 강하나, 신선한 정경 묘사와 청아한 풍취가 넘쳐흐르는 걸작으로, 관직을 내놓고 은둔생활(隱遁生活)을 하겠다는 선언의 뜻이 담겼다. 원문은 생략하고 우리말로만 옮긴다.
돌아가련다! 고향의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겠는가?
이미 내가 잘못하여 스스로 벼슬살이를 하는 바람에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혼자 한탄하고 슬퍼만 해야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은 따질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 올 것은 바른 길을 따를 수 있음을 알았노라. 사실 내가 길을 잃고 헤매기는 했으나 아직은 그리 멀리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각성하여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잘못이었음도 깊이 깨달았노라.
집으로 돌아가는 배는 출렁출렁 가볍게 바람을 타고 떠가며, 표표(飄飄)히 부는 바람은 옷자락을 불어 날리고 있네. 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심정으로 길 가는 행인에게 앞으로 길이 얼마나 남았는가 묻기도 하고, 또 새벽 일찍 길에 나서며 아직도 새벽빛이 희끄무레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기도 하네.
마침내 저 멀리 나의 집 대문과 지붕이 보이자, 나는 기뻐서 뛰었네. 머슴아이가 길에 나와 나를 맞이하고, 어린 자식은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네. 뜰 안의 세 오솔길은 황폐해졌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그대로구나.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술 단지에는 아내가 정성들여 담근 술이 가득 차 있네.
술 단지와 술잔을 끌어당겨 혼자 따라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들을 보며 즐거운 낯으로 미소를 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느긋한 기분을 맛보니, 비록 방은 무릎을 두고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좁지만 충분히 안빈낙도(安貧樂道)할 수 있음을 실감하네.
전원을 날마다 돌아보니 제법 운치 있게 되었으며, 대문이 비록 있기는 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노상 닫혀 있네. 지팡이 짚고 이리저리 소요(逍遙)하다가 아무 곳이나 내키는 대로 앉아 쉬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높이 들어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하네. 구름은 무심히 산굴에서 나오고, 새들도 날기에 지쳤는지 둥지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
마침 해도 어둑어둑 저물어 들어가려 할 무렵,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대고 맴돌고 있네. 돌아왔네! 이제부터는 세속적인 교제를 그만두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리라! 속세와 나는 서로가 어긋나고 맞지 않거늘, 내 다시 수레를 타고 무엇을 찾아다닐까보냐!
일가친척들과 정이 넘치는 이야기를 기쁜 마음으로 주고받으며, 혼자 있을 때는 거문고와 독서를 즐김으로써 세상사를 잊는다.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으니, 앞으로는 서쪽 밭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네. 포장 친 수레를 타고 육로로 가기도 하고, 혹은 혼자서 조각배를 젓고 물길을 따라 멀리까지 농사를 지으러 가네.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꾸불꾸불 깊은 골자기로 들어갔다가, 다시 이번에는 우툴두툴 높고 험한 산을 넘기도 하네.
초목은 나날이 무성해가고, 샘물은 졸졸 흐르기 시작하네. 만물이 때를 만나 생동함을 볼 때, 내 인생이 장차 끝나게 될 것임을 느끼네. 아! 이제는 나의 인생도 그만인가 보다! 내 몸을 이 세상에 맡기고 살날도 앞으로 얼마나 될 까? 그러나 어찌 나의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죽으나 사나 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황(遑遑)한 마음으로 욕심내고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나는 부귀도 바라지 않고, 또 죽은 후에 천제(天帝)가 사는 천국에 가서 살 것이라는 기대고 하지 않네. 때가 좋다고 생각되면 혼자 나서서 거닐고, 또 때로는 지팡이를 세워놓고 김매기도 하네. 동쪽 언덕에 올라가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네.
모름지기 천지조화에 따라 인생을 마치려고 하노라. 천명(天命)을 한껏 즐긴다면 또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
가슴 벅차게 고향을 예찬하는 이 선언문(?)에서 작자의 의도가 들어 있는 빼어난 구절을 하나 꼽으라면 다음의 구절이다. “구름은 무심히 산굴에서 나오고, 새들도 날기에 지쳤는지 둥지로 돌아올 줄 아는 구나”(雲無心而出岫, 鳥倦飛而知還) 이 구절은 비록 구름과 새를 예로 들었지만, 거기에는 자유를 사랑하고 자연을 그리워하는 시인 자신의 마음이 한껏 녹아 들어가 있다. ‘수(岫)‘는 <이아(爾雅)>에 보면, “산에 있는 굴을 수(岫)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산 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동굴을 가리키는 듯하다. 종종 산에 가면 풍혈(風穴)이라는 것이 있어서 더운 여름에도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오는데, 계절에 따라서는 안개가 뿜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 흡사 구름이 산굴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귀원전거(歸園田居 : 고향집으로 돌아와 밭에 살다.)> 다섯 수 역시 자유로운 전원생활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