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낸다는 것 - 칭화대 10년 연속 최고의 명강, 수신의 길
팡차오후이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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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아마도 옛사람들이 명리를 가볍게 여기고 물아양망(物我兩忘 : 일체의 사물과 나를 모두 잊음)의 경지를 즐긴 것이 오늘날 현실에는 근본적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아마도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가 될 것이며, 옛사람처럼 유유자적할 여유가 없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요?

먼저 나는 한 가지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과거의 엘리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생존의 스트레스가 무척이나 컸고, 심지어는 우리보다 더욱 격렬한 경쟁에 시달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 하버드 대학교 송사(宋史) 전문가 ‘피터 볼’의 추산에 따르면, 송대의 과거시험에서 매년 시험에 합격한 숫자는 총 응시 인원의 1퍼센트 내외였고, 진사에 합격한 인원은 응시인원의 1000분의 1 내외였다고 합니다. 이 비율을 오늘날 대입시험의 합격률과 비교해 보면 아주 낮은 수치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의 부족한 물자, 어려운 생활 여건, 낙후된 의료 조건, 짧은 수명과 결부시켜 보면 과거 합격은 일생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고, 당시 교육 받은 사람들 사이의 경쟁은 오늘날의 격렬함에 비해 훨씬 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어느 사회든 생존의 스트레스와 격렬한 경쟁이 없는 사회란 없고, 다만 다른 시대나 다른 문화에서 수양한 사람들은 동일한 스트레스와 경쟁적인 심리상태에 직면하여 다른 처리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이어 왜 마음이 피로한지 한 번 분석해 보기로 합시다. 몸이 바쁘다고 마음이 꼭 피로한 것은 아닙니다. 근심이 너무 많거나, 혹은 불필요한 미련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때 마음이 피로한 법입니다. 심리적 문제의 대부분은 자세히 생각해 보면, 모두 근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입니다. 근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은 세속적인 욕망과 스트레스에 파묻혀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본심(本心)’을 잃은 것이라 불렀고, 때문에 학문을 하는 주요한 목표는 자신의 본심을 다시 찾는 데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맹자의 말로 하면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구방심(求放心)’입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인생의 각 단계마다 반복해서 물욕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 시절 부모님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야. 지금이 바로 인생의 앞날을 결정하는 시기인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인생은 끝난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지금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졸업하고 막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한 발 잘못 내딛으면 인생 전체가 실패하거나 최소한 여러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중년이 되면 중년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중년은 인생에서 혈기왕성하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이고,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절정기에 속하기 때문에 인생과 사업의 성패는 중년에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중년이 지나면 아마도 중년 이후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평생을 얼마나 조화롭게 살 수 있었는지는 바로 이 시기에 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를 지나면 아무리 애써도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업, 가정, 자녀, 건강 등의 문제로 인해 초조하고 불안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년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다시 생길 것입니다. 이 시기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라고 하늘이 언제라도 생명을 거두어 갈 수 있는 시기이기에, 이보다 더 중요하고 더 아까운 시기는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당연히 이 시기는 초조함이 가장 심할 것입니다. 한편에서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편 걱정하고 초조해하며 시간과 정력을 쓰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로 귀중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노인들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어쨌든 희망이라도 보인다면 꽉 붙잡고 놓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쉽게 손을 떼고 떠나려 하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한 번 기회가 오길 고대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기를 갈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운명은 종종 무정해서 마음속에 우수와 고통만을 더하게 될지 모릅니다. 이때 누가 자신의 인생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요? 때문에 우리가 현재 처한 인생의 모든 단계가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결정적인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근심을 선택하는 한 늙어 죽을 때까지 영원히 근심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문제의 관건은 일이 많거나 심리적 부담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나는 선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가 결코 우리보다 작지 않았음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옛날 사대부들이 겪은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우려와 앞날에 대한 걱정은 결코 우리보다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수신의 학문과 양생의의 도가 그런 어려운 조건하에서 제시한 처방약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와 똑같은 문제에 직면한 현대인들이 선인들의 학문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여길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곧 찾을 줄 아나,

잃어버린 마음은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마음 찾는 것뿐이다.

 

人有鷄犬放, 卽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基放心而已矣. <맹자 고자편>

 

이것이 바로 <맹자>의 명언 ‘구방심’입니다. ‘방심’이란 잃어버린 마음입니다. 맹자가 말한 의미는 만약 집에서 닭이나 개를 잃어버렸다면 지체 없이 그것을 찾아 나설 것인데, 닭이나 개보다 1만 배 더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갑자기 지갑이 없어졌거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급해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여러분은 아마도 곧바로 뜨거운 가마솥 안의 개미처럼 허둥대며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맹자>는 지갑이나 휴대전화보다 1만 배 더 귀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는데도 몇 년이 됐는지도 모르고 여태껏 그것을 찾으려고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이 물건이 바로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돈지갑이나 휴대전화보다 1만 배 이상 귀중한 것임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뜨거운 가마솥 안의 개미처럼 안절부절 못할 텐데 마음을 잃어버리고도 태연자약하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맹자는 마지막 결론으로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가 말한 ‘학문’이란 오늘날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 같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학문을 말합니다. 이런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려면 그것을 잘 지키고 소중히 여겨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해야 합니다. 학문을 하는 배경을 결코 학교에 한정하지 않고, 일과 일상생활에서 매 순간 체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p.146~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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