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나는 제리미니베리보다 제리베리미니가 낫다고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혹은 베리제리미니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건 뭐 아무래도 괜찮았다. 이미 우린 누구도 그 긴 이름의 순서를 바꾸거나 혼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에겐 메리 소이라는 지긋지긋한 기다림이 끝난 것, 그래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p. 47)

-


엄마가 어릴 적에 잃어버린, 빨간 코트에 흰색 베레모를 쓴 동생 메리 소이. 사라진 동생을 기다리는 엄마의 사연은 딸기맛 웨하스에 얽힌 추억과 함께 제과 회사인 ‘미미제과’의 마케팅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미미제과는 과자 상자에 소이를 찾는 광고를 싣고 심지어 은수의 집을 웨하스 집으로 바꿔놓는다. 사례금을 노리고 여러 메리 소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게 되는 와중에 그 메리 소이들 사이에서도 가장 눈에 띄고 가장 메리 소이 같지 않으면서 메리 소이 같은 ‘제니미니베리’가 찾아온다.



동화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현실같다. 마치 은수가 살고 있는 딸기맛 웨하스 집 처럼. ‘메리 소이’, ‘제니미니베리’ 같이 동화같은 껍데기 속에는 부동산 사기를 당하거나 별 다른 꿈이 없이 살거나 매 끼니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다소 쓸쓸하기도 한 사람들이 사는 현실이 담겨있다. 과자집 밖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인형을 끌어안고 현실을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보일 수도 있을 인물들.

화자인 은수는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는 관찰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친구를 만나고 삼촌을 만나고 가족들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면서 만나본 적도 없는 이모를 기다리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 된 사람. 성장물도 아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결국 원더타운을 떠나는 것 역시 의지가 아니라 삶에 등 떠밀려 동화를 잃는 어른처럼 그렇게 떠나게 된다.


책을 읽으면 살면서 생각해오던 것들을 밍밍한 기분으로 돌아보게 된다. 물 흐르듯 그냥저냥 사는 은수를 보며, 일정한 수입이 없는 과자집의 사람들을 보며, 어떤 ‘메리 소이’가 와도 크게 묻지 않고 곁을 선뜻 내어주는 엄마를 보면서. 하나하나 따져가지 않고 흐르듯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냥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악착같이 현실에 매달리지 않아도, 평생을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진짜는 아니더라도 진실로 받아들이는 그런. 과자집 사람들의 사라짐까지 환상 같았던 이야기였다.



+책 만듦새에 대해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 따뜻한 색감부터 오돌토돌한 질감까지 너무 예쁘다.





-

▪︎어떤 존재는 생각만으로도 그저 슬퍼진다. (p. 115)


▪︎마음의 무게는 기억을 조작한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 곱하기를 하는 것이다. 나와 내 동생의 시간이 모두 통편집된 것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 중에 의미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p. 155)


▪︎4년을 사귀는 동안 함께 사는 생명체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은 끔찍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어떤 이유로 무언가를 숨겨야 했다면,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매우 수치스럽거나 말하기 힘들어서 그랬다면 그게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냥 무관심해서거나 거기에 아무 이유도 없었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에게 말해지지 않는 집 안의 턴테이블이나 윙 체어 같은 존재로 전락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덧붙였다. (p. 189)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들판의 뜻은 무엇인가? 사람이 걷게 만든 길은 아니지만 걸어도 괜찮은 길. 사람이 걷도록 만든 길보다는 이런 야생의 길에서 사슴을 만날 확률이 높을 테지만 노엘은 오늘도 사슴을 만나지 못했다. 졸린 눈으로 눈을 비비며 사슴을 만나러 갔다가 풀숲에서 나타난 것이 사람이어서 실망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길. 하루를 시작하는 대부분의 이들은 들판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 다운타운으로 간다. 삶의 반의어는 들판이구나. 그럼 들판을 걸어야지. (p.72)

-


세 장쯤 읽었나. 강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 (30여 개국의 작가들이 3개월간 한 호텔에 묵으며 여러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 코믹한 작가의 시선으로 본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조금은 비일상적이고 엉뚱한 일화들은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 했다. 어쩜 저렇게 독특하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나는 짧은 글들에서 다운타운으로 가는 길을 상상했고, 그 반대편의 너른 들판을 상상했고, 중간에 있을 조금은 낡았지만 분명 따뜻할 호텔을 떠올렸다. 매일매일 좋아하는 것들에게 죽는 귀여운 오릿, “How are you?”가 열 받는다며 복수하겠다는 루시, 새벽 5시에 사슴을 찾으러 들판으로 향하는 노엘, ‘전망 없는 작가들의 모임no view writers’ party’과 날마다 종이컵을 관찰하는 야스히로, 코토미와 에바 그리고 문보영 시인 삼총사. 에세이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쉽지 않은데 이 일기는 어쩐지 소설처럼 읽게 되었다. 마치 성장 소설 같은 그런 일기. 첫 장의 작가와 마지막 장의 작가가 확실히 다르다. 지구 반대편에서 다국의 언어를 접하고 생각을 들으며 성장한다는 무겁고 어쩐지 거창한 느낌보다는 친구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을 좋아하던 초반에서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변한 것. ‘미세하게 사는 것을 그만두고(244)’ 싶어진 사람이 되었으니까.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지 않은가요?” 이 질문에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여행지는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데. ‘우리 동네 ㅁㅁ동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자니…음, 거짓말 같다. 분명 살고 있는 터전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은 있지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나. 애초에 사랑해서 산다는 느낌보다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건데. 여러 곳을 다녀보고 부유하다보면 답을 찾게 될 날이 올까.


이 글들이 일기의 부스러기라고 했지만 그 부스러기를 줍는 내내 웃었고 공감했고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작은 조각에서 전해져 오는 아이오와를 나 역시 사랑하게 될 것 같다.


+ 작가님 진짜 재밌는 사람… 주섬주섬 시집과 다른 산문집을 보관함에 담았다.

 

 

▪︎내부에서 더 진한 내부로 뛰어드는 것도 일종의 탈출인 셈이다. (p.40)


▪︎나의 시를 설명하는 데 반드시 한국을 소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닌데, 그건 내가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대로 한국을 외부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향 관계가 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p.43)


▪︎‘불만을 품을 수 있다고?’ 그건 내가 커먼룸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대체로 본인이 무엇을 바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원해도 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p.97)


▪︎저는 진심이라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심이 내면에 있어서 그것을 글로 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널브러진 문장들에서 진심을 사후적으로 찾아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p.112)


▪︎긴 시를 다 읽어낸 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시와 부대낀 시간인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딱히 영혼의 교감이 없던 친구도 단지 그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공유하게 되는 애틋함이 있는데 긴 시 역시 그런 감각을 공유한다. 시를 읽는 동안 상처에 고름이 차오르고 딱지가 진다. 그리고 딱지가 똑 떼어진다. 마지막 문장은 종종 그런 쾌감을 준다. (p.189)


▪︎일기를 다시 읽는 건 좋은 신호다. 적어도 당신이 당신의 삶을 버리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p.237)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의 절반 읻다 시인선 15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박술 옮김 / 읻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두 번을 읽었다. 경이로운 찬가가 가득했고 자연을 노래하고, 가끔 너무나 독일인스러운 시를 쓴다는 감상을 태연히 하며 옮긴이 해제를 보는데 ‘오늘날까지도 횔덜린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것은 ‘미쳐버린 시인’이라는 수식어다.(p.327)’을 읽고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록 시의 절반 이상이 심한 광기에 빠진 이후에 쓰여졌다니. 다시 앞 장으로 넘어갔다.



-

또한 광인의 글을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미학적 문제를 놓고 가장 큰 논란과 관심의 대상이 된 것 역시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휠덜린은 전성기에 이미 정형시의 리듬과 구조와 고전적 상징 세계를 완벽하게 장악했던 만큼, 그러한 정형성이 차례로 해체되고, 파편화되며, 심연을 향해 과감히 기울어지고, 끝내 침묵과 교묘하게 섞여드는 언어로 화하는 과정은 유럽 현대시의 발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p.335)

-


 

알고 보더라도 그의 글이 그저 광인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내내 신을 노래하고 자연을 풍성하게 그려내고 있는 황금빛 시이기 때문이다. 마치 신의 계시와도 같은 시들에서는 비난보다는 찬미가, 절망보다는 희망이, 어둠보다는 빛이 느껴졌으므로. 배경을 알고 읽으니 자연스레 흐르는 계절에 따라 다채로운 옷을 입는 자연을 좁은 방의 창 밖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뒷통수가 보이는 듯 했다. 불멸의 자연과 필멸의 인간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내 마음의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무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소중한 시간을 나를 갉아먹는 생각으로 보내고 있지 않나 하고.

 

다만 단어 하나하나를 따져보자면 쉽지 않은 시인 것은 틀림이 없다. 나도 뒤에 주석을 여러번 오가며 읽었는데, 그리스 신화라던가 여러 배경 지식을 알고 있다면 좀 더 수월히 이해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중간부터 조오금 귀찮았던 탓에 시는 감성과 필이지 하면서 그냥 흐르듯 읽었지만… 신기하게도 이걸 읽었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싶어짐. 비단 이 시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안 읽으면 유럽 운문들을 읽기 어려운 것 같아… 이젠 이것도 하나의 바이블인듯.





근심과 분노를 이기는 불멸의 기쁨이,

황금의 날이, 실은 매일의 끝에 있음을.


「디오티마를 잃은 메논의 비가」

 


좋지 않구나,

필멸의 생각들로

영혼을 버리는 것은. 허나

말을 나눔은 좋구나, 가슴에 

담아둔 것을 말하는 일, 사랑의

날들에 대해, 예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많이 듣는 일도 좋구나.


「추억」


 

미약한 것에도

크나큰 시작이 찾아올 수 있나니.


「그리스」


 

평야의 잎사귀들이 멀리 스러지면,

흰색은 골짜기로 떨어지네,

그럼에도 한낮은 높은 햇빛으로 반짝이고,

도시의 성문으로 축제의 빛은 쏟아지네.


이는 자연의 고요이니, 들판의 침묵은

사람의 정신과 같네, 드높이 드러나는

분별들, 이는 자연이 높은 상像으로

드러나기 위함이네, 봄의 부드러움 없이.


「겨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의 성별 - 가족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 Philos Feminism 7
셀린 베시에르.시빌 골라크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가부장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개념들, 즉 가구나 세대 같은 개념은 여남 간 부의 불평등을 알아내는 데 방해가 된다. 이 개념들은 여성의 빈곤을 드러내는 데에서 성별적 요인이 보이지 않게 하고, 여성들이 겪는 참상을 드러나지 않게 한다. (p.52)

-


프랑스 사람이 쓴 책이지만 핵심은 전세계가 공유한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가족. 결혼, 이혼, 상속 등 모든 사건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가난해진다는 것. 한국도 다르지 않다. 법적 제도와 관습으로도 남성에게 훨씬 유리하게 짜여져 있다. 반드시 장남, 장남이 없다면 딸이 있더라도 장손자에게 넘어갔던 제사주재자 (*2023년에 '아들에게 제사 주재 우선권이 있다'는 판례가 파기 되었다.), 성년 남자에게만 종중원 자격을 주고 여성에게는 부여하지 않았었던 관습법 등 여성은 각종 지위와 상속에 있어 훨씬 불리하다. 

이런 재산 분배의 과정에서만 불평등한가?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서 사진을 드는 것은 아들이다. 더 연장자인 딸이 있더라도, 아들이 초등학생이라도 아들이 들어야 한다. 아들이 안된다면 다른 사촌이 든다 (와중에 외손자는 안됨). 장례식만 그런가, 병원에서도 법원에서도 엄마와 딸이 있으면 아들 찾는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는 집이라 이 부분도 할말이 많다. 솔직히 뒤에서 궂은 일은 딸이 다 하는데 명분과 감투는 아들이 챙겨가는 관습이 치가 떨리게 싫었음.


-

경제자본의 성별은 단호하게 남성이라 말할 수 있다. (p.306)

-

 

감정이 쌓여 첫문단이 길어졌지만 이 책이 말하는 바 역시 비슷하다. 가족 내 불평등을 수치로 증명해낸다. 단순 경험담이 아니라 치밀한 연구와 수치로 여성의 빈곤을 밝혀낸다. ‘가족인데 무슨 성차별이야’라는 말로 빠져나갈 수 없다. 가업은 장남이 잇고 결혼하면 보통 남성 쪽으로 편입되며 이혼하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가난해진다.’(p.54)

‘우리 집에 돈이 얼마나 있다고 상속이 중요한가 일을 해서 모으는 게 중요하지‘라고 생각한다면 첫째로 여성은 일할 기회와 노동 가치가 남성과 같지 않으며, 둘째로 현재는 노동 수익률보다 상속에 의한 자본 수익률이 훨씬 높은데 와중에 남성만큼 받지도 못한다는 것은 자본 축적에 있어 스타트라인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성은 불평등을 알고 있다. 오랜기간 지속해 왔다 하여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필롱 가족의 딸들 역시 인식하고 있고 불만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화를 내고 싶지 않아서, 나만 참으면 되는 일이므로 넘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여성들도 참고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참아왔던 작은 일들이 모여 전체적인 여성의 빈곤을 낳는다. 개인의 희생은 침묵 속 불만으로 끝나고 그렇게 넘어갔던 많은 일들이 관습이 되어 제도적으로 얽매고 있다.

저자는 ‘사법의 개입이 불평등을 거의 해결해주지 않는다(p.307)’고 한다. 동의한다. 사법은 불평등의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견고히 해주는 받침이 된다. 차별의 당연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된다. 계급 불평등의 해결 · 성별을 뒤집는 일은 말로만 해서 오지 않는다. 위치에 대한 인지가 첫 걸음이며 다양한 법과 제도적 지원이 받쳐주어야 한다. 상대의 저항을 누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종 차별로 가득한 사회 속 오아시스처럼 느껴진 가족 내에서 시작되는 불평등을 다시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책이다. 성별간 부의 불평등에 관련된 이야기는 있었으나 이 성별을 가져와 가족 안으로 집어넣어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에서부터 조명한 책은 없었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인간이 가장 처음 속하는 집단인 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차별을 알아야 큰 맥락을 볼 수 있다. 이 책이 그런 의미에서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서민들은 상속을 받고 부자들은 생전 증여를 받는다는 차이도 재미있는 점이었음. 미디어에 나오는 재벌들이 너무 당연하게 회사나 자본을 물려받아서 감각이 무뎌졌다고 생각하는데, 회사의 경영진이 가족 본위로 꾸려진다는 것은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진짜 이상한 점이 아닌가.


++ 와중에 양육비 안주려고 애쓰는 남편은 국적불문…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때는 좋았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고령자 씨가 있다면, 추억을 바꾸어 기억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지켜봐 주자. (p.141)

-


이전에 일하던 곳이 종각에 있었다. 퇴근길에 탑골공원이 있었는데 그 곳에 있던 많은 고령자들이 생각이 난다.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하시는 분들, 옛날 노래가 나오는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노점 옆에 앉아 음악을 들으시거나 바닥에 누워계신다거나. 제각기의 행동은 달랐지만 표정이 없었다는 점은 모두 동일했다.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그렇게 무기질적인 공간도 없었다. 그 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칠까, 누가 말을 걸까 불편한 마음으로 빠른 걸음을 걸었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와중 그 곳만은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늘어가는 키오스크와 그들의 존재를 배제하는 노시니어존의 등장이 아마 그 사람들을 집안이나 공원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비단 세태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나도 뉴스를 보면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밖을 걸어다니면서 그들을 향해 작지만 분명 형태를 갖춘 분노와 답답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


노인들은 왜 고집이 셀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지도 못하면서 왜 운전대를 놓지 못할까

사기꾼에게 왜 저렇게 잘 속을까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을 밀치면서 다니는 이유는 뭘까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의 저하. 그리고 대다수의 일이 '자기 효능감'과 '부모로서 의지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고령자들도 몇 년 전에는 분명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자 든든한 부모였을텐데, 그렇게 살다보니 훌쩍 나이가 들고 세상을 따라가기 힘이 부치고 자식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

일과 육아가 끝난 고령자 씨는 자신이 가족과 사회에 힘이 되고 있다는 실감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부모로서 자식들의 일에 신경을 쓰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악용하는 것이 바로 보이스 피싱 사기입니다. '돈을 내 주는 것 말고는 도울 수 있는 게 없다',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를 구하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을 이용하는 범죄입니다. (p.111)

-


물론 고령자들에 대한 이해와 안타까움이 모든 사건사고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이해를 기반으로 많은 법적 정비나 돌봄 시스템, 사회적 제도 등이 구체적으로 받쳐주어야 한다. 고령자들이 혼자서도 외롭지 않고 충분히 긍정적인 마음과 자존감 ·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돌봄이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고령자와 함께 사는 일은 피할 수 없고, 노년으로 가는 길은 필연이다. 고령자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후의 내가 제대로 이해받고 필요한 돌봄을 받는 길이므로 타인의 일이 아니다. 세대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두루 읽힌다면 좋겠다.


고령자들의 내일이 더 활기차기를, 이 사회가 미숙한 아이들을 배려하듯 조금만이라도 고령자들의 마음을 생각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냥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을 이해하고 싶어서 가볍게 들었는데 이 책 읽고 훌쩍거리는 거 나뿐일듯... 

++ 종각에 다녔었을 때 마침 미스트롯을 했었다. 그 방송 이후 많은 분들이 송가인의 노래를 부르며 활기차게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참 생기 넘치고 즐거워보였다. 그저 새로이 집중하고 애정을 쏟을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

▪︎아무리 자기 평가가 높은 사람이었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이가 들면서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은 쇠퇴하기 마련이며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도 늘어납니다. 자신의 유능감과 할 수 없어진 일에 대한 실망감의 간극이 클수록 스트레스를 느끼기 쉽습니다. (p.124)


▪︎그러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밀한 사이일수록 권력관계에 불균형이 있으면 이를 고통스럽게 느끼는 법입니다. 가족만이 늙은 부모의 모든 것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있습니다. (p.192)


▪︎일본에서도 이 사고방식에 근거해 돌봄이란 '자립 지원'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립할 수 없으니까 돌봄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든지 안심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한 사회,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진정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요? (p.212)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