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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본기 2 ㅣ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여후의 노심초사와 고조의 죽음
여태후는 고조가 보잘것없었을 때의 부인으로 효혜제(유영)와 딸 노원태후를 낳았다. 고조가 한왕이 되자 정도의 척희를 얻어 아끼고 사랑하여 조(趙)은왕 여의(如意)를 낳았다. 효혜제는 사람됨이 어질고 약하여, 고조는 자신을 닮지 않았다고 여겼다. 이에 늘 태자를 폐하고 자신을 닮은 척희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세우려 하였다.
척희는 귀여움을 받아 고조를 따라 늘 관동까지 갔는데, 밤낮으로 울면서 태자 대신 자신의 아들을 세우려고 하였다. 여후는 나이가 든 후로는 늘 관중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고조를 만날 일이 드물어 더욱 멀어졌다. 여의가 조왕(趙王)이 된 뒤로 태자를 대신할 뻔한 일이 몇 차례 있었지만, 대신들이 말리고 유후(장량)가 계책을 냄으로써(상산사호를 모셔와 고조의 마음을 돌림) 태자는 폐위되지 않았다.
여후는 강단이 센 사람이라 고조가 천하를 평정하는 데에 힘을 보탰고, 대신들을 죽이는 데도 여후의 힘이 컸다. 여후의 오라비 둘은 모두 부장이 되었다. 큰 오라비 주여후는 전사하였기 때문에 그 아들 여이가 역후에 봉해졌고, 다른 아들 여산은 교후가 되었다. 작은 오라비 여석지는 건성후가 되었다.
고조12년(기원전 195) 4월 갑진일(음력 4월25일)에 고조가 장락궁에서 세상을 떠나자, 태자가 황제 칭호를 이어받았다. 당시 고조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 유비는 효혜제의 배다른 형으로 제왕(齊王)이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효혜제의 동생으로, 척희의 아들 여의는 조왕(趙王)이 되었고, 박부인의 아들 유항은 대왕이 되었다. 여러 희첩들이 낳은 아들 중 유회는 양왕, 유우는 회양왕, 유장은 회남왕, 유건은 연왕이 되었다. 고조의 동생 유교는 초왕이 되었고, 고조의 형의 아들인 유비는 오왕이 되었다. 유씨가 아닌 공신 파군 오예의 아들 오신은 장사왕이 되었다.
여후의 보복과 혜제의 자포자기
여후는 척부인과 그 아들 조왕을 가장 미워하여 척부인을 영항(永巷 : 궁정의 감옥)에 가두고 조왕을 불러들이라고 명령하였다. 사자가 세 번 갔으나 되돌아왔다. 조왕의 승상 건평후 주창이 사자에게 말하였다.
“고조 황제께서 조왕을 내게 맡기셨는데, 조왕은 나이가 어리시오. 가만히 듣자하니 태후께서 척부인을 미워하고 조왕을 불러 들여 죽이려 한다고 하니, 내가 어찌 왕을 보낼 수 있겠소? 왕이 병까지 있어 조서를 받들 수 없소.”
여후는 크게 노하여 바로 사람을 보내 주창을 불러들였다. 주창이 장안으로 불려 들어가자 곧 사람을 보내 조왕을 다시 불러오게 하였다. 조왕이 출발하여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인자한 효혜제가 태후의 노여움을 알고는 직접 패상에서 조왕을 맞이한 다음 함께 입궁하여 조왕을 옆에 낀 채 같이 먹고 잤다. 태후가 죽이고 싶었으나 틈을 얻지 못하였다.
효혜제 원년(기원전 194년), 12월에 효혜제가 새벽에 사냥을 나갔다. 어린 조왕은 일찍 일어나지 못하였다. 태후가 조왕이 혼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독주를 가져오게 하여 먹였다. 해가 밝을 무렵 효혜제가 돌아왔으나, 조왕은 이미 죽은 뒤였다. 이에 회양왕 유우를 옮겨 조왕으로 삼았다.
그해 여름, 조서를 내려 역후의 아비에게 영무 후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태후는 마침내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멀게 하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게 하고는 ‘사람 돼지(人彘)’라 부르도록 명하였다. 며칠 뒤 태후는 효혜제를 불러 ‘사람 돼지’를 보여주었다. 효혜가 보고는 물었고, 그제야 척부인임을 알고는 큰 소리로 울었다. 이 때문에 병이 나서 1년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였다. 사람을 시켜 태후를 청해서는 “이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신이 태후의 아들로서 아무래도 천하를 다스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효혜는 이로부터 날마다 술과 환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병까지 생기고 말았다.
2년(기원전 193), 초 원왕 유교와 제 도혜왕 유비가 조회에 들었다. 10월, 효혜제와 제왕이 태후 앞에서 편안한 술자리를 열었다. 혜제는 제왕을 형이라 생각하여 평민 집안의 예절처럼 윗자리에 앉혔다. 여후는 화가 나서 독주 두 잔을 따라 앞에 놓게 하고는 제왕에게 일어나 장수를 기원하게 했다. 제왕이 일어나자 효혜도 따라 일어나 잔을 들고 함께 장수를 기원하려 하였다. 덜컥 겁이 난 태후가 벌떡 일어나 효혜의 잔을 엎어 버렸다. 제왕이 괴이하게 여겨 감히 마시지 못하고 취한 척하며 자리를 피하였다. 물어 그것이 독주임을 안 제왕은 두려움에 떨며 장안을 벗어나지 못할까 걱정하였다. 제나라의 내사(內使) 사가 제왕에게 말하였다.
“태후에게는 오로지 효혜와 노원공주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70개가 넘는 성을 가지고 있지만, 공주는 성 몇 개만을 식읍으로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정성껏 군 하나를 태후께 바쳐 공주의 탕목읍으로 삼게 하시면, 태후는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이고, 왕께서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에 제왕은 성양군을 바치며 공주를 왕태후로 높여 부르니, 여후가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이어 제왕의 관저에서 술자리를 베풀어 즐겁게 마신 다음 제왕을 돌려 보냈다. p.389~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