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리
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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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소설 보다 겨울 2025』(2025, 문학과지성사)에서 「별개의 문제」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흔히 자영업자가 마주하는 익명의 별점 테러와 비애로 요약되기 쉬운 서사였지만, 작가가 포착해 낸 '진심이 세상에서 유난히 취약하게 작동하는 구조'가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이자 소중한 꿈인 진심이 익명의 타인에게는 한낱 유희나 가벼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서늘한 진실. 선의가 언제나 선의로 돌아오지 않으며, 내가 던진 진심이 세계 속에서 무해하게 순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소설은 꽤 솔직하게 보여주었다. 내 진심의 무게와 그것이 타인에게 도달해 평가받는 방식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듯이.

기가 막힌 제목만큼이나 뇌리에 박혔던 그 솔직한 문법을 떠올리며, 작가의 첫 소설집 《랠리》를 펼쳤다.



최근 단편 소설들이 보여주는 기이한 설정이나 강렬한 도파민의 피로감 속에서, 《랠리》는 오히려 산뜻하고 단단한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현실에 뿌리를 깊게 두고 펼쳐지는 작가와 독자의 랠리를 살펴보자면 정말로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대단한 구원이나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를 알아주기를, 오늘과 같은 내일이 오기를, 더 불행해지지 않기를, 그저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버드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밥을 먹던 나미가 희원에게 건넨 "우리 땡땡이 칠래요?"라는 한마디처럼, 이들이 찾아내는 삶의 숨구멍은 지극히 사소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다. 하루 단위의 생존을 겨우 이어가며 살던 이들은, 손을 뻗으면 맞은편의 누군가가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신뢰를 바탕으로 비로소 자기만의 생을 다시 굴려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단편집이 가진 진짜 힘은 무조건적인 연대와 희망의 찬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끝맛이 씁쓸한 현실들이 계속 쏟아지고 특히 「별개의 문제」나 「스위트 홈」 같은 단편들은 랠리가 끊어진 자리에 남는 인간의 그늘진 면을 동시에 비춘다. 내가 보낸 공을 상대가 받아줄 것이라는, 적어도 비슷한 종류의 것을 보내 올 것이라는 믿음이 무참히 깨어질 때, 즉 나의 선의가 나의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심지어는 더욱 나를 괴롭히는 방향으로 날아올 때 인간은 깊은 무력감에 빠진다. 세상이라는 경기장은 나의 통제 범위를 시시각각 벗어나고, 외부의 압력은 내 소박한 평화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작가는 이 씁쓸한 이면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부조리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기 삶을 지켜내기 위해 발악하는 개인의 힘을 기록한다.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 '랠리'란, 내 손을 떠난 공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별개의 문제' 같은 세상일지라도, 맞은편에 나와 같은 사람이 숨 쉬고 있음을 잊지 않는 행위 그 자체이다. 잊지 않고, 읽어 내고, 그대로 받아주는. 완전히 포기해버리기에는 '도무지 닳아 없어지지 않는 무언가'(184)가 저마다 하나씩은 완강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향한 끈덕진 애정을 가진 사람이어야 이토록 치열하고도 의연하게 삶의 왕복운동을 기록할 수 있다. 인간을 향한 관찰에서만 길어 올릴 수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고 있자면 그런 확신이 들면서 책을 덮은 뒤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고 말하기엔 이를지라도 오늘 내 쪽으로 넘어온 공 하나쯤은 기꺼이 다시 받아쳐 보고 싶어진다고, 그래야 우리는 다음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



+ 「별개의 문제」 여전히 좋았구요... 또 뭐가 좋냐면 「괴력문정과 다마고치」,「즐거운 나라」,「랠리」.... 그렇습니다. 다 좋았다는 이야기. 상반기에 읽은 책 중 별점 5점 준거 10권도 안되는데, 여기에 한 권 추가할게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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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살인사건 -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
백승만 지음 / 해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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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만 저자의 전작 중 『대마약시대』를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나에게 이번 신작은 단순한 신작을 넘어선 일종의 확장판으로 다가온다. 전작이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거대한 마약을 추적했다면, 이번 책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합법적인 약국의 매대와 병원에서 주는 처방전 위로 시선을 옮기기 때문이다.

흔히 살인사건이라 하면 피가 낭자한 흉기나 청산가리 같은 독약을 떠올리지만, 저자는 일상 속에서 쓰이는 약이 어떻게 완벽한 흉기가 될 수 있는지를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은 어조로 증명해낸다.


보기에는 흥미진진한 과학 수사와 약의 역사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대마약시대』를 탐독했기 때문일까, 이 책에서 보여지는 중독과 탐욕의 메커니즘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프로포폴이나 안약 성분처럼 인간을 살리고 치유하기 위해 고안된 물질들이, 인간의 비틀린 집착과 만나는 순간 곧바로 치명적인 독물로 돌변하는 과정은 경이로우면서도 불쾌한 긴장감을 준다. 저자는 약과 독의 차이가 단지 ‘용량’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통제력’에 달려 있음을 거듭 상기시킨다.


▪︎p.67 | 흔히 쓰는 말로 "약이 독이고, 독이 약이다. 중요한 건 양이다"라는 말이 있다. (···) 같은 물질이라도 용량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는 말이다. 물도 많이 먹으면 죽고, 독도 적게 먹으면 약이다.


특히 이 책이 일반적인 범죄 르포와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자극적인 살인 트릭이나 기괴한 죽음을 과시하듯 전시하는 대신 물질이 가진 양면성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담담하게 추적한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삼키는 알약 하나하나를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기회를 얻게된다.


결국 이건 과학의 탈을 쓴 인간학 보고서이자, 법의학이 죽음을 역추적하듯 약학의 언어로 범죄의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고 동시에 중독과 파멸이 우리집 약상자 안에 있을 수 있다는 미시적인 경고를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위험한 기기를 다룰 때 사용법을 숙지한 후에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처럼 약 역시 알고 먹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에 재밌는 이야기 한 스푼. 약은 약이다. '약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는 약 덕분에 사는 사람이 훨씬 많'(312)다는 명징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막연한 공포 대신 올바른 지식을 통해 약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는 이성적인 확신을 얻게 된다. 뻔한 범죄 이야기의 자극성을 넘어, 나를 지키기 위한 지적인 안목 한 조각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 < 당근 주스 마시고 죽는 법> 🥕

1. 매일 4리터씩 마시기

2. 비타민 A 700만 IU도 먹으면 금상첨화

3. 이렇게 매일을 보내면 열흘 안에 죽을 수 있음

4. 피부도 노래짐


위기탈출 넘버원에나 나올 것 같은 이게 진짜라고....이런 짓을 하고 죽은 사람이 있다고.... 절라 황당


++ 마약 러버는 6장. 불법 제조약 살인사건 이 제일 재밌었어요

(약쟁이 아님 그냥 마약이 좋아요 아니 마약을 하는게 좋다는게 아니라 마약 관련 내용이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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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차 쓰고 복수 좀 하고 오겠습니다 ㅣ 나비클럽 소설선
홍선주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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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면 반차 쓰고 복수 수준이 아니라 회사를 다 박살내버리는 느낌이지만 막상 뚜껑 열어보면 세상 소소하고 하이퍼리얼리즘인 오피스 빌런 퇴치극이다.


특히 무능과 귀찮음을 ‘효율’이라는 보기 좋은 이름으로 포장한 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자기 과신형 남직원의 에피소드는 읽는 내내 지독한 현실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커피믹스 당근 빌런(ㅋㅋㅋㅋ), 맞춤법....(성숙이 > 성수기, 호부로 > 호불호...) 빌런 라인업 눈이 부시다...


진짜 마주치기 싫은 사람들인데 어디든 빌런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건지 살다가 꼭 한번 씩은 만나게 되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를 지켜보고 때로는 한방을 먹여주는 최혜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결코 감정에 휘둘려 큰소리를 내거나 판을 뒤엎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세팅하고, 조용히 인과응보의 덫을 놓는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 복수의 동력이 정의감이나 분노가 아니라, 단지 그 편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 독특한 설정이 작품 전체에 기분 좋은 긴장감과 차별화된 매력을 부여한다.


황당함과 웃음이 교차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만들어내는 소동극으로, 가볍게 시작해서 끝까지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직장 생활의 풍파를 겪어본 이들이라면 격한 공감을,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면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듯한 은밀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복수 하러 가는데 반차 써야하는 것부터가 직장인 비극


++ 이 작품 속에서 '대꽃(대가리꽃밭)' 직원이 하나 나오는데, 나는 작가가 이 직원을 계속 써서 좋았음. 빌런이라 여기고 퇴치하지 않아서. SNS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거나 주변을 피곤하게 만들면 냅다 ‘빌런’이라는 딱지를 붙여 박제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직원은 누군가를 해치려는 ‘악의’가 없다. 단지 눈치가 없거나, 미숙하거나, 상황 파악이 서툴 뿐.

그렇기에 이 포인트가 나는 이 소설이 가진 가장 영리하고 다정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빌런과 단지 서툰 인간을 구별해 내는 주인공의 여유를 강조하는 것과 함께 자극적인 사이다 맛에만 집착하는 흔하디 흔한 직장 잔혹사가 아닌 이 책 특유의 입체감을 살려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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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통 ㅣ 은행나무 시리즈 N° 19
정용준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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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피어나 겨우내 꽁꽁 얼린 사랑

내 서툰 진심이 봄이 되어 너에게 닿을 때까지



이 소설이 지닌 가장 놀랍고도 아름다운 부분은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아낀다는 점이다. 이야기 초반부, 동아가 인하에게 느끼는 감정 위에는 그 어떤 직접적인 이름표도 붙어 있지 않다. 작가는 감정을 요란하게 전시하는 대신, 인하를 관찰하는 동아의 눈, 그를 향해 미세하게 기울어지는 공기의 흐름만으로 사랑을 완벽히 감각하게 만든다.

겨울은 겉보기에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하지만 강인하게 얼어붙은 얼음 아래로 여전히 거센 물줄기가 흐르고, 눈 덮인 대지 밑에서 생명이 저마다의 봄을 싹틔우는 계절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딱 그렇다. 침묵으로 가득해 보이는 고요한 표면 아래, 그 어떤 언어보다 뜨겁고 역동적인 감정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며 비로소 사랑에 대한 언어들이 고개를 들 때조차도 결코 과하지 않다. 언어의 지독한 절제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어떤 소설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온몸으로 밀려든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마주하는 겨울은 단순히 계절의 배경이 아니다. '겨울통'이란 소설 내에서 등장하는, 육각형 모양의 스노우 크리스탈 모양을 하고 있는 바이러스의 종류이다. 걸린 사람들은 투명한 물같은 액체만을 남긴채 녹아버리는.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일시 정지이자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시간이며, 온전히 스스로를 대면해야 하는 거대한 침묵의 공간이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상대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 아픔도 나누고 싶지만, 인간은 결코 타인의 고통을 똑같이 겪어낼 수 없으니까. 그때 우리는 쉽게 무력감을 느끼게 되지만, 그럼에도 끝내 그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선택을 볼때면 안도감과 함께 기묘한 슬픔이 밀려든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하는 '겨울통'이란 지독한 상실과 고독만을 꽁꽁 싸매어 얼려버리는 차가운 궤가 아니다. 오히려 서서히 녹아내려 마침내 투명한 슬픔과 따뜻한 봄으로 흐르게 만드는 해동과, 차가운 얼음마저도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포옹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복원의 서사다.

직접적이고 열렬한 단어 없이도 온전하게 가닿는 담백한 사랑의 무게를 느끼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겨울통은 형체를 잃고 녹아내린 마음마저 기어이 다시 건져 올려 서로를 품어 안는 커다란 품이 되어줄 것이다.



+ 슬슬 여름으로 들어가는 이 시점에 『겨울통』이라는 제목이라니.

++ 난 약간 "널 사랑해!으아악❤️🔥" 하는 느낌의 열렬한 연애 서사보다는 이 정도 온도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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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모란 마자르 지음,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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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독일의 젊은 무용수 울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꿈꾼다. 그러나 울리의 취향은 명망 높은 독일의 현대 무용 학교와 어울리지 않았고, 베를린을 여행하던 중 미국인 무용수 앤서니를 만나며 미국이라는 거대한 꿈을 품게 된다. 결국 울리는 독일을 떠나 뉴욕을 정복하고자 대서양을 건넌다.



울리를 보며 우리는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는 사랑스러운 주인공이지만, 흑인인 앤서니나 여성인 룸메이트 패티보다 훨씬 빠르게 원하는 성공을 달성한다. 그의 성공가도는 오롯이 그의 능력과 열정 덕분이었을까? 자유의 도시 뉴욕이 그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가진 '백인 남성'이라는 기득권 때문은 아니었을까.

작품 속에서 울리의 실력이 상세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독일에서 그가 솔로를 출 때 동료들이 웃으며 "그래, 이번에는 진지하게 해볼 사람?" 하고 묻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독일 무용의 정형성과 울리의 경쾌한 리듬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울리의 춤이 주류를 압도할 만큼 독보적이지는 않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이 책은 울리가 발 디디고 선 연도를 구체적으로 표기하며 독자에게 시대상을 직시하게 만든다. 1950년대 후반의 미국은 화려한 재즈와 브로드웨이의 황금기였지만, 동시에 지독한 인종 차별과 가부장제,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공존하던 모순의 시대였다. 이 비정한 현실 속에서 시스템은 아무리 뛰어난 흑인과 여성이라도 변방에 묶어두었고, 이방인일지언정 '백인 남성'인 울리에게는 기꺼이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울리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서사는 더욱 입체적으로 변한다. 1957년을 살아가던 청춘이라면, 1940년대 유년 시절에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어낸 전쟁 세대일 수밖에 없다. 맨 앞장부터 계속해서 그의 꿈에 나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 무너지는 건물,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의 모습은 울리의 뼈에 새겨진 실제 트라우마였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뻣뻣해지고 싶지 않다"고. 이 '뻣뻣함'이라는 단어는 울리라는 인물의 핵심적인 결핍과 열망을 굉장히 시각적인 언어로 응축해 둔 것인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정체된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했다. 고여 있거나 멈춰 선다는 것은 곧 그 뻣뻣함에 잠식당하는 두려움이니까. 

그래서 울리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고 점프를 했던 게 아닐까?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인들의 춤은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뛰어오르며 땅을 박차는 거침없는 생명력과 자유 그 자체였을 테니까. 몸 전체가 떨렸다는 건 영혼이 소리치는 거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저곳에 내가 찾던 움직임이 있다, 저렇게 움직여야만 나는 진짜 살아갈 수 있다라고. 그렇기에 울리는 미국으로 건너와 뻣뻣함에 저항한다.


울리가 겪은 전쟁의 아픔과 동시에 뉴욕이라는 거대 사회에서 그가 뜻하지 않게 '강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설정은 지독할 정도로 입체적이다. 이 책이 단순한 개인의 성장 서사가 아니라는 증거가 여기에 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발 딛고 서있는 사회의 뒤틀린 구조와 강제로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무대의 춤이 곧 시대의 언어가 되는 연출들 역시 말이다. 결국 울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뻣뻣함'을 거부하려 했던 일은, 개인이 혼자 자유롭게 날아오른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딛고 선 세계의 가장 뻣뻣하고 완고한 모순들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고뇌해야만 하는,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서막이었던 것이다.



+그림은 물론 너무 좋습니다. 말을 못하는 건, 내가 관련 지식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고...그거 조앗어요...멋있었어요. 역동적이었어요...하게 되기 때문......;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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