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 - 언어의 소금, 《사기》 속에서 길어 올린 천금 같은 삶의 지혜
김영수 지음 / 생각연구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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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바르고 정의로운 인물들이 정당한 대우는커녕 박해를 받거나 불행하게 삶을 마치는 것에 대해 진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대체 하늘의 도라는 것이 정말로 이런 것인가?(儻所謂天道, 是耶非耶)”는 사마천의 그러한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성어다. 사마천은 <백이열전>에서 착한 자와 어진 자가 곤경에 처하고 재앙을 만나 허덕이는 현상을 하늘의 도, 즉 ‘천도(天道)‘라는 표현에 빗대 심각하게 토로한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을 베푼다는 것이 어찌 이 모양인가? 도척(盜跖 : 춘추시대 큰 도둑)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생간을 회로 쳐서 먹었다. 포악하고 잔인하며 오만방자하게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휘저으며 돌아다녔으나 오래도록 잘 살다가 죽었다. 이 자는 무슨 덕을 추구했길래 그럴 수 있었나?

 

이는 그런 사례들 중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고 명백한 것을 든 것뿐이다. 최근의 사례를 보더라도 행동을 절제할 줄 모르고 오로지 남이 싫어하는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데도, 평생을 편하고 즐겁게 지내며 몇 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린 자가 있었다.

 

반면 땅을 가려서 디디고 적당한 때를 기다려 말을 하며, 큰 길이 아니면 다니지 않고 공정한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았는데도 환란과 재앙을 만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이런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다. 대체 하늘의 도라는 것이 정말로 이런 것인지 어쩐지!“

 

사마천은 공자의 말을 끌어다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와 전나무의 푸르름을 알고(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세상이 어지럽고 탁해진 뒤에야 깨끗한 선비가 드러나는 것인가?(擧世混濁, 淸士乃見)”라는 독백을 덧붙이고 있다.

 

흔히 일이 잘못되거나 잘 풀리지 않으면 하늘을 원망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자초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일과 관계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거나 극한의 상황까지 자신을 몰아간 탓이다. 바로 그 극단과 극한의 지점에서 우리는 하늘을 찾는다.

 

사마천이 말하는 하늘과 하늘의 도는 이와는 좀 다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갈등 때문에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이 당치 않은 핍박을 받는 부조리한 현상을 꼬집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마천은 개인의 잘못과 구조적인 문제를 나누어 보았다.

 

예로부터 힘없는 지식인들이 ‘협객의 꿈’을 꾸어 온 이유도 신기한 능력을 가진 협객이 되어 이런 불합리하고 공평치 못한 세상을 척결해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이태백은 이것을 ‘천고문인협객몽(千古文人俠客夢 : 자고로 문인은 협객의 꿈을 꾼다.)’이라는 멋들어진 말로 표현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거나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세상이다. 사마천 당대도 이와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사물과 인간의 실체 혹은 본질을 통찰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 노력의 과정에 인도(人道)와 천도(天道)의 접합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인간의 정당성이 얼마나 개입되었느냐에 따라 하늘의 도를 거론하는 빈도가 결정된다. 권61 <백이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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