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네오픽션 ON시리즈 38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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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대개의 이야기가 '생존'이라는 목표 아래 주인공의 뒤통수를 따라가는 방법을 취한다면, 이 소설은 조금 다른 방향을 취한다. 어느 하나 곁다리로 머무는 인물 없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각 개개인이 제각기의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무섭게 질주하며 나아간다. 수혈을 위해, 출산을 위해, 심지어 덕질을 위해.


여기에 한 가족이 있다. 어느 가족 구성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없음. 근데 엄마 환장하게도 좀비 사태가 터졌는데 각자 서울 가야겠다고 난리임

근대 (대기업 때려친 백수 오타쿠 -> 코믹페스티벌 가야함) + 초희 (만삭의 임산부 -> 수술은 서울 산부인과가 최고지, 근데 좀비 증상 있음) + 초과(작가, 사연 좀 많이 복잡 -> 내 딸 수술해야되는데 내 피가 필요하대. 가야함.) + 엄마 숙영 (가운데에서 자식 새끼들 때문에 환장)

내가 보기에 숙영이 없었으면 이 가족은 진작 해체되고 거리에 나앉았음...


눈에 띄는 지점은 이들의 행보가 대체로 납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좀비가 들끓고 경찰들이 폭력적으로 사태를 진압하고 있는 와중에 굳이 밖으로 나간다는 결정 자체가 그렇다. (이런 상황에 코믹 페스티벌을 가야겠다며 나가겠다는 아들이 숙영의 눈에 정상으로 보이겠는가...) 그러나 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구구절절 독자에게 설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긋난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계기가 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벽을, 무언가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결국 길을 열어낸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상단에서 사용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굳이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어 감정을 호소하고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철저하게 인물들의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자식들을 위하고 지키려는 숙영의 마음에서 나오는 강인함, 그리고 초과와 윤재의 관계 같은 것. 겉보기엔 가볍게 즐기는 사이같고 내밀한 감정 교류도 딱히 없어 보이지만, 정작 가장 가깝고 진한 연대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곁을 지키는 건 이 '가벼운 사이'이다. 가벼운 관계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쩌면 사람이 사람의 곁을 지키는 데에는 사랑이 전부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감상이 든다.


이 가족은 무너지는 세계 앞에서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대신 움직인다. 위험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머뭇거리기보다 선택을 밀어 붙인다. 그렇기에 이 가족에게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무대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각자가 붙들고 있는 것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장에 가깝다. 결국 이들은 끝까지 멈추지 않는 쪽을 택한다. 재난의 한복판, 그 어두운 숲속에서도 기어이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의 비범한 서커스였다.



+제가 그렇게까지 오타쿠였던 적이 없어서 살짝 이해는 안 가는데, 진짜 좀비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코믹 페스티벌에는 가야합니까...? 에브리바디 좀비면 거기 오는 사람들도 좀비일거고 걔네가 덕질 파티를 하지는 않을거 아냐....

이런 좀비 사태에서 일반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감염자냐고 의심하고 폭력적으로 대할 때, 숭고한 애니 대사를 날리면서 도우려고 하는 게 오타쿠라는 점... 여기 오타쿠들 명대사 꽉 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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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성해나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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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은 ‘2026년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들’로 묶여 있다. 인공지능, 갓생, 불임, 교육, 범죄, 계엄... 분명 우리가 사는 현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단편들이 남기는 것은 명확한 답이 아니라 반복해서 감지되는 어떤 공백이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고 분류하는 일(#유령),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않고 갓생처럼 보이게끔 연출하거나(오민아의 남부러운 삶) 현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서사로 소비하는 상태(방콕), 아이는 있는데 아이의 목소리는 지워진 풍경(키즈카페) 속에서 그제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현재를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으며 이 막연한 공허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모르겠다고.


이 단편들의 포인트는 바로 그 ‘불분명함’에 섣불리 답을 내려 해소하지 않고 그저 드러내는 데 있다.

예컨대 자극적인 범죄 이야기에 익숙해진 인물이 현실에서 마주한 의심스러운 장면은 끝내 진실로 확정되지 않은 채 멈춘다. 독자는 이미 익숙해진 이야기의 프레임을 가져와 그 빈칸을 서둘러 조립하지만, 소설은 그 확신에 의문을 던진다. 객관적 사실은 부재하고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시선만이 단서로 남을 때, 자극적인 도파민이라는 것이 우리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왜곡하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방콕」, 성혜령)


다른 이야기들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조정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도 그것을 말할 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침묵을 택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의 정서적 상처를 마주하고도 성과의 언어로만 대화를 이어간다. 인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극적인 변화를 맞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언어로, 그러나 어딘가 텅 비고 어긋난 채로 현재의 한국을 통과할 뿐이다.


결국 겉으로는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사회를 뜯어보면, 감정은 지워지고 관계는 기능으로 대체되며, 삶은 점점 측정과 관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무엇이 결핍되었고 놓쳐버렸는지조차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태 뿐이다.


19인의 소설가가 직시한 '지금, 이곳의 우리'는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어딘가에 공허하게 뚫린 부분이 있으나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고, 사회의 여러 요소가 맞물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쉽게 붙잡히지 않는 현실 말이다.

(예를 들어 작품 속 사교육 열풍 역시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선택으로 내몰리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살고,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한다 믿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단편들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뉴스 기사가 담아내지 못했고, 우리도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공백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안락한 착각들에 물음을 던진다.


+이렇게만 말하면 건조하고 서늘한 단편만 가득할 것 같지만 김병운의 「일한 기록」이나 계엄에 대해 쓴 정용준의 「일어나지 않은 일」 같은거 보면 다시 인류애와 눈물이 충전됨.

특히 「일한 기록」은 너무 좋았는데, 청각 장애를 가진 채 20여 년간 성실히 근무하고 퇴직하는 아버지에 대한 단순한 연민에 그치지 않는 점이. 아버지만큼이나 쉬지 않고 일해왔지만, 공식적인 ‘직장’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감사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도 없던 어머니의 삶을 조명하는 게 진짜 너무너무 좋았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이의 시간을 복원해낸다니, 이런게 소설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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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달린 여자
서계수 지음 / 오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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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 | "자기가 무슨 만두를 먹은 건지 알아차린 사람들에겐 변화가 생겨요. 이를테면…"

남성 고기로 군만두 만들어주는 <만회반점>

어느 날부터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 남자가 단 하나의 ‘정상적인’ 존재와 마주하는 〈머리 달린 여자〉

검은 정장을 입은 동양인 여성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루시퍼가 인상적인 <지옥은 악마의 부재>


『머리 달린 여자』에는 이 세 단편을 포함한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각기 다른 설정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한 지점을 향한다. 일상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추악한 폭력의 단면을 바라보고, 그 견고한 구조에 묶여 있던 존재들을 비틀린 방식으로나마 해방시키는 서사라는 점이다.


특히 표제작이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이유는 ‘보지 못한다’는 인물의 상태에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적 이상이라기보다, 타인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현대인의 무감각한 태도에 더 가까워 보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눈빛과 표정을 읽어내는 시선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타인을 향한 감정 역시 너무도 쉽게 산화된다. 그렇게 지워진 얼굴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라, 소비 가능한 무언가로 남는다.

이 기괴한 설정이 낯설기보다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나 역시 타인의 고유한 객체로 바라보기 보다 직함이나 특징 같은 편리한 데이터로만 규정하며 정의내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솔직한 감상을 덧붙이자면 마냥 가볍고 재미있게만 읽기에는 다소 난해한 부분도 있었다. 소재와 설정은 정말 흥미롭고 기발했지만, 화자가 바뀌는 지점이나 시간의 이동이 명확한 신호 없이 그냥 다음 문단에 곧바로 이어지기도 해서,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꽤 집중이 필요했다. 무언가 표시 없이 갑자기 다음 문장에서 확 변해버려서 처음에는 살짝 놀랐음. (헥터가 화자였는데 갑자기 다음 문장에서 샛별이가 화자로 변한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성들이 그저 나약한 피해자의 위치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는 것. 그 변화는 때로 과격하고, 때로 불편하며, 억압받은 세월의 크기만큼 잔혹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를 가두고 있던 답답한 틀이 전복되는 쾌감이 발생한다. 스스로 '매력적인 괴물'이 되어 복수를 완성하는 여성들의 연대기는 보는 내내 서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 <만회반점>에 끌려서 읽었는데 나 좀 이런 류에 강하게 끌리는 경향이 있어.... 비슷한 종류로 남유하 작가의 『양꼬치의 기쁨』(2021, 퍼플레인)이 있음. 남편으로 양꼬치 만들어주는 가게. 이 책도 골때림. 남편으로 양꼬치 해준다니까 아내가 우웅...내 남편 화장실 갔다가 손도 잘 안씻구 그래서 누린내 날텐데...이런 고민함.


++ 아 조금 아쉬운건 <머리 달린 여자>에서 왜 머리 달린 여자가 진성에게 나타났는지, 그 여자는 누구인지 이거 출판사 소개문에서 빼주시지ㅠㅜㅜㅠ나는 이거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서 헐! 이런 충격을 받았는데, 이 글을 작성하면서 보니까 너무 다 드러나 있길래 이게 좀 아쉬워요...ㅠㅜ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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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원만 빌려줘 트리플 36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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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나는 타인이 될 수 없고, 타인이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 나 역시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에서 타인을 보고 스스로의 언어로 타인을 규정한다. 그 모든 일에 악의는 없다. 그래서 개인은 죽을 때 까지 외로울 지도 모르며, 타인에게서 나를 찾으려 하고 이해를 갈구하는 순간 빛나는 지옥에 갇히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옥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이백만 원도, 이십만 원도 아닌 고작 '이만 원'이라는 액수에 묶인 생(生)의 기록. 치킨 한 마리 값에 불과한 그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유예하거나, 혹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의 무게, 때로는 한 가족 구성원의 존재 가치를 난도질하는 수치가 된다. 그 조용한 비극 앞에서 우리는 그간 공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감정들이 얼마나 얄팍하고 값싼 폭력이었는지를 뼈아프게 실감한다.


연작 소설로 이어진 세 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부서진 인물들을 비춘다. 동반 죽음을 위해 떠난 여정에서 마주한 '진짜' 절망의 형상(동주), 동생의 죽음 이후 그래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오영), 그리고 몸값 이만 원짜리 유괴 피해자라는 낙인 속에서 뒤틀린 모성애를 견뎌야 했던 아이(정우)까지. 작가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억지스러운 화해를 주선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했다고 자부하는 순간조차 이 작품은 그것이 기만적인 착각임을 서늘하게 증명해 보인다. 공감은 종종 가장 손쉬운 방식의 오만이 될 뿐이라는 사실이 차게 드러날 뿐이다. 


오히려 안보윤의 문장은 타자의 고독을 나의 언어로 제멋대로 번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선언과도 같다. 냉정해보이는 거리감은 사실 상대를 온전한 단독자로 대우하겠다는 가장 지극한 존중의 표현이다. 모든 가치가 화폐 단위로 치환되는 삭막한 세상에서, 이해와 공감 · 연대가 정답처럼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 작가는 기어코 '알 수 없음'의 공백을 보존한다. 그 여백을 통해 훼손된 인물들의 존엄과 입체성을 비로소 복원해낸다.


이 소설집은 얇고 가벼운 장수와 달리, 책장을 덮고 나면 어지간한 벽돌책보다도 무겁게 남는다. 대책 없는 응원이나 근거 없는 낙관에 냉소를 느끼는 이들, 혹은 자신을 유폐시킨 '고장 난 전기밥솥' 같은 우리에게 이 책은 비로소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준다. 억지로 '우리'라는 틀에 묶이지 않아도 좋다고, 타인을 끝내 타인으로 남겨두는 무심함이 오히려 서로를 살릴 수도 있다고. 그저 각자의 지옥에서 묵묵히 서 있으면서, 서로의 지옥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과하면서 새로이 바라보게 된 그 태도야말로, 이 세계를 견디는 가장 덜 폭력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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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읽지 않습니다
김상원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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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1 | 우리는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기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먼 미래의 SF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투고 원고를 감당하지 못한 편집자가 인공지능에 ‘읽기’와 판단, 나아가 사고 자체를 넘겨버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이 서사는 점차 사회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축소되고,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겼던 판단마저 외부에 위탁되는 과정을 빠르게 밀어붙인다.


초반부는 특히 인상적이다. 과로에 지친 개인이 효율성과 편의를 위해 도입한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학습하고 확장해나가는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설득력 있게 구축되어 있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을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끼리 연결되고 서로를 학습하며 증식해 나가는 장면들은 지금 우리가 AI를 바라보며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정확히 겹친다. 몇몇 장면에서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 이미 일부 영역에서 현실화된 풍경을 떠올리게 하며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 이 부분 『먼저 온 미래』 (장강명, 동아시아) 와 상당히 맞물리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실제로 팔뚝에 와닿는 소름까지 끼칠 정도)


이 작품은 단순히 기술 발전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읽지 않는 인간’이라는 상태를 전면에 끌어낸다. 더 빠른 요약, 더 간편한 정보 소비에 익숙해진 우리는 점점 긴 호흡의 텍스트를 밀어내고, 판단마저 외부 시스템에 맡기려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소설은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으며, 그 끝에는 어떤 모습이 기다리고 있는가. 특히 ‘구세주’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윤리와 책임의 문제는, 기술이 앞서가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사유와 인문학적 성찰이 왜 필요한지를 되짚게 만든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분명하다. 중반부로 접어들며 ‘몽생몽’ 설정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성적인 표현이 반복적으로 튀어나오는데,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인 장치라기보다는 다소 과잉된 장식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충분히 기괴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더 밀도 있게 구축할 수 있는 소재였음에도, 유머처럼 삽입되는 성적 뉘앙스의 대사들이 흐름을 끊고 몰입을 방해한다.

애초에 유머스럽지가 않음. 대사에 굳이 농담처럼 오럴이 나온다던가, 인간을 유인하는데는 엉덩이 모양이 제격이라느니, 아포칼립스 파트의 '집단 교미 같은 춤' 이거 왜 굳이?

소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아쉽다. 이걸 진짜 잘쓰면 영화 「미드소마」처럼 기괴한 분위기를 줄 수 있고, 이 책 같은 경우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요소가 있었음에도 앞에서부터 자꾸 '섹스몽'이나 위에서 예를 든 저런 사례들이 반복되니까, 정말 나올 만한 부분에 그 이야기가 나와도 그냥 작가의 욕망이 걸러지지 않고 배설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 적당히 덜고 AI에 더 초점을 맞추지...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런 소재를 장편으로 끌고 가면서 더욱 선명하고 그 어떤 작품보다도 분명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읽지 않는 시대’라는 전제 아래,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고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 사고하는 감각을 어디까지 시스템에게 맡겨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정말로 사고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언뜻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편리해 보이는 선택의 위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가볍게 시작해 소름끼치는 서사를 건너 그 끝에는 분명히 불편한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였다.


+ 주인공 이름이 오이오인데 혹시 525 에러 코드에서 온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왜냐면 이 서사는 인간과 AI 사이에 연결은 되어 있지만 통제가 실패한 상태니까. 연결이 실패되었다는 상징인가 고런 생각을 약간 해봤음.


++ 이 모든 일은 과로에 시달리는 편집자에게서 시작되었으니... 출판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


+++ p.110 | "뇌야말로 꿈이 담딘 친환경 서버 아닐까요?"

이거 추천사 중 "AI 버전의 「서브스턴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느낌이 뭔지 알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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