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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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은 책 속의 풍경과 책 밖의 풍경이 겹쳐질 때다. / 첫 문장

잘 모르는 분야는 책으로 배운다.

술도 마찬가지로, 주량에 비해 술 맛을 잘 모르는 터라 자꾸 술에 대한 이야기에 손이 간다. 『아무튼, 술』(김혼비, 제철소) 『술꾼들의 모국어』(권여선, 한겨레출판) 『낮술』(하라다 히카, 문학동네) 같은 것들에. 중요한 것은 책에서 술 쩐 냄새가 나면 안된다. 내가 원하는 건 적당히 마시며 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거지, 크으 이야 이게 술맛이지 (술잔을 정수리에 탈탈 털며) 오늘 아주 그냥 죽어보자고, 하는 고주망태 알코올 중독 인간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밤은 부드러워, 마셔』 역시 진작 보관함에 있었다. 특히 몇년전에 이청아 배우가 본인의 유튜브에서 이 책에 대해 조곤조곤 소개하며 바에서 술을 마시는 영상을 보고 아주 홀딱 반해버림. 다른 것보다 살짝살짝 보이는 책에 인덱스가 엄청 붙어있었는데, 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면서 보관함에 넣어뒀는데...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그렇게 다른 책의 홍수들에 떠밀리게 되었습니다...ㅎ.... 그러다 그 책의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기억들에 냉큼 신청해서 운 좋게 받아볼 수 있었다.



술은 책과 함께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골라 읽듯이 술도 술꽂이에 꽂아 두고 골라 먹는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이다. / p. 63


보통 책은 차나 커피를 마시며 읽는 편이라 술은 생각도 안했는데 저번 달엔가 갔던 북카페에서 복숭아 맥주와 함께 시집을 읽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살짝 공감이 간다. 예전에 알쓸인잡에서 RM과 김영하가 술 마시면서 책 읽는 것에 대해 RM은 위스키를 마시면서 보고, 김영하는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나도 후자 쪽에 공감을 했으나 한번 술독 해보니까 몹시 이해가 감. 차가 좀 차분해지는 느낌이라면 술은 살짝 기분을 끌어올리면서 몰입하게 하는 느낌이라.


특히 이 책은 무슨 해리포터 마법주문 같은 긴 술의 이름을 수루룩 외면서 영화나 책 같은 문화적 요소를 그것과 같이 페어링한다. <중경삼림>에는 맥주를, 다자이 오사무를 생각하며 앵두주를. 그리고 정말 귀여운 월동 준비! 하리보 젤리를 코냑에 담가 두었다가 겨울 내내 한 마리씩 꺼내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도. (이걸 읽으면서 당장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코냑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검색까지 했다구...) 아, 이 에피소드 진짜 웃긴게 중간에 하리보가 뭔 크리스마스 요정같은거랑 같이 병나발 부는 삽화가 있는데 이렇게 속세스럽고 으른 같은 곰탱이 본적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읽다가 웃어버렸다.


어쩐지 이 책을 읽은 감상으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보다는 계속 나랑 연결짓고 내 에피소드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거야말로 에세이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면서 자꾸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 타인의 경험을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든 재현해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술은 단지 매개일 뿐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체험을 하게 만들기에, 책장에 두고 있다가 어느 날 밤이나 바에 갈 때 빼내어 꼭 곁에 두고 술을 마시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다.



+ 위에 말한 이청아 영상은 진짜 분위기 장난 아니니까 정말 추천합니다. 늦은 밤에 술 한 잔 하시면서! 특히 배우가 작가님이랑 친해지고 싶대요...증말 부러워...

++ 같은 술 에세이라도 『술꾼들의 모국어』는 반주 쪽이고, 이건 완전히 책과 영화, 분위기 쪽에 가깝다.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말.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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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다 읽을 거야 일력 - 빈 책을 채우자 나의 이야기로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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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사람들이 이제 슬슬 내년을 위한 준비를 할 때라는 이야기.

내년의 다이어리를 고르고 달력을 고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매번 제대로 끼지 못하고 부유했다. 왜? 일기를 꾸준히 못쓰니까. 약간 그런 타입 있지 않은가. 처음에 몇일 꾸준히 하다가 중간에 망쳐버리면 아예 다 놓아버리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그러다가 SNS에서 진짜 귀여운 일력 활용법을 봤는데, 매일 일력을 한장씩 뜯어서 포토카드 바인더에 넣고 그 뒤에 짧게 일기를 쓰는 것!

내년에는 비교적 편하게 junk journal을 써볼까 하던 차에 저 방법과 합치면 글 많이 안쓰고도 편하게 일기 (날로 먹기) 뚝딱이겠다 싶어서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받아봤다.



 * junk journal 의 예


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막 일력도 대충 덕지덕지 붙이고 오늘 받은 영수증이나 영화 팜플렛, 먹은 과자 봉지 같은걸 대충 스크랩하는 그 쿨한 느낌을 내보고 싶지 않으시냐구요ㅠ0ㅜ





일러스트는 『어린이라는 세계』에 삽화를 그리신 것으로 유명한 임진아 작가님의 일러. 몽글몽글하고 너무 귀엽다.
일기를 쓰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겠다 생각이 드는게, 이 일력은 매일매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내게 질문을 건다. 쓸게 정말 없을 것 같은 날에는 그걸 보고 도움을 받으면 되는 일 아닌가. 진짜 나처럼 일기 꾸준히 못 쓰는 사람들을 위한 사기템이다.

내년의 기록을 기대하며 1월 1일을 기다려 본 적이 없었는데, 새해를 기다리는 소소하고 귀여운 이유가 생겼다. 내년에도 잘 놀고 잘 읽고 잘 자고, 그렇게 지내야지.

+ 이런 일력은... 위가 아니라 아래로 뜯으십시오... 저도 굳이 제가 겪어서 알고 싶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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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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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 말은 정곡을 찌른다. 민주주의가 좋고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소구력이 없다. (···) 우리 삶을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지,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 p. 4



탄핵된 윤석열 정부 시기, 2024년 3월부터 이철희가 한겨레에 연재한 정치 칼럼을 한데 모은 책이다. 즉, 그 시기부터 한국 정치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계엄 때는 어땠는지,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에 대한 저자의 고찰과 소망을 담은 글들.


개인적으로는 들어가는 말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고 가는 게 좋았다. 민주주의가 그저 이념으로서 옳기 때문에 지지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과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말이. 그렇기에 저자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좋은 정치'가 그저 그것이 좋아서 같이 바라보아야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이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말에 설득력이 부여된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정치는 지겹고, 정치인은 거기서 거기이며 나의 관심 하나가 그리 큰 힘을 내지 못하리라 판단한다.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정치 하나가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지, 우리가 희화화하고 무시하는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의를 판단하고 내 발 밑의 현주소를 더듬어볼 수 있다.


물론 한국 정치의 위기는 여전하다. 계엄으로 인한 윤석열 정부의 몰락으로 인해 탄생한 이재명 정부, 이 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정치적 양극화와 팬덤 정치. '내 편'이 아니라면 무조건 타도와 혐오의 대상이며, 정치 때문에 사람들은 싸우고 가족들이 불화하기도 한다. (근데 나도 남말할 것도 아닌게, 그쪽 당 사람들과는 말도 섞기 싫음...) 혐오를 넘어 아예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고 배제하는 현상이 당의 지지자를 포함해 정치인들에게도 발생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쪽에서 정권을 잡게 되면 자신의 당을 제외한 다른 당들을 아예 짓밟아 버리려는 행동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여당이 바뀔 때마다 드러나는데, 이런 정치가 과연 좋은 정치일까. 당심이야 당연히 그들의 손을 들어주겠지만 과연 '보통' 일반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한국의 정치가 왜 무너졌는지에 대한 원인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된다. 비판과 분노, 혐오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상처가 난 민주주의 위에 어떤 식으로 길을 다시 놓아야 하는지, 앞으로 사람들이 바라보아야 할 길과 새 정부에 대한 소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렇기에 차가운 시선과 다정한 용기를 담은 이 책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외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물론 저자의 견해에 모두 동감하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다수당이 다른 당과 연대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맞는 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국민의 힘은 해산되어야 하는 당이라 생각하기에 으음...

++ '노사모'를 정치 팬덤의 효시로 보지 않는 점에는 매우 동감한다. 팬덤 정치의 본질은 나와 생각이 다른 정치인이나 그 집단을 혐오하는데, 노사모는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비판적 지지를 하고 있었으므로. 개인적 생각으로는 박근혜 정부부터 시작이라고 봄. 아니, 그때 진심 뭔... 꼭 뽑아야 한대. 그가 뭘 했길래요? 물어보면 일단 뽑아야 한대. 뭔가 불쌍하대...ㅎ...이게 팬이 아니라면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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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6
위수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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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오롯이 타인의 행복과 기쁨을 바라기에 연대하기 보다는 당신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곁에 있기도 한다. 혹은 혐오와 선망이 뒤섞인 시선을 가진채로.

드러나는 것들이 본심과 진실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살면서 여러 개의 '나'를 만들고 분리하며 저마다의 역할에 따른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피날레 없는 무대 위에서의 배우처럼. 그렇게 막이 내리지 않는 연기들의 결과가 현실이 되기도 하고, 벗지 못한 페르소나가 결국 본래의 자신을 잡아먹기도 하고.
근데 그게 본래의 내가 아니란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본심과 가장 먼 것들이 어쩌면 나의 진실일지도'(140) 모르니까.


배우와 매니저, 배우와 연출가 등 다양한 인물들은 외면적으로는 가까운 사이임에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선망하기도하고 질투하고, 동경하면서도 솟는 반감에 어쩔 줄 모르고, 환멸하면서도 연민하고. 그들은 절대로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없으며 얼마나의 시간을 들이더라도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바로 곁에 누워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같은 밤을 공유할 수 없다. 작가는 그 이유로 전작인 『우리에게 없는 밤』(문학과지성사, 2024) 에서 말했듯이 계급문제에서 찾는다. 마음을 아무리 터놓는다 해도 서로에 대한 복잡한 시선은 거둘 수 없고, 그런 탓에 쓴 가면이 벗겨질 날은 오지 않을 터다. 살얼음판과도 같은 관계. 이 이야기는 비단 이 소설의 배우와 매니저만의 것은 아니라 확신한다.
위수정 작가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사랑과 이해, 평등과 같은 단어는 너무 멀게 느껴지고 정말 이런게 있는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발이 부유하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것이 차고 냉정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놓게 해주는 때가 있다. 얄팍하고 예쁜 껍데기가 아니라 차가운 바닥을 직시하게 해줌으로서 오는 위로.

+ 진짜 끊임없이 계급과 사회, 인간 개인에게 던지는 시선이 차갑기 그지없는데 이게 너ㅠ무ㅠ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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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타자기 위픽
박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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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의 생을 승혜는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살아봐도 좋을 것 같았다. / p.57

다음 생에서 살아갈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생애전환 시행령'이 가능한 시기. 승혜는 맥반석이 되기를 희망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막연히 좋은 것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돌고 돌아 승혜가 갖게 된 생은 타자기였다.



이 책은 허물어지는 몸과 그에 따라 흩어지는 기억 속에서도 잊고 싶지 않은 기억과 여전히 쓰이고 싶은 마음들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복잡해지는 지점은 작품 외부의 독자나 작품 내의 제3자들은 인간의 삶을, 특히 하위 계층 노인들을 강제로 다른 물질로 전환시키는 제도가 비윤리적이라고 여기는 데에 있다. 인간이 비물질이 된다면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하는 생명 유지 비용이 줄어드니까. 생산성이 떨어지는 자를 인간의 범주에서 밀어버리는 일이니까.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늙을 권리와 생존의 의무를 빼앗겼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이 곧 노욕일 수 있으므로.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그들의 곤한 삶이 어쩐지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고.


인간의 삶을 잇는 것 역시 자유이나 그를 포기하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라고 생각한다. 존엄사에도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사회가 암묵적으로 벼랑 끝에 내몬 일에서 기인한 거라면 그것은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 맞나?


나의 몸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떨어져 이제 쓸모가 없다 여겨질 때, 사회적 비용을 축내기만 하는 '것'으로 내몰릴 때 사회가 비인간적인 것이 되기를 강제하는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답답해졌다. 마치 인간의 기준과 조건이 효용과 자본에 있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이 말에 적당히 반박할 언어를 아직 고르지 못했기 때문에. 작가가 끊임없이 사회에 던지는 예리한 돌덩이에 같이 맞으면서 나는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주제가 되는 기억보다는 사람다운 삶, 노인 빈곤과 복지의 문제에 더 방점이 맞춰져 덮는 순간까지도 무겁게 읽는 자의 발목을 잡는 날카로운 단편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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