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체성 -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박석희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창하면서 도읍을 옮기는 일을 논의하였다. 태조의 생각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처럼 고려의 낡은 관행과 폐습을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새 나라를 열고자 하였다. 도읍을 옮기는 일은 요즘 생각해도 만만찮은 일이다. 국가균형발전에 따른 수도 이전 문제로 한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급기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하는 등 국가적 분란을 초래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수도 이전 문제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왔는지, 아니 정부종합청사를 세종시로 옮기는 그나마 작은 일 조차도 얼마나 큰 분열을 가져왔는지는 우리가 그동안 직접 목도해서 잘 알 것이다.

 

고려의 토착세력이나 조선의 개국공신들 중에도 일부는 수도 이전을 강력히 반대하는 자가 있었다. 태조의 확고부동한 의지로 결국 무학대사가 한양을 궁궐터로 잡고 삼봉 정도전이 조선 궁궐을 설계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1395년에 완성하였다. 경복궁이 완공되고 개성에서 한양으로 대대적 이사를 하면서 조선은 드디어 중흥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처음 조선 궁궐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고 왕의 필요에 따라 새로 지어지기도 하면서 전각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은 주로 조선 궁궐의 해설서라 할 수 있을 만큼 궁궐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는데, 특히 ‘경복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실었다. 경복궁은 법궁으로 조선조 왕들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였기에 경복궁과 관련해서 왕의 치적과 일화를 자세히 다룬다. 태조 때 경복궁에서 왕위계승 문제로 왕자의 난이 일어나 피바람이 불어선지 태종은 경복궁을 꺼려하여 새로 이궁인 창덕궁을 짓고 거기서 거처하였다.

 

경복궁은 조선의 역사와 명운을 함께 했다. 태조의 지시로 정도전이 경복궁이라 명명한 이후 명종(1553)때 실화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고, 임진왜란 때 백성들이 노비문서와 노략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궁궐을 불태웠으며, 고종 때(1865) 흥선대원군 주도로 조선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국운을 부흥코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옛 위용을 되찾았지만, 머지않아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다. 1895년 경복궁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 의해 잔혹하게 시해당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정기와 민족성을 말살하고자 1909년 창경궁을 헐고 동물원(1911. 창경원 격하)과 식물원을 설치하였고, 1915년에는 경복궁 4000여칸을 헐어 상품진열관 (전시회) 장소로 만들었다. 1916년부터는 경복궁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광복 50년이 되던 1995년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고 경복궁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본래의 위상과 정체성을 되찾고 있기는 하지만, 경복궁은 조선 개국 이래 600여 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영욕의 세월을 함께했다.

 

경복궁이 가장 활성화된 시기는 단연 세종 때였다. 세종대왕은 경복궁에 집현전을 설치하여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릴 정도로 15세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치적이 어찌나 많은지 언급하는 게 중언부언이 되겠지만, 거의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남긴 성군 중의 성군이었다. 청나라 강희제(1654~1722)가 조선 세종에 비견되기도 하는데 그만큼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한글창제, 조세법 개편, 아악정리,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 등 의약서 편찬,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측우기, 2단 로켓포 산화신기전 개발, 세계 최초 온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서라 불리는 금화도감 창설 등 모두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업적을 집현전 학사들과 경복궁에서 밤을 새우며 일궜다. 세계 최초 발명이 8가지나 된다니 가히 세계적 성군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경복궁의 자세한 내력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조선 최고의 임금 세종대왕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치적을 정리하고 그 시대를 조명한다. 그 당시에 부모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돌볼 고아원을 기획하고, 관노비의 출산휴가를 130일(현재 90일)이나 주면서 남편의 출산휴가까지 부여하였으니 왕조시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왕이라는 근엄함 보다는, 어떻게 하면 백성을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고뇌하는 집념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요즘 회자되는 ‘국민과의 불통’ 화두를 세종은 이미 600년 전 ‘소통’으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을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은 세종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기엔 경복궁이 든든한 밑받침이 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수학여행 때나 가끔 들렀던 조선 궁궐에 무지했던 나로선 이 책이 궁궐을 이해하는 충실한 해설서가 되었다.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의 유래와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만춘전, 천추전 등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예술성을 느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고, 기회가 되면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조선의 왕들이 걸었던 궁궐을 천천히 거닐면서 그 면면을 자세히 살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