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호 남계우 <호접도> 19세기. 개인 소장.
19세기 후반, 조선왕조의 철종 연간은 근대의 문턱이었다. 1862년(철종 13) 임술민란이라 불리는 삼남지방의 농민 봉기 이후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까지 50여 년간 조선왕조에서는 소요와 변란이 5년이 멀다하고 연이어 일어났다.
이 격동의 50년은 조선이 세계와 만나는 개항기이자 근대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개화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개항은 열강들의 침략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 졌고 낯선 개화의 바람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채로 조선 근대사회로 내몰고 있었다. 사회 전체가 아무런 준비 없이 개화기를 맞았다. 그런 상황에서 미술계의 능동적인 대처는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근대성은 사상과 물질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예리한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들은 거의 동물적 감각으로 근대를 감지하였다. 19세기 중반에 나타나는 신감각파의 이색적인 화풍이 이를 말해준다. 북산 김수철, 일호 남계우, 몽인 정학교 등의 신선한 감각파 그림은 이 시기가 개화기이고 근대가 멀지 않음을 작품으로 말해준다,
일호(一濠) 남계우(南啓宇.1811~1888)는 나비를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까지 얻은 신감각파의 대표적 화가였다. 의령 남씨 명문가 출신이자 소론의 영수였던 남구만의 5대손으로 용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사까지 지냈지만 세월은 여전히 소론에게 불리하여 그에겐 벼슬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이 56세에 감역(9품)에 제수되고, 72세에 가정대부(嘉靖大夫.종2품)가 내려졌지만 실직에 나가지는 않았다.
남계우는 평생 초야에 묻혀 나비 그림만 그렸다. 그의 나비 그림은 앞 시대 화가들과는 전혀 달랐다. 극사실에 가까울 정도로 정밀했고 너무도 다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4폭의 <군접도(群蝶圖)>에는 각종 나비 150여 마리가 극사실로 그려져 장관을 이룬다.
‘나비박사’ 석주명은 남계우의 작품 속에서 무려 37종의 나비를 암수까지 구별해냈다. 그중엔 남방공작나비라는 열대종까지 있다고 했다. 남계우의 나비 그림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마루야마 오쿄의 <곤충도보>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극찬했다. 남계우의 나비에 대한 연구도 대단히 열심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접도(花蝶圖)> 대련에는 나비에 대한 각 설을 적어 놓았는데 그 한 폭엔 이렇게 씌어 있다.
<고금주(古今注)>에서는 귤의 좀이 나비로 변한다고 하였고, <이아익(爾雅翼)>에서는 배추벌레가 나비로 변한다고 했고, <열자(列子)>에서는 까마귀 발의 잎(烏足之葉)이 나비로 변한다고 하였고, <단청야사(丹靑野史)>에서는 색옷이 나비로 변한다고 했으나 이는 모두가 각기 목격한 바에 의하여 말한 것이리라.
도대체 이 많은 지식을 어떻게 찾아내어 섭렵한 것인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남나비’는 그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직접 나비를 채집하였다. 나비를 정말로 좋아하고 나비에 미쳐 있었던 것이다. 예쁜 나비를 보곤 갓 쓰고 도포 입은 채로 10리를 쫓아가 잡아 온 적도 있다고 한다. 잡아온 나비는 유리그릇에 넣고 관찰했으며, 나비 수백 마리를 책갈피에 끼워 놓고 실제로 보면서 그림을 그렸다. 나비에 유리를 대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유탄으로 윤곽을 그린 후 채색을 더하기도 했다. 그는 <영접(詠蝶)>이라는 시에서 나비를 이렇게 노래했다.
따뜻한 햇볕 산들바람 날씨 좋은데 暖日輕風好天氣
부드러운 더듬이 비단 날개로 천천히 맴도네. 柔鬚錦翅緩徘徊
전생이 채향사였음을 알겠으니 前身知是採香使
작은 꽃 숨은 풀까지 뒤적이며 날아오네. 領 略小花幽草來
우봉 조희룡이 화제를 쓴 그의 <호접도>를 보면 화면의 경영이 대단히 근대적이다. 막 태어난 새끼 나비들의 모습이 아련하고 나비 한 마리가 꽃에 앉아 꿀을 빨고 있다. 마티에르 감각도 탁월하여 금박지인 냉금지(冷金紙)를 사용하였고, 노란색은 금가루를, 흰색은 진주가루를 사용하여 채색하였다. 모두가 모더니즘적 변형이다. 게다가 우봉의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화제가 그림과 혼연히 조화를 이루어 희대의 명작이 되었다.
남계우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무언가 하나에 전념하면서 자신의 감성을 속이지 않고 살아간 사람의 삶에는 시대상이 절로 반영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것은 자기만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인생임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사람들이 그에게 왜 나비만 그리냐고 물으면 그는 쓰르라미와 귀뚜라미는 가련한 벌레지만 나비는 일생을 아방궁에서 살지 않느냐며 ‘나비’라는 시를 읊었다.
가련한 저 쓰르라미나 귀뚜라미들은
쓸쓸하고 메마르고 또 바람을 타는데
가장 화려한 건 오직 나비뿐이라
일생을 꽃 밑에서 보내네그려.
그렇게 생각했다면 ‘남나비’ 남계우야말로 나비와 함께 평생을 아방궁에서 산 사람이 아닐까.
유홍준 <명작순례> p.160~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