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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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은 유한하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사람들은 영원을 꿈꾸며 작품을 남긴다. ‘지금’의 ‘나’를 오래도록 붙잡아 두기 위해서.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바로 그 욕망이 어떻게 시간을 건너 예술로 살아남는지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기는 지를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느릿한 걸음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추천사 중 '단지 미술사를 배우는 일만이 아니다. 삶과 예술의 본질을 함께 사유하는 여정이다. 그림을 읽어내는 기쁨, 시대를 잇는 감동'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특히 시대를 잇는 감동 쪽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다른 미술사 책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여성의 초상]이라는 파트가 있다. 이 책은 나혜석과 이재헌을 연결해 단순 '여성'이 아니라 사회가 바라보는 '여성'을 보여준다. 1900년대의 신여성과, 현대의 온갖 세속적인 욕망에 갇힌 아이돌이 교차된다. 내게는 치트키처럼 꽂히는 키워드라 자세히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솔직히 나혜석의 작품만큼 강렬하고 자극적으로 와닿는 작품은 아닌지라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이게 현대의 작품임을 떠올리자, 어쩐지 비교적 슴슴함이 이해가 되더라... 왜냐면 이건 지금의 이야기라, 이 작품 속의 여자 아이돌들이 실존하고 있으니까. 문제 의식을 일깨우겠다고 어린 여자 아이돌을 자극적이고 강렬하게 반영해버리면 새로운 가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의 예술가가 삶을 살아내며 남긴 흔적은 특정 시점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의 예술가가 품은 불안과 욕망, 연대의 감정과 겹쳐지며 시간선을 횡으로 꿰뚫는다. 그렇게 미술은 시간을 잇고, 인간을 이해하는 단서를 던지며, 인간이 왜 여전히 예술을 필요로 하는지 그저 보여줌으로서 증명할 뿐이다. 그런 예술의 필요성을 이 책은 조용히 설득한다.


+박서보 작품 뭔가 너무 마음이 감 <허의 공간> 내 스타일...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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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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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말자. 결말을 알 수 없는 게 살아 있는 이들의 삶이라면, 결말은 알고 있되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게 스스로 떠난 이들의 삶이니까. 결코 다 알 수 없지……. 죽음의 원인에서 내 탓을 찾지도 말고. 죽음으로 그의 삶을 미화하거나 왜곡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기억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 p. 82


솔직히 말하면, 설정은 어렵지 않다. 

가족의 자살로 혼자 남겨진 형우가 엄마와 동생의 10주기에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데, 당도한 곳은 저승이 아니라 아름다운 해변 '말라가'. 그곳에서 형우는 9살, 19살, 29살의 형우를 차례로 만나고 과거를 되짚어보며 죽음에 대해 천착하는 이야기.


진짜진짜 솔직히 울지 않기는 어려운 이야기이고, 언제 읽어도 무뎌지지 않는 슬픔이 송곳처럼 마음을 꿰뚫는 소설이라 중간중간에 덮어가며 조금씩 읽었다. 


자살사별자인 등장인물들이 모여서 프리다이빙을 배우는 부분이 바로 이 책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관통한다. 상실감이 깊으면, 아픔이 짙어지면 우리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된다. 으레 그럴 때는 옆에서 심호흡을 요구한다. 뱉어도 고통, 들이마셔도 아픔이기에 숨을 쉴 수 없는 것인데도. 그때 프리다이빙은 오히려 숨을 참는 것을 가르친다. 그냥 숨을 참고 아픔에 매몰되라는 일이 아니라, 일단은 참고 견딜 수 있는 바닥까지 가 본 뒤에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다시 올라오는 일. 혼자가 아니라, 나와 같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즉, 개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타자와의 연대를 제안한다. 


『말라가의 밤』은 슬픔을 강제로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그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의 손을 붙잡고 올라올 수 있는지를 차분히 따라간다. 내 옆의 남은 손을 돌아보게 하고 나 역시 손 내밀 수 있게끔 만드는 이야기. 상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 독특한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 솔직히 수영을 잘 못하고, 관심도 별로 없었기에 수영으로 삶의 방향을 찾는 이야기를 보며 담담히 그렇구먼...하고 말았는데, 이걸 읽고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수영 자체가 아니라 필요한 건 호흡하는 방법이라는 걸. '잠시 숨을 참더라도, 결국엔 수면으로 상승해 회복 호흡'(351) 을 해야 슬픔이 가득한 삶일지라도 지속해나갈 수 있으므로.


++ 근데 진짜 슬픔. 아 이거 진심 슬픔 보장 이야기이긴 함... 근데 좋음. 그냥 일반 클리셰 범벅 뻔한 신파 이런거 아니고 갓섬을 자극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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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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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오해다. / p.16

겨울에 재즈를 틀고 술 마시면서 보세요. 게다가 눈까지 온다? 완벽.

딱 그 깔임

커피, 차 다 마시면서 읽어봤는데 술이 딱입니다. 맥주 이런 거 말고 위스키, 진토닉 이쪽으로. 제발....



솔직히 말하면 좋은 쪽으로는 순수고 나쁜 쪽으로 말하자면 비현실. 자기연민은 지나치고, 예전 소설임을 감안하더라도 설정은 약간 진부하다. 그래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니 슬퍼지고, 특유의 분위기가 묵직하게 사람을 눌러온다. 그러니까, 단순한 로맨스 소설, 인터넷에 연재된 소설로 가벼이 보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책이라는 말.

간단히 말하면 잘생긴 남자 x 상당히, 놀라울 정도로 못생긴 여자. 최근에야 여성 주인공도 못생겼다는 특징을 가지는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나오지만, 이 이야기가 연재될 당시에는 훨씬 드물었기 때문에 확실히 당시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외모를 폄하하는 순간, 그 자신도 더 힘든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예쁜가? 그렇게 예뻐질 자신이... 있는 걸까? / p.326


'못생김' 이라는 특징을 가진 인물을 사용하여 진정한 사랑에 대해 말하고, 불완전하고 사회가 내 걸은 특정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의 감정을 조명한다. 즉 이 책은 외모지상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작가의 말 중 '우리의 손에 들린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436)라는 주장의 근거이자 그리하여 한낱 인스턴트처럼 전락한 사랑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 사랑의 힘이란 여전히, 이렇게나 강력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거였다.



+ 특이하게도 엔딩이 두 갈래이다. 결국 선택하는 것은 독자에게 달려있으나 주가 되는 인물 세 명이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기에 가슴이 그냥 찢어져버림. 여운이 진하게 남는 이유가 단순히 망한 사랑이라서가 아니라... 하 그냥 울면서 눈 내리는 겨울, 혹은 낙엽 지는 늦가을 쯤에는 꼭 읽어달라고 파닥거릴게요.


++ 저 안 믿어도 박정민은 믿을 수 있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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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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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리는 권리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세워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권리라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것들의 시작과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는 인지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p. 260



테무깡, 쉬인깡이 유행하는 시대에 우리는 너무 쉽게 옷을 산다. 사실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패스트 패션 시대를 살아가며 버려지는 옷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질 낮은 상품을 과잉생산해서 저렴하게 팔고, 빠르게 버려지는데 문제가 없을리가 없다. 심지어 지금은 울트라 패스트 패션 시대란다. 몇 년 전부터 분명 지적되어 온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가속화되었다.


굳이 '패스트 패션'은 환경에 유해합니다. 이르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친환경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 말이 크게 와닿지가 않는다. 왜? 보이지가 않으니까. 버려진 헌 옷들은 그 순간 나의 눈 앞에서 사라진다. 헌 옷 수거함에 버리면 그걸로 끝이니까. 이 헌 옷들이 차라리 국내에서 대부분 처리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그렇게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에 <헌 옷 추적기>는 가시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153개의 추적기를 헌 옷에 부착해 4개월간 그 옷들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쫓는다. 

한국은 세계 중고의류 수출 5위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헌 옷을 가장 많이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순위로 손에 꼽힌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렇게나 많이. 수출 된 옷은 재활용되는가? 공식 통계는 100%지만, 정작 옷들은 인도의 불법 소각장과 타이의 쓰레기 산, 볼리비아의 황무지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금방 버려질 쓰레기가 될 것이 확실한 옷들을 유흥거리처럼 사고, 다른 나라에 떠넘기면서 탄소배출량을 줄인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줄였다며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재앙의 지리학>에 나오는 '탄소 식민주의'라는 단어가 정확하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 개발도상국이 후진국으로 떠넘기고 외면한다. 그리고는 후진국이나 개도국이 자국 발전에 눈이 멀어 탄소를 배출한다며 조절하라고 꼬집는다. 그들의 환경 오염 문제를 심각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바라본다. 인도의 수질과 대기를 오염시킨 것은 오롯이 그들이 자국 발전에 눈이 멀어서 그렇다는 듯이. 


읽는 내내 기분이 처참하다. 쓰레기 산에서 유해물질을 들이마시고, 그 위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나올 때마다. 기업, 물론 책임이 있다. 과잉 생산, 대량 폐기 구조를 만들고 재활용을 한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빠져나가니까.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 낸 구조가 더욱 빠르게 굴러가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건, 옷을 즐기듯 사고 쉽게 버리고, 쓰레기가 될 것이 자명한 옷들을 대량으로 사서 10분 짜리 컨텐츠로 소비한 뒤 버리고, 그런 컨텐츠를 즐기는 우리 아닌가. 이 처참한 구조에 개인의 책임은 없는가. 


<헌 옷 추적기>는 단지 헌 옷의 행방만 추적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엮인 구조에 대해 가시적으로 들춰낸다. 외면해온 현실을 기어코 눈 앞에 가져다 놓지만 과장도 분노도 걷어내고 침묵으로 사실을 드러내는, 드물게 정직한 추적기다. 그 담담한 시선 속에서 우리는 그제야 변명 대신 책임을 떠올리게 된다. 환경 오염에 나의 옷장은 얼마나 연루되어 있을까. 



+ 이거 글 쓸수록 약간 사람이 분노에 차오름. 아 진짜 인간들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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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정원
한소은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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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비밀 같은 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 p. 190



2032년, 인구 고령화 문제와 도심 공동화 속도는 더욱 박차를 가한다.

싱글맘인 지수는 딸 아이와 '안음주택'에 입주한다. 정부에서 리모델링해서 공급하는 서울 최북단의 공동체 입대주택. 이전 세입자 모녀가 1년만 살다가 나갔다지만, 들어가자마자 회색 토끼 인형도 자기를 맞이하듯 들어있고 주민센터 직원 말로는 여기 관리소장 '은수'가 그렇게 인물이 났단다. 독거노인은 내 부모처럼, 혼자 노는 아이들은 부모처럼 살뜰히 돌봐주는 인성까지. 심지어 월세는 40퍼센트나 저렴하다. 안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침.


솔직히 저 근미래 배경? 다 상관 없음. 이거 그냥 네이트판에 올리면 난리나는 이야기거든요. 우리 알잖아요. 은근히 무리의 중심에서 가족놀이 하면서 친밀함을 강요하는 인물. 사람이 가장 절박할 때 살살 꼬드기면서 약자를 더 약자의 위치로 떨어뜨리는 인물. 

돌봄과 배려가 목적이 되어야 할 공간이 오히려 그 사람의 목을 조르는 과정이 상당히 촘촘한데 작가는 이 때 은수라는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작중 인물을 넘어서, 독자의 뇌를 주물거릴 정도로.

그렇습니다. 은수 가스라이팅 끝내줌. 이거 완전 가스라이팅의 교과서임. 보면 그냥 막 텍스트 너머로 내가 다 홀림. 이거 보면 가스라이팅? 어 너두? 야 나두. 상태가 됨. 물론 진짜 하면 안되지만.



타인과의 관계 사이의 적절한 거리, 작은 균열과 사소한 맞물림, 사람의 마음이 언제 가장 약해지고, 어떤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지, 다양한 각자의 욕망이 거미줄처럼 얽힌 이 안음주택에서는 마치 희극같은 군상극이 퍼즐처럼 맞물리며 인물들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어떤 스릴러보다 그냥 스릴러거든요 이거.




뭔가 멋진 이야기로 평을 쓰고 싶지만, 재미가 걍 휘모리 장단처럼 쳐오면 아무 생각도 안 나버려요..

솔직히 말하면 부족한 점이 없는 건 아님. 굳이 근미래가 배경이어야 할 커다란 설득력이 부족해서. 설정 이유야 납득이 가는데, 진짜 굳이라. 근데 그걸 넘어서서 스토리적인 재미는 확실했다. 언젠가 드라마로 다시 만날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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