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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 - 동양고전총서 4
주희, 여조겸 엮음 | 이기동 옮김 / 홍익 / 1998년 8월
평점 :
18 명도(정호) 선생은 “부귀함으로 남에게 교만한 것은 본래 옳지 못한 일이지만, 학문으로 남에게 교만한 것도 그 해(害)가 적지 않다.”고 했다.
재산이 많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자세는 옳지 못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으로 남과 비교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를 생활에서 자주 볼 수가 있다. 특히 조금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잘못을 흔히 저지른다. 즉, 동료와의 대화 도중에 동료가 어떠한 사실을 자신보다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를 무시하는 말을 한다거나 하는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이렇게 보면 학식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교만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20 사람은 자신의 의식주에 대해서는 매사에 좋은 것을 구하면서도,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는 오히려 좋은 것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진실로 의식주에서는 좋은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오히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 이미 바르지 못하게 되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몸보신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좋은 집이나 차, 옷 등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정서에 도움이 되는 책이나 영화, 음악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마음보다는 몸, 정신보다는 육체적인 것을 더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예전과 오늘날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를 들어 보자. 비가 오는 날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정면에서 차가 그를 향해 달려와 금방이라도 그를 치려고 하는 순간,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차를 피하려고 옆으로 넘어지다가 진흙탕에 옷을 버리면 안 되는데.....’ 이렇게 망설이고 있던 사람은 결국 차에 치이고 말았다. 여기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옷보다는 몸이 소중하고 몸보다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진정한 수양의 길이다. 진정으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학문의 길이요, 성인의 가르침이다.
22 이천(정이) 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계를 다루는 일을 오래하게 되면 반드시 기계에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기계를 다룰 때 즐거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느끼면 씨를 뿌리는 것과 같아서 기계에 의존하는 마음이 싹트고 자라난다.”
생활에서 우리는 많은 도구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 도구들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반면에 우리의 능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같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를 보자. 이 사람은 보통 키보드를 사용해 글을 쓴다. 이러한 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나중에는 글을 쓸 때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글을 전혀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다거나, 혹은 간단한 철자나 띄어 쓰기도 혼동하는 경우가 생기고 만다. 또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하는 버릇이 있는 학생이 라디오가 고장이 났을 때 공부를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기계나 도구를 이용하더라도 그것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욱 절실한 교훈이라고 생각된다. P.474~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