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나 O
매슈 블레이크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7월
평점 :

"미안해. 내가 죽인 것 같아."
안나 O.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잠자는 공주.
4년 전, 25의 안나 오길비는 칼에 찔린 채 숨져있는 두 친구의 옆에서 잠든 채 발견되었다. 흉기에 남은 안나의 지문, 피로 얼룩진 옷, '내가 죽인 것 같다'는 메시지. 그렇게 잠든 채 발견된 그녀는 4년 내내 깨어나지 않는다. 이 잠자는 공주가 과연 그날 밤의 진짜 살인자가 맞을까.
잠든 사이 저지른 살인의 유무죄. 사실 내게 이 질문은 별반 흥미롭지 않았다. 의식 없이 저지른 범죄에 무죄의 여부를 고민할 여지가 있다면 심신미약의 경우 역시 인정되어야 할 수 있고, 나는 정신이 나갈 정도의 알코올이나 약물 복용 이후에 지은 죄에 처벌이 빗겨나가길 바라지 않으므로. 자기 유발형이든, 타인에 의해서이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든. 피해자 유족의 앞에서 정신이 없었으므로 선처를 바란다고 해볼 수 있으면 해보던가. 워낙에 학생 때도 강경한 입장이었고 지금도 생각의 변화는 없기에 이 부분보다는 '체념증후군'이라는 소재나 서사의 드라마틱함에 중점을 두고 읽어나갔다.
*체념증후군 : 심리적 충격이나 트라우마에 의해 발생하는 상태로, 아이들이 신체적으로 완전히 기능을 멈추고 침대에 누워 거의 식물인간처럼 지내게 되는 현상
넷플릭스 영상화 확정이라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다각도로 바라보는 사건, 메인 주인공인 법심리학자 '벤'을 빈틈없이 죄여오는 미스터리들, 잠들어 있는 공주를 깨우기 위한 시도들. 잠들어 있던 자를 깨우는 것이 과연 맞는가, 살인 용의자인 잠자는 공주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오히려 쥐덫에 걸린 건 반대로 깨우는 자가 되면서 이야기가 극적으로 흘러간다.
추리 미스터리 분류로 봤을 때, 생각보다 꽤 치밀하게 짜여진 것 같아서 이 부분 역시 괜찮다고 느껴졌다. 두께가 좀 있는 편이지만, 전부 필요한 이야기이며 복선이라서. 요즘 추리라는 이름을 달고 갑자기 어? 하게 되는... 이야기가 많은 걸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트릭이고 미스터리였음.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 반전이 요즘 꽤나 유행하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가 될까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트릭 자체는 미궁이더라도 어쩐지 범인은 알것같은. 물론 영미권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면 꽤나 극적인 한 방의 반전이 될 수 있겠지만 최근 들어 이런 식으로 풀리는 소설을 다수 접했다보니 처음에 미지의 X가 나오는 시점부터 나는 어쩐지 범인이 예상이 갔다. (그런류가 별로라는 것도 아니고, 설득력이 없이 갑자기 찬물 맞듯 등장한 것도 아님. 그냥 개인적인 아쉬움...)
상당히 치밀하고 계획적인 복수극이자 반전의 연속이라 영상화가 기대되는 작품에 넣어둬야겠다. '프린스'는 결국 잠자는 공주를 깨운다. 공주는 무결한 피해자인가 뻔한 용의자인가, 잠든 눈을 뜨게 해 준 왕자는 공주에게 있어 구원자일까.
+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보통 천오백일, 1500일 이렇게 쓰지 '천500일'(p.37) 이렇게는 안 쓰지 않습니까..? 클래라가 클라라로 쓰여있거나(p.224)
'클래라는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내가 들고 있는 찻잔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p.166).
형사가 왜 살인 사건 신고자(전남편)의 찻잔을 부러운 듯이..쳐다보죠..? 원문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식으로 뭔가뭔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삽입되어 있어 이상하게 몰입하다가 엥? 하고 깨지는 순간들이 있었음.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