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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역 백낙천 ㅣ 중국고전한시인선 3
장기근 지음 / 명문당 / 2002년 11월
평점 :
大林寺桃花 (대림사의 복사꽃)
白居易 (백거이. 772~ 846)
人間四月芳菲盡 (인간사월방비진) 인간 세상의 4월은 꽃이 다 졌는데
山寺桃花始盛開 (산사도화시성개) 산사의 복사꽃은 이제야 활짝 피기 시작하네.
長恨春歸無覓處 (장한춘귀무멱처) 봄이 돌아간 곳 찾을 길 없어 못내 안타까웠는데
不知轉入此中來 (부지전입차중래) 봄이 산중으로 옮겨온 것을 몰랐네.
이 시를 읽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바쁜데, 특히나 봄에는 더욱 부산스럽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봄에 발산하려니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에 4월이면 꽃도 다 지고, 봄도 어느새 돌아가고 없다. 그런데 번잡스러운 인간 세상에서 떠난 봄이 산사(山寺)에는 아직 남아 있다. 산사의 여유로움이 꽃과 봄을 조금 더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꽃이라도, 봄이라도 시끌벅적한 인간 세상보다 조용한 산자락에 머물렀다 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봄이 너무나도 짧아서 산사에 가 봐도 봄이 이내 가버린다. 아니. 산자락과 산사에 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가는 바람에 아직 여름이 오려면 멀었는데도 혼비백산해서 도망가 버리고 만다. 사람들의 극성이 계절을 쫓고 있는 셈이다. 자연 재해와 기상 이변도 다 그런 것이 아닌가.
한시에 많이 나오는 꽃 중에 하나가 바로 도화(桃花)다. 왜 일찍부터 그네들은 그렇게 복숭아꽃을 동경했을까? 복숭아꽃을 시에서 제일 많이 읊은 것은 역시 <시경(詩經)>에서다.
<주남(周南)>의 ‘도요(桃夭)‘는 “싱싱하고 싱싱한 복숭아나무, 그 꽃이 활짝 피었네. 그 아가씨 시집가면, 그 집안이 화목하리.”로 시작된다. 이 시는 이처럼 복숭아나무의 아름다운 꽃을 노래한 데 이어 탐스런 열매 그리고 무성한 잎을 노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이제 막 시집가려고 하는 젊은 처녀에게 보내는 축복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는 화사한 복숭아꽃과 아리따운 처녀의 얼굴을 오버랩해서 묘사하고 있다.
중국에서 이처럼 복숭아꽃이 미녀의 얼굴을 나타내는 예술적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소설 속에는 남편이 정원의 복숭아꽃을 넋 놓고 바라보자, 질투심에 불타는 부인이 그 나무를 잘라 버렸다는 웃지 못 할 내용도 있다. 이 또한 복숭아꽃에서 여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복숭아를 미녀에 곧잘 비유하는 한편, 사악한 기운을 떨쳐내고 불로불사(不老不死)를 가져다주는 주술꽃 또는 주술열매라고 믿는 신앙도 있어왔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섣달 그믐날 저녁 문 앞에 커다란 도인(桃人 : 복숭아나무로 만든 인형)을 세워 사악한 귀신을 막는 주술로 삼기도 했다. 그 밖에도 장례식이나 희생으로 쓰인 동물의 피를 뽑을 때 부정을 떨쳐내는 도열(桃茢 : 복숭아나무 가지와 갈대 이삭으로 만든 비)이나 도부(桃符 : 설날 아침에 악귀를 쫓기 위해 문짝에 붙이는 나뭇조각) 등의 주술도구가 등장하는데, 모두 복숭아나무로 만든 것이다.
한편 복숭아를 구애(求愛)의 표시로 사용한 흔적도 보이니, 바로 또 <시경>에서다. <위풍(衛風)>의 ‘모과(木瓜)’에는 “내게 큰 복숭아를 던져주기에, 아름다운 구슬로 갚아 주었네. 굳이 갚자고 하기 보다는, 길이 사이좋게 지내자는 거였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시에 복숭아뿐만 아니라 모과와 자두도 던져주는 것으로 봐서 춘추시대 위(衛)나라에서는, 청춘남녀가 자유롭게 만나는 자리에서 여자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던져주는 과실로 여러 가지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경요(瓊瑤)란 옥으로 만든 남성용 장신구의 일종으로, 여자가 던져 준 과실을 받은 남자는 상대방 처녀가 마음에 들면, 몸에 지니고 있던 것을 풀어서 답례로 줌으로써 애정을 표시하거나, 혹은 장래를 약속하는 선물로 삼았다.
이 밖에도 복숭아에 얽힌 사연은 많지만, 한 가지만 덧붙이기로 한다. 중국어로 ‘도화운(桃花運)‘이라는 말은 남녀의 애정운을 의미한다. 광주(廣州) 등 남방의 따뜻한 지방에서 복숭아는 젊은 미혼 남녀에게는 특별히 새해 애정운의 길흉을 점치는 중요한 꽃이다. 병에 꽃아 둔 복숭아꽃이 시들지 않고 오래 피어 있으면, 그해에는 반드시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게 된다고 한다. 이렇듯 복숭아는 이상향을 나타내는 꽃일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중국에서는 연애 그리고 결혼과 대단히 인연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