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교양 교양인 시리즈 4
박석무 지음 / 한길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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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두 아들(학연, 학유)을 훌륭한 선비로 키워내려는 아버지(茶山)의 지극한 정성이 느껴진다. 온갖 경험을 동원하고 지혜를 발휘한다.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 붙여 살아갈 것으로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났을 때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기를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줄 수 있겠다 여기는데 너희들 생각은 독서에서 이미 연(燕)나라나 월(越)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나가서 문자를 쓸데없는 물건 보듯 하는구나. 쏜살같은 세월에 몇 년이 지나면 나이 들어 신체가 장대해지고 수염만 텁수룩해질 텐데 갑자기 얼굴을 대면한다 해도 밉상스러워지기만 하지 아버지의 책을 읽으려고나 하겠느냐.

 

너희들이 참으로 독서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만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거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의 독서는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거라.

 

자신이 마음을 삭이며 밤낮으로 하는 일은 책 읽고 글 쓰는 일인데, 아들들이 제대로 책을 읽지 않아 학문이 설익고 공부가 부족하다면 자신이 지은 책을 읽지 못하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를 알아내지 못할 것이니, 자기는 앞으로 책을 저술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자기는 흙으로 빚은 동물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할 텐데, 아마도 며칠이 못 되어 고치지 못할 병이 들 거다. 아들들이 책을 열심히 읽어 학문이 일정 수준에 이르고 공부가 깊어져야 자기의 책을 읽을 것이니, 아들들의 독서는 바로 자기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일이라고 조목조목 설득시켰으니, 거기에 응하지 않을 아들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으라는 것인가. 책을 읽어도 세상을 구하는 책을 읽으라는 충고를 다산은 빼놓지 않았다.

 

내가 누누이 말했듯이 청족(淸族 :법망에 걸리지 않는 깨끗한 집안)은 비록 독서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중받을 수 있으나, 폐족이 되어 세련된 교양이 없다면 더욱 가증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고 세상에서 얕잡아보는 것도 서글픈 일일진대 하물며 지금 너희들은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고 얕잡아보고 있으니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무쪼록 너희들은 이런 점들까지 생각하여 다시 분발하고 공부해서 내가 실낱같이 이어온 우리 집안의 글하는 전통을 너희들이 더욱 키우고 번창하게 해보아라. 그러면 세상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될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대대로 벼슬 높은 집안이라도 우리 집안의 청귀(淸貴 : 깨끗하면서 귀한 신분)와는 감히 견줄 수 없을 것이니 무엇이 괴롭다고 이런 일을 버리고 도모하지 않느냐. p.40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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