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완역 사기본기 2 ㅣ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항우의 입관과 홍문연(鴻門宴)
항우는 진(秦)의 땅을 공략하여 평정하려고 함곡관(函谷關 : 관중 땅의 관문)에 이르렀으나 수비병이 있어 들어가지 못하였다. 게다가 패공(沛公 : 유방이 왕이 되기 전 칭호)이 이미 함양(咸陽 : 관중의 중심부)을 격파하였다는 보고를 받자, 항우는 크게 화가 나서 당양군 등을 보내어 함곡관을 공격하게 하였다. 항우가 마침내 함곡관에 들어가 회수 서쪽에 이르렀다.
패공은 패상에 주둔하고 있어서 항우와 서로 만나지 못하였다. 패공의 좌사마 조무상이 항우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패공이 관중((關中)의 왕이 되어 자영(秦의 3세 황제)을 재상으로 삼아 진귀한 보물을 모두 다 차지하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항우가 몹시 노하여 “내일 병사들을 잘 먹이고 패공의 군대를 격파하리라.”라고 말하였다.
이때 항우의 병사는 40만 명으로 신풍(新豊)의 홍문(鴻門)에 있었고, 패공의 병사는 10만 명으로 패상(覇上. 現 서안시 장안구 백록원)에 있었다. 범증이 항우에게 충고하였다.
“패공이 산동에 있을 때는 재물을 탐내고 여자를 좋아하였는데, 지금 입관(함곡관을 넘어 관중에 들어감)해서는 재물에는 손도 대지 않고 여자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 뜻이 작은 곳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제가 사람을 시켜 그 기세를 살피게 하였더니, 용과 호랑이처럼 오색이 찬란한 것이 천자의 기운입니다. 서둘러 쳐서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초의 좌윤 항백은 항우의 작은 아버지로 평소 유후 장량과 사이가 좋았다. 장량은 이때 패공을 따르고 있었는데, 항백이 야밤에 말을 달려 패공의 군영으로 가서 몰래 장량을 만나 모든 일을 다 알리고 장량에게 함께 떠나자며 “패공을 따라 함께 죽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장량은 “신은 한왕을 위하여 패공을 따르고 있는데, 패공이 지금 위급하다고 하여 도망치는 것은 의리가 아니니 알리지 않을 수 없겠소.”라고 하였다. 장량이 바로 들어가 패공에게 모두 말하였다.
패공은 크게 놀라며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하자, 장량은 “누가 대왕께 그런 계책을 냈습니까?”라고 물었다. 패공은 “웬 무지한 잡놈이 네게 ‘관을 막고 제후들을 들이지 않으면 진의 땅은 모두 왕 차지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기에 그 말에 따랐소.”라고 대답하였다.
장량이 “대왕의 병졸이 항왕을 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묻자 패공은 잠자코 있다가 “물론 그렇지 않소.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장량이 “항백에게 패공은 항왕을 감히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시오.”라고 일러 주었다.
패공이 “당신과 항백은 어떤 관계요?”라고 묻자 장량은 “진나라에서 신과 어울릴 때 항백이 사람을 죽인 적인 있는데, 신이 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급한 일이 생기자 달려와 이 장량에게 알려준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패공이 “둘 중 누가 나이가 많소?”라고 묻자, 장량은 “항백이 신보다 연장입니다.”라고 답하였다. 패공은 “당신이 나를 위하여 항백을 불러주시오. 내가 그를 형으로 모시리다.”라고 하였다.
장량이 나가서 항백을 부르자, 항백이 바로 들어와서 패공을 만났다. 패공은 술잔을 들어 건강과 장수를 빌고는 혼인을 약조하며 말하였다.
“나는 입관한(관중 땅에 들어간) 뒤로 추호도 물건에 손대려 하지 않았고, 인구를 등기하고 창고를 잘 관리하면서 항 장군을 기다렸소. 장수를 보내어 관을 지키게 한 것은 도적의 출입과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소. 밤낮으로 장군 오시기만을 기다렸는데 어찌 감히 반역을 한단 말이오? 항백께서 신이 배은망덕하지 않다는 것을 잘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항백이 이를 허락하며 패공에게 “내일 아침 일찍 오셔서 항왕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라고 하자, 패공은 “좋소”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항백은 그날 밤으로 다시 군영으로 돌아가 패공의 말을 낱낱이 항왕에게 보고한 다음 “ 패공이 먼저 관중을 쳐부수지 않았다면 그대가 어찌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지금 그 자가 큰 공을 세웠음에도 공격하는 것은 의롭지 않은 일이니 잘 대해 주는 것만 못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자 항왕이 허락하였다.
패공이 이튿날 아침 100여 기를 대동하고 항왕을 만나러 왔다. 홍문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하였다.
“신은 장군과 더불어 죽을힘을 다해 진을 공격하였습니다. 장군께서는 하북에서 싸우시고, 신은 하남에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먼저 관중(關中 : 함곡관의 서쪽지역으로 秦의 본거지)에 들어와 진을 무찌르고, 이곳에서 장군을 다시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소인배의 말 때문에 장군과 신의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항왕이 “이는 패공의 좌사마인 조무상의 말 때문이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항적(항우의 본명)이 어찌 그럴 수 있겠소.”라고 말하였다. 항왕은 이날 패공을 머무르게 하여 함께 술을 마셨다. 항왕과 항백은 동쪽을 향해 앉고, 아보는 남쪽을 향해 않았다. 아보는 범증을 말한다. 패공은 북쪽을 향해 앉고, 장량은 서쪽을 향해 배석하였다. 범증이 여러 차례 항왕에게 눈짓을 하며 차고 있던 옥결을 들어 보이길 세 차례(유방을 죽이라는 신호). 항왕은 말없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범증이 일어나 나가며 항장을 불러 말하였다.
“군왕이 모질지 못한 사람이다. 들어가면 앞으로 나가 축수를 올려라. 축수가 끝나면 검무를 청해 틈을 보다가 앉은 자리에서 패공을 쳐 죽여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장차 모두가 그에게 잡히고 말 것이다.” 항장이 바로 들어가 축수를 올렸다. 축수를 마치고는 “군왕과 패공이 함께 술을 드시는데 군중에 즐길 거리가 없으니 검무라도 출까 합니다.”라고 하였다.
항왕이 “좋다.”라고 하자 항장은 검을 뽑아 춤을 추기 시작하였고, 항백도 검을 뽑아 춤을 추기 시작하였는데 몸으로 계속 패공을 감싸는 바람에 항장이 공격할 수 없었다.
이에 장량은 군문으로 가서 번쾌를 만났다. 번쾌가 “오늘 일은 어떻게 되었소.”라고 묻자, 장량은 아주 급하오. 지금 항장이 검을 뽑아 들고 춤을 추는데 아무래도 그 의도가 패공에게 있는 것 같소“ 라고 답하였다. 번쾌가 ”상황이 급박하니, 신이 들어가 목숨을 걸고 싸우겠소“라고 하였다.
번쾌가 곧장 검을 차고 방패를 들고는 군문으로 들어갔다. 위병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창으로 막자, 번쾌가 방패 모서리로 쳐서 위병을 쓰러뜨렸다. 번쾌가 드디어 안으로 들어가 장막을 걷고 서쪽을 향해 서서는 눈을 부릅뜨고 항왕을 노려보는데, 머리카락은 하늘로 곤두서고 눈 꼬리는 찢어질 것 같았다.
항왕이 검을 짚고 무릎을 세워 앉으면서 “그대는 무엇을 하는 자인가?”라고 물으니, 장량이 “패공의 참승 번쾌라는 자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항왕이 “장사로다! 그에게 술을 내려라.” 라고 하였다. 큰 술잔에 술이 나왔고, 번쾌는 고맙다고 절하고는 일어나 선 채로 다 마셨다. 항왕이 “돼지 다리를 주어라.” 하자, 즉시 익히지 않은 돼지 다리 하나를 주었다. 번쾌는 방패를 땅에 엎어 그 위에 돼지 다리를 올려놓고는 검으로 잘라 먹었다. 항왕이 “장사, 더 마실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니, 번쾌가 말하였다.
“죽음도 피하지 않는 신이 술 한 잔을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대저 호랑이와 이리 같은 마음을 가진 진왕이 사람 죽이기를 다 죽이지 못할 듯 죽이고 다 사용하지 못할 듯 형벌을 가하니, 천하가 모두 그를 배반하였습니다. 회왕(楚懷王. 재위 BC208~BC205.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등장하는 초 의제와 동일인물)께서 여러 장수들과 약속하여 ‘먼저 진을 깨고 함양에 들어간 자를 왕으로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패공께서 먼저 진을 깨고 함양에 들어갔지만 추호도 물건에 손대지 않으셨고 궁실을 단단히 봉쇄한 다음 패상(覇上)으로 철군하여 대왕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일부러 장수를 보내어 관문을 지키게 한 것은 다른 도적들의 출입과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듯 힘들게 높은 공을 세웠는데도 제후로 봉하는 상은 없을망정 소인배의 헛소리를 듣고 공을 세운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이는 멸망한 진의 뒤를 잇는 일로 대왕께서는 취할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항왕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앉으라.” 라고 하였다. 번쾌는 장량을 따라 앉았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패공이 측간에 간다고 일어나 번쾌를 밖으로 불러냈다. 패공이 나간 뒤 항왕은 도위 진평에게 패공을 불러오게 하였다. 패공을 불러오게 하였다. 패공이 “바로 나오느라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라고 하자, 번쾌는 “큰일에서는 자잘한 것은 따지지 않고, 큰 예의에서는 작은 나무람 정도는 겁내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저들은 칼과 도마고 우리는 물고기 신세인데 무슨 작별 인사를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곳을 떠나면서 장량에게 남아서 사죄하게 하였다. 장량이 “대왕께서는 선물을 갖고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패공은 “항왕에게 주려고 백벽 한 쌍과 아보(범증)에게 주려고 옥두 한 쌍을 가지고 왔는데 화난 모습을 보고는 감히 올리지 못하였소. 공이 대신 바치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장량이 “삼가 받들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때 항왕의 군대는 홍문 아래에 있었고, 패공의 군대는 패상에 있어서 서로 40리 떨어져 있었다. 패공은 수레와 말을 버려둔 채 몸만 빠져 나와 홀로 말을 탔고, 번쾌와 하후영, 근강, 기신 등 네 사람은 검과 방패를 지니고 걸어서 여산을 내려와 지양의 샛길을 거쳐 왔다. 그에 앞서 패공은 장량에게 “이 길로 우리 군영까지는 20리에 지나지 않소. 내가 군중에 도착할 무렵 공이 바로 들어가시오.”라고 일러두었다. 패공이 떠나고 샛길로 군중에 도착할 때가 되자, 장량은 안으로 들어가 사죄하며 말하였다.
“패공께서는 술을 이기지 못하여 작별 인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삼가 신 장량에게 백벽 한 쌍을 대왕 족하께 재배의 예를 올리며 바치게 하셨고, 옥두 한 쌍은 대장군 족하께 재배의 예를 올리며 바치게 하셨습니다.”
항왕은 “패공은 어디에 계신가? 라고 물었고, 장량은 ”대왕께서 잘못을 질책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는 홀로 빠져 나가셨는데 군중에 이미 도착하였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항왕은 바로 백벽을 받아 자리 위에 두었지만, 아보는 옥두를 받아 바닥에 놓고는 검을 뽑아 깨부수며 ”아! 어린아이와 함께 일을 꾀하는 것이 아닌데! 항왕의 천하를 빼앗을 자가 있다면 틀림없이 패공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그의 포로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패공은 군영에 당도하자마자 즉시 조무상을 베어 죽였다. p.206~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