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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 - 동양고전총서 4
주희, 여조겸 엮음 | 이기동 옮김 / 홍익 / 1998년 8월
평점 :
천하에 인재가 더러 있기는 하나 단지 천하에 도가 밝게 펴지지 않은 까닭에 그 재능을 성취하지 못한다. 또한 옛날에는 시로써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예로써 뜻을 굳건히 세우며, 음악으로써 온전한 덕을 이루었으나,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옛 사람들의 시에 대한 태도는 마치 오늘날의 대중적인 음악인 가곡을 대하는 것과 같아서 비록 마을의 아이들이라도 모두 그 이야기를 익히 들어서 그 뜻을 환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를 통해 선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었다.
오늘날은 학식이 많은 노선생도 오히려 그 뜻을 잘 알 수 없으니 어떻게 배우는 자를 일깨울 수 있겠는가? 이것이 시로써 선한 마음을 일으킬 수 없는 이유다. 옛날의 예가 이미 없어져 인륜이 분명치 않으며 집안을 다스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법도가 없어져 버렸다. 이것이 예로써 바르게 설 수 없는 이유다. 옛 사람들은 노래를 불러 성정을 기르고, 악기의 연주를 들어 이목을 기르고, 춤을 추어 혈맥을 길렀으나, 오늘날은 그것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이 음악으로써 온전히 덕을 이룰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인재 육성이 쉬웠고, 오늘날에는 인재 육성이 어려운 것이다. <교학 편 16조>
<해 설>
전인 교육을 위해서는 지적인 면, 정서적인 면, 의지적인 면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옛 사람들이 시, 예절, 음악을 가르친 참다운 뜻은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 몇 년 전 신문 구석에 난 한 작은 기사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강남의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하굣길에 병아리를 사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서는 아래로 떨어뜨려서 누구 병아리가 가장 오래 살아남는가를 실험했다는 것이다. 실로 몸서리가 처질만큼 잔인한 일이었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시장에서 부모를 졸라 병아리 한 마리를 사서는 마치 부모가 갓난아이를 돌보듯 애지중지하는 것이 보통 어린이들의 모습이었다. 행여 배고플까 좁쌀을 입에 넣어 주며 먹지 않는 병아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소꿉놀이 그릇에 물을 담아 먹이면서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하는 동요를 부르며 좋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그립다. 길에서 파는 병아리들은 대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어 버렸는데 그런 병아리가 죽으면 울면서 밥도 먹지 않겠다고 하고, 산으로 가 묻겠다며 안타까움과 애통함에 겹던 고운 심성들이 그때의 어린이들에겐 있었다. 그런데 병아리의 생존력 실험을 태연히 벌이다니.....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어린이다움을 상실해 버렸다. 그들의 언어생활, 그들이 즐기는 노래, 그들의 행동거지가 그러하다. 그들의 말씨는 TV의 드라마나 코미디의 대사 그대로 흉내 낸 거칠고 험한 말이 많다. 말끝마다 욕이 습관적으로 붙기도 한다. 욕을 욕인지도 모르고 내뱉는 것이다. 혹 욕하지 말라고 지적을 하면 그들은 의아한 눈으로, 가장 억울하다는 말투로, 쓸데없이 참견한다는 태도로 오히려 대든다. ‘내가 언제 욕했다고 그래요. 참 이상한 아저씨네......’
그들의 입에서는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을 노래하는 깨끗한 동심을 가꾸는 동요가 사라진지 오래다. 동요는 싱겁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5,6세 어린이들의 입에서는 그대로 댄스그룹의 야하고 자극적인 춤까지 그대로 흉내 내면서 흔들어 댄다.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중얼거리고 지나가는 가사를 랩인가 뭔가 라면서 멀끔히 재현해 내는 재주가 있다. 마치 야유하는 듯한 미국 가수들의 제스추어(?)인지 춤인지 모를 동작을 그대로 흉내 내면서 노래를 악쓰듯 부르기도 한다.
또 길에다 침을 뱉으면 어른들에게 야단맞고 자란 세대에 비하면 그저 천국이나 다름없다.
아무 데나 침을 뱉어도 이제는 야단칠 어른들도 없다. 요즘은 애 어른 없이 같이 뱉어 댄다. 전철이나 버스나 조용히 해야 할 어떤 공간에서도 그들은 조용히 하지 않는다. 결코 남을 위해 조용히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이러한 행동은 지성인이라는 현실감 없는 딱지가 습관적으로 붙어 다니는 대학생 무리들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대학의 지성인들은 자신들이 손해 보는 일에는 예민하게 계산하는 영악함을 가졌으면서도 수업 중에 복도에서 시장판처럼 떠드는 것이 예사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태가 왜 생겼는가?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진단은 굳이 내릴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라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말끝마다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을 잘 알고 있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자명하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음악, 좋은 글, 좋은 말씨와 행동을 가르쳐야 한다. 그냥 학교에서만 잠깐 배우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올바른 모범을 보여야 한다. p.452~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