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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군 새소군전
심치열 지음 /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昭君怨(소군원 : 왕소군의 애절함)
東方叫(동방규. 생몰미상. 측천무후 시대의 문인 )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이 피지 않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허리띠 자연히 느슨해져도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허리를 가늘게 하려는 게 아니라네.
동방규는 왕소군(王昭君, BC48~BC6 추정) 이라는 비운의 여인 때문에, 그 여인의 불우한 일생을 그린 시 때문에 유명해진(?) 시인이다. 그런데 유명해지기는 했어도, 그의 생애나 시작 활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다. 따지고 보면 유명해진 것은 그의 시 <소군원(昭君怨)>이고, 그 가운데서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바로 이 구절이다.
이 시에는 왕소군이 고국 한나라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아주 절절하게 담겨 있다.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 재위 기원전 49~기원전33)의 후궁으로, 절세 미녀였다. 그 당시 한나라는 북방에 있는 흉노(匈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흉노의 선우(單于: 우두머리) 호한야(胡韓耶. 재위 BC58∼BC31)가 자신의 왕비로 삼겠다고 공주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후궁 한 명을 보내주는 대가로 변경이 잠잠해진다는 것은 한나라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었다.
원제에게는 후궁이 많았다. 그래서 그녀들을 모두 직접 만나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제는 궁실의 화공(畵工) 모연수(毛延壽)를 시켜 모든 후궁의 화상을 그리도록 한 후, 그 그림을 보고 불러 잠자리를 같이 했다. 후궁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기 위하여 화공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예쁘게 그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도도한 왕소군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제를 가까이에서 모실 기회를 갖지 못했다. 말하자면 ‘유전미녀(有錢美女)’요, ‘무전추녀(無錢醜女)’였던 셈이다.
그러던 중 호한야의 청을 받아들여 원제는 후궁 중에 한 명을 고르기로 했다. 원제는 화공이 그린 그림만 보고 그 중에서 제일 못생긴 후궁을 뽑았는데, 당연하게도 왕소군을 흉노의 왕빗감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왕소군이 오랑캐 땅으로 떠나려는 즈음, 그제야 원제가 그녀를 보게 되었다. 왕소군은 여러 후궁 중 제일 가는 미인일뿐더러 언사와 행동거지가 출중했다. 원제는 후회막급이었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라 돌이킬 수가 없었다. 그녀가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추하게 그려진 사정을 알게 된 원제는 대로(大怒)하여 모연수를 죽여 버렸다. 마침내 그녀는 쓸쓸히 흉노 땅에 들어가 마음에도 없는 오랑캐의 왕비가 되었다. 흔히 왕소군으로 알려진 이 여인의 본명은 왕장(王牆)이며, 소군은 그녀의 자(字 )다. 뒷날 왕소군이 죽어 흉노의 땅에 묻혔는데, 겨울이 되어 흉노 땅의 풀이 모두 시들어도 그녀 무덤가의 풀만은 푸르렀다 하여 그 무덤을 ‘청총(靑塚)’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후세 시인들은 왕소군을 주제로 그 애절한 사연을 시에 담아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역대 우수한 문학 작품만을 모아 엮은 <문원영화(文苑英華)>라는 책에는 왕소군을 기리는 송대(宋代) 이전 시인들의 시 35수를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이름으로 수록하고 있다. 동방규의 작품과 더불어 이백의 ‘소군원(昭君怨)’도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昭君怨(소군원)
이백(李白. 701~762)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왕소군 옥안장에 치맛자락 스치며
上馬涕紅頰 (상마체홍협) 말에 오르자 붉은 뺨에 눈물 적시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은 한나라 궁녀의 몸이지만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에는 오랑캐의 첩이라네.
왕소군이 눈물을 흘리며 머나먼 오랑캐 땅으로 떠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듯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떠날 때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 안팎이었다. 그녀도 그녀지만, 그녀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왕소군의 생애를 담은 영화로 친다면, 이백의 시가 전편(前篇)을 그린 셈이고, 동방규의 시는 후편(後篇)을 그린 셈이다. 왕소군의 애절함을 그린 시인들의 다른 작품도 비교해서 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이별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바로 다음날 또 만나는 연인들도 밤에 헤어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니 몇 달이나 몇 년 만에 만나고는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이별 가운데 가장 마음 아픈 이별은 생사(生死)의 헤어짐이다. 살아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헤어짐, 그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이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