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편지
설라리 젠틸 지음, 최주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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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전부 시작된 거예요…. 그녀의 비명에서요' / p.352


구조가 독특하다. 액자형으로 이야기에 층위를 부여한 구성이 두꺼운 책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500 페이지 가까이 되는데도 하루만에 다 읽었으니 확실히 빠르고 가벼운 매력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책은 미스터리 소설가 해나와 보스턴에 거주하는 작가 지망생 리오와의 펜팔, 그리고 해나가 쓰는 미스터리 소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온다. 해나의 팬이기도 한 리오는 해나의 소설을 열정적으로 피드백 해주는데 점점 리오의 피드백이 구체적으로 변한다. 사진을 보낸다거나, 범죄 현장을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한다던가. 등골이 쎄한 느낌이 드는 찰나, 리오가 해나를 실제로 찾아오겠다고 한다.



해나의 소설 자체는 사실 평범했다. 우연히 만난 네 명의 친구와 도서관에서 들린 미스터리한 비명, 그리고 시체, 우정과 사랑. 전형적인 달콤쌉싸름한 미국의 틴에이지 미스터리 드라마같은 느낌.

나는 거의 막바지까지 범인을 제대로 추리하지 못했는데, 이는 트릭의 엉성함이나 이상하게 제한된 단서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솔직히 원래 그런 놈은...범인이 아니라 어그로 끌다가 제일 먼저 죽는 롤이라고...) 이게 작가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뭔가 해나가 펜팔 친구 리오가 수상하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소설의 방향을 틀었다고 생각했는데, 마냥 좋은 친구로 리오를 생각했을 때는 서글서글하고 매너 좋은 카메오같은 느낌이었다면, 그가 수상한 행적을 보여주면서부터는 소설 속 리오도 어쩐지 서늘하고 찝찝한 면모를 보여줘서. 실제의 리오가 해나의 소설에 조금 덜 빠져있었더라면 여기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사실 초~중반까지는 해나의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을 즐겼다면 중~후반 부터는 이 새끼 머임..? 하면서 해나와 리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느라 해나 소설 막 치워 이거 빨리 넘겨버려 하면서 리오만 나오길 간절히 기다렸음.


아 이 얘기도 안하기 아쉬운데ㅋㅋㅋㅋㅋ리오 너무 피드백이라는 명목으로 해나의 소설에 감놔라 배놔라 정말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리오가 해나의 소설 속 인물 중 최애로 꼽은게 마리골드라 이게 재밌었음. 사람은 어느 정도 자기랑 닮은 사람에게 끌리는걸까.



진짜 내용 얘기만 하고 싶은데 책의 형태가 너무 감동적이라 말을 추가적으로 안할수가 없다. 이 컨셉츄얼함. '편지'라는 제목 그 자체가 그대로 느껴지는 이 물성...! 디자이너 정말정말 쏘 지니어스..



+ 이거 혹시 제 책만 누가 뒷 페이지 잘라갔나요..?

++ 솔직히 후반부에 부모님이 급발진 안했으면 범인 못 맞췄음.

+++ 해나의 소설 그 4인방 중 하나라도 실제로 죽었다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내 인성 문제가 아니라ㅜ 죽음이 화자와 거리가 좀 있어서 그렇게까지 무섭지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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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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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여러 이유로 글을 쓴다. 혼자서 보기 위함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와 정보나 감정을 나누기 위해, 혹은 직업적으로. 목적 없이 쓰는 글은 거의 없다. 한없이 배설에 가까운 글일지라도 사람을 의자에 앉아 펜을 들게 하는 최소한의 목적성이 있으니까.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p.326


오웰은 글을 쓰는 목적을 정치에 뒀다. 그러한 목적이 없는 자신의 글은 장식으로 가득했다는 고백이 뒤따른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쉽지 않은 냉철한 자기 판단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기도 했다. 학생 때 레포트나 논문을 쓸 때를 생각해보자. 주제 하나에 문자수를 어떻게든 늘이겠다는 일념 하에 장식을 주렁주렁 달지 않았었나. 다른 사람들의 논문은 탄탄한데 내 것만 바람불면 구멍 뚫릴 것 같은 허접한 알맹이 없음을 너무나도 자주 목격해왔기 때문에 나는 저 말에 퍽 공감이 되었다.


목적 없는 자신의 글이 허황되었다는 자기 비판은 그의 글에 무서울 정도의 정직함을 부여한다. 사람에 따라 거의 달리 읽히지 않는 솔직함과 당당한 특징이 거기에서 기인하고 있었다. 몸으로 밀고 나가 부딪힌 현실의 경험에서 출발한 글은 대체로 유머로 포장되었지만 날카로웠다.



가끔 글을 쓰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모호한 표현으로 스스로를 감추곤 했다. 지식과 경험의 부족, 그리고 타인의 비판에 대한 두려움이 '이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한 목적성을 흐리게 만들었다. 물론 여전히 조지 오웰만큼 솔직하게 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대도, 앞으로는 계속 떠오르고 곱씹을 것을 예감했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왜 쓰는가'를.



+ 아 서평에 대한 이야기도 약간 마음 후벼팜.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311). 미친 고백임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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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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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뿌리가 필요하듯, 위의 볕 좋은 세상이 있으려면 그 아래 램프 빛 희미한 세상이 필요한 것이다. / p.48

 

 

조지 오웰의 르포가 읽고 싶었다. 워낙 소설로 유명하지만 그 유명한 <동물농장>이나 <1984> 이전에 그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게끔 한 바탕이 있었으므로. (물론... 읽으려면 이전에도 읽을 수 있었으나 표지 못 생기면 읽기가 싫어요🥲) 와중에 한겨레출판에서 새 옷을 입고 나와 드디어 읽을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 p.46

 

 

33살의 오웰은 탄광 지대의 실업 문제에 대한 르포를 청탁받는다. 그를 위해 싸구려 하숙집에서 묵으며 탄광 노동자들과 함께 지낸 그 생생함을 면밀하게 담아낸 르포르타주. 전체주의나 통제가 당연한 사회를 다루는 <1984>가 조명받는 것 처럼 나는 이 이야기도 같이 조명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탄광 노동자의 실업 문제가 현재와 결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외면받는 탄광 노동자가 한국 사회 곳곳의 노동자들과 뭐가 그리 다를까. 당장 최근에 또 일어난 spc의 사고도 그렇고, 같은 출판사의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2023) 에서 말하듯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는 매일같이 누군가 끼어서 죽고 불에 타 죽고 질식해 죽고, 그렇게 하루에 2명 꼴로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우리의 현실은 조지 오웰이 목격한 현실보다 더 나은가 읽는 내내 곱씹었다.

 

오웰은 물질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방향은 결국 노동자에게 칼이 되어 돌아오는 구조임을 일찍이 눈치채고 경고했다. 나의 안락이 누군가의 피를 바탕으로 서 있다는 것을. 그로 인해 쓰여진 2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은 정치에 대한 경고문이면서도 상층 부르주아 출신의 본인을 재인식하는 성찰적 성격을 가진다. 자신을 예로 들어 계급 문제와 사회주의자의 문제를 비판하는 시선은 시대를 넘어 현재까지 꿰뚫는다. 솔직하여 통렬하기 까지 한 글은 읽기까지 쉬워서 마음이 너무 쉽게 열린다. 소설보다 직설적으로 와닿는 감정에 읽다보면 목구멍을 뭔가 울컥한 것이 두들기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여전히 지금도 풀리지 않아 고민되는 여러 문제들이 이 마음을 지표로 삼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리하여 제2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같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맨체스터의 칙칙한 슬럼가를 걷다 보면, 이런 혐오스러운 동네는 다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번듯한 집을 짓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슬럼을 부수면 다른 것들까지 부숴야 한다는 점이다. / p.94

 

이것도 너무 현실의 재개발 문제ㅠ 당장에 비슷한 재건축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지역을 대라면 나는 몇 개쯤은 간단히 말할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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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세계의 신과 내일 비가 올 확률
경민선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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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쓰레기 매립지와 최대 규모의 카지노가 같이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목표와 달리 카지노는 지역의 미래를 되려 잡아먹었다. 모든 지역 사업은 도박광을 위한 장사판이 되었고, 어른들은 번 돈을 다시 도박장에 쏟아 넣었다. 쉬운 접근성이 지역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쓰레기를 팔아 근근이 끼니를 해결하던 아이들의 손에 슈퍼컴퓨터가 들어온다. 무작위로 문장을 뽑아내는 듯한 컴퓨터에서 도박과 관련된 문장을 수집한 아이들은 동광 카지노로 향한다. 이 쓰레기판을 벗어나겠다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경민선 작가답게 이야기는 단숨에 읽을 정도로 흡인력이 좋았고 속도감은 빨랐다. 

인풋한 데이터에서 전혀 관련 없는 문장들을 뽑아내 세계의 구멍을 찾는다는 컴퓨터도 흥미롭긴 했다. '습도가 50에서 49로 떨어진 뒤 5초 내에 던져진 주사위의 눈은 1이다.' 뭐 하나하나 연관 있는 단어가 없다. 말 그대로 신이 실수로 이 세계 어딘가에 구멍을 낸 수준이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납득 가는 방법으로 출력되는 세상. 나도 좀 저런 컴퓨터 하나 주워다가 인생 다리미질 해보는 것도 좋겠다.


사실 나는 도박을 좋아한다. 강원랜드, 막 불빛이 현란한 그런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는 사소한 도박. 뽑기 같은 사소한 것들. 진짜 환장한다. 

하지만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한탕 해보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더군다나 아무리 쓰레기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그런 곳을 통해 그 곳을 벗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게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자극적인 도파민과 순간의 선택이 너무나도 큰 것을 좌우하는 곳에 발조차 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이입하며 읽기에 아이들의 생각은 너무 어렸고 좋은 어른들은 하나 없었다는 것도 슬프다. 아이들이 보고 자란 것이 카지노로 향하는 어른들의 등이기에 자연스레 그들을 답습했겠거니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차라리 그럴거면 시원스레 도박에 성공해서 인생 역전해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말 그대로 한 판 승부인 도박과도 같이 자극적인 도파민이 오르내리는 빠른 속도감의 소설이었다.



+ 개인적으로 경민선 작가의 전작인 <지옥의 설계자> 보다는 흥미롭지 않았다. 우연히 무언가를 얻어 큰 판을 벌려 일반인은 꿈꿀 수도 없는 돈을 번다는 것이 흔히 남성들이 좋아하는 양산형 웹소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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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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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아무 이유 없이 죽었어요. 엄마는 다른 사람 300명과 죽음을 나눠야 했어요. 우리 아빠는 웬 기업형 농장에서 수십 년 동안 닭똥을 치운 끝에 이름 모를 사람으로 죽었고요. 난 내 인생이, 내 죽음이 그보다는 의미가 있었으면 해요. / p.47


"어떤 사람들은 죽은 뒤에 태어난다"

하나뿐인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순교란 그런 것이다. 살아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사회에 던진다. 그런데 순교란 그렇게 언제나 숭고한 것인가.



이 책은 이란계 젊은 시인 '사이러스'를 메인 줄기로 잡고 과거와 현재, 그의 가족과 주변의 가지들을 계속 둘러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어머니는 이란 여객기를 적기로 오인한 미군의 격추 사고로 죽은 290명 중 한 명이다. 미국은 일반인의 죽음을 초래한 실수에 대해 "논리적인 판단"이라며 그 죽음에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사이러스를 키우기 위해 미국의 공장에서 일만 하며 살다가 그가 대학생이 되고 얼마 뒤에 숨을 거둔다. 그저 사이러스를 위해 죽지 못해 버틴 삶이었다. 삼촌은 이란 - 이라크 전쟁터에서 '신의 사자'를 연기하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 정신이 나가 버린다. 사이러스는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며 자살 충동에 시달리면서도 의미 있는 죽음에 집착한다. 

그러던 중 이란 출신의 여성 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고통을 참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갖춘 채 미술관에서 숙식하며 관객들과 만나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순교자!' 의 발견에 사이러스는 그녀를 찾아간다. 사이러스의 '순교자 프로젝트'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경계에 선 사이러스의 위치는 아슬아슬하다. 페르시아계 미국인이면서 미국에게 가족을 잃은 하나의 개인은 '대통령을 죽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자살 폭탄 테러'이면서도 어느 집단에는 '순교'이다. 순교라는 행위는 이처럼 상대적이다. 작가는 순교라는, 어쩌면 신성불가침적인 단어에서 상대성을 끄집어내어 미국의 가소로운 정의와 국가주의, 종교 그리고 궁극적으로 허무할 수도 있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이 상대적이고 모호한 주인공의 특성은 이 책의 구조로도 형상화된다. 꾸준히 한 목소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을 배치해 '내'가 계속해서 바뀐다. 주인공마저 어디선가는 자식이고 조카고 친구이며 갑자기 찾아온 조연이다. 자타는 혼재되고 개념은 뒤바뀌는 일이 빠르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국적, 성별, 생사 등 여러 방법으로 그어놓았던 경계선이 이상하게도 흐릿해진다. (덧붙여 이 책의 목차가 없다는 특성에서도 경계를 굳이 나누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은 가끔 모순적으로 흘러간다. 유명한 '필사즉생 필생즉사'도 그렇고 죽음에 관련한 문제를 파헤치다 보니 삶이 떠오른다. 의미 있는 죽음에 천착하는 행동이 거꾸로 그를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갖다 놓는다. 그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 죽음 자체는 의미가 없다. 모든 의미는 살아 있는 것에서 나온다. 삶이 죽음을 끌어내고 죽음에서 삶을 깨닫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발 밑이 생사의 교집합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의 의문과 흔들림이 실재하는 나를 덮치는 기묘한 감각이 이어지는, 말 그대로 '아주 멋지게 이상한 소설'이었다.



+ 이 책은 근데 진짜 한 권의 거대한 러브스토리이다. 러브가 없는데 사랑임... 진짜 요상한 소설.


* 은행잎 1기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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