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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상) - 세상을 읽는 천 년의 기록
홍응명 지음, 양성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4월
평점 :
하늘이 내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나의 덕을 두텁게 하여 맞서겠다.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내 몸을 도울 것이다.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생각한다면, 나의 도를 형통케 하여 그 길을 열 것이다. 이러하니 하늘인들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天薄我以福 吾厚吾德以迓之 天勞我以形 吾逸吾心以補之
天厄我以遇 吾亨吾道以通之 川且奈我何哉?
<해 설>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은 공평할 수 있고 불공평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해진 운명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채근담>에는 이러한 운명에 대처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처세법이 제시되어 있다. 불행이나 시련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불행을 피해 가려는 마음과 시련 앞에 쓰러져 포기하려는 정신이다. 맹자가 말했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중대한 임무를 내리게 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게 하고, 그의 육신을 수고롭게 하며, 그의 배를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궁지에 처하게 하며, 하는 행위마다 그가 하려는 바에 어긋나고 어지럽게 한다. 그 까닭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그의 성질을 인내하게 만들고, 그의 할 수 없는 능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告子章句 下 15). 마찬가지로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려면 반드시 오랫동안 힘겨운 단련을 이겨내야 한다. 보검의 예리함은 부지런히 갈고 닦은 결과이며, 매화의 은은한 향기는 고통과 추위를 견뎌낸 것에 대한 보상이다.
사마천(司馬遷 : BC145~BC86)이 세상에 품은 울분을 안으로 삭이고 ‘사기’를 완성한 것이 그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사마천은 역사학자이자 문학가로, 서한시대 좌풍익(左馮翊 : 장안의 북부를 가리킴) 하양 사람이며, 한 무제(BC156~BC87) 때 중서령을 지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다방면의 지식을 두루 갖춘 인재로 성장했다. 동중서에게 춘추(春秋)를 배우고, 공안국에게 상서(尙書)를 배웠다. 사마천은 마흔두 살부터 ‘사기’ 편찬을 시작했는데, 얼마 후 이릉(李陵 : ?~BC74)을 변호하다가 관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 후 사마천은 궁형(宮刑 :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을 받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감옥에서 풀려나고 얼마 후 다시 중서령에 임명되었을 때, 사마천은 절친한 친구 임안(任安)에게 편지를 받고, 곧바로 답장을 썼다. 거기에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여 우울한 마음에서 오는 고통과 끝없는 억울함과 분노를 모두 털어놓았다. 사마천의 편지 중에 이런 글도 씌어 있다.
“나는 이미 조정에 관련된 일이라면 조금도 관심이 없네. 지난날의 모욕은 가슴 깊이 새겨져 하루에도 장이 아홉 번씩 뒤집히는 듯하고, 정신이 문득문득 몽롱해지네. 밖으로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네. 이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식은 땀이 등줄기로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네.”
사마천은 죽더라도 의롭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반드시 한 번 죽는다. 그것은 태산보다 무거울 수 있고 기러기 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으니, 사람마다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모든 굴욕을 참아내고 구차하게 살아남은 이유는 가슴에 품은 오랜 바람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생일대의 커다란 불행을 겪었는데도 끝내 ‘사기(史記)’를 완성해냈다. 그 결과 사마천은 후세에 가장 훌륭한 인물로 길이 남을 수 있었다. p.192~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