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2 - 항우와 유방 스타북스 초한지 2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垓下歌 (해하가 : 해하의 노래)

 

                                           항우(項羽. 초나라. BC232~BC202)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건만

 

時不利兮騶不逝 (시불리혜추불서) 때가 불리하여,오추마는 나아가지 않는구나.

 

騶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좋을까?

 

 

우리가 어렸을 때 국어나 한문시간에 역발산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를 배웠다. 더불어 유방과 항우의 손에 땀나는 전쟁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우리 후배들이나 더 젊은 친구들은 역도산(力道山. 1925~1963)은 알아도 역발산과 항우는 모른다. 배우지 않았으니 모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논술과 입시에 관계되지 않는 것들은 보지도, 배우지도 않으려 드는 것이 요즘 세태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국지(三國志)>는 몇 번씩 읽어도 <초한지(楚漢志 )>는 결코 읽지 않는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아니, 그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 태반이다. 그러다가 1993년, 영화 <패왕별희(覇王別姬)>가 뜨자, 사정은 일변했다. 사람들은 금세 장국영(張國榮. 1956~2003)과 항우와 우희에게 빠져든 것이다.

 

<패왕별희(覇王別姬)>는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의 용맹성과 그 애첩 우희(虞姬. ?~BC202)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중국의 대표적 고전 경극(古典京劇)이다. 경극 <패왕별희>가 처음 창작된 것은 1918년 무렵이다. ‘패왕별희’라는 제목은 ‘초패왕과 우미인, 즉 우희의 이별’이라는 뜻으로, 한나라 건국 때의 역사를 담은 <초한지(楚漢志)>에 나오는 극적인 장면이다.

 

초패왕 항우와 한왕(漢王) 유방은 홍구(鴻溝)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기원전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BC204)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 도읍인 팽성을 향해 철군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BC168)과 진평(陳平. ?~BC178)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에서 한신(韓信. ?~BC196)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한 데다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의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들이 많은고?’ 이미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해하의 노래(垓下歌)>를 읊고 또 읊었다.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아 자결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미인들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에 걸맞게 나라를 망하게 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 비해, 우미인은 절개를 지키고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한 보기 드문 경우였다. 항우는 역사의 승부에서는 유방에게 졌지만, 여자 보는 눈은 남달랐던 모양이다.

 

한편 <소설 십팔사략(진순신 지음)>에 우희의 마지막을 묘사한 대목이 있어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항우는 자작시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읊조렸다. 우희도 옆에서 그것을 따라 읊었다. 그 후 우희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사(正史)는 역사의 동향과 관계가 없는 한 여자의 운명을 그다지 상세히 기록하지는 않았다. 다만 <초한춘추(楚漢春秋)>라는 책에 항우의 시에 대한 답가를 싣고 있을 뿐이다.

 

漢兵已略地 (한병이약지)  한나라 군대 이미 영토를 점령했고

四方楚歌聲 (사방초가성)  사방에 들리는 것은 초나라의 노래 소리뿐.

大王義氣盡 (대왕의기진)  대왕의 기개가 다했는데

賤妾何聊生 (천첩하료생)  천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오리까!

 

우희는 항우가 자신 때문에 번뇌하지 않도록 이 노래를 읊고 나서 검을 청해 받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고 한다. 한편 항우가 쉽게 검을 주지 않자, 자신도 포위를 뚫고 따라 가겠으니 검을 달라고 했다고도 한다. 혹은 항우가 자신의 번뇌를 끊고자 우희의 목을 쳤다는 말도 전해진다.

 

역대 중국의 미인들 가운데서도 우희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항우와의 마지막 장면을 빼고는, 그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그러니 미인이라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도 없고, 그녀에 대한 비난도 없다. 흔히 패자는 포악하고, 패자의 여자는 표독스럽다고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자신을 총애했던 남자를 망치게 했다는 욕을 얻어먹는 것이 대부분인데, 유독 우희에게는 나쁜 소문이 없는 것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우희의 가족에 대한 비난도 없다. 과문(寡聞)해서인지 몰라도 우희의 가족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항우가 서른 살에 죽었다면 우희는 그보다 몇 살 아래였을텐데, 젊은 여자치고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내조를 잘했든지, 성품이 조용했던 모양이다. 항우가 유방을 이겨서 우희가 황후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방의 부인 여태후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설치더니, 나중에 남편이 죽자, 남편의 애첩을 잔인하게 죽이고, 자신의 친척들을 정치 일선에 내세우는 등 여장부다운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어쨌거나, 우희의 무덤에 한 떨기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그 꽃을 ‘우미인초(虞美人草 : 개양귀비)’라 했으며, 당송 팔대가 중 한 사람인 증공(曾鞏.1019~1083)은 우희를 주제로 시를 남겼으니, 우희는 이래저래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우희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가 별로 없어 아쉬운 마음을 증공의 <우미인초>일부를 소개하면서 달래본다.

 

三軍散盡旌旗倒 (삼군산진정기도)  삼군은 흩어지고 깃발은 꺾이었으니

玉帳佳人坐中老 (옥장가인좌중로)  옥 장막의 아리따운 여인 앉은 채 늙었네.

香魂夜逐劍光飛 (향혼야축검광비)  향기로운 혼이 밤중에 검광을 쫓아 날아가니

靑血化爲原上草 (청혈화위원상초)  푸른 피는 들녘의 풀이 되었네.

芳心寂寞寄寒枝 (방심적막기한지)  미인의 꽃다운 마음 성긴 가지에 깃들었는데

舊曲聞來似斂眉 (구곡문래사렴미)  옛 노래 들려오니 눈썹을 찡그린 듯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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