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우정과 무가치한 연애들 - 연인도 부부도 아니지만 인생을 함께하는 친구 관계에 대하여
라이나 코헨 지음, 박희원 옮김 / 현암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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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로맨틱 관계는 우리 삶을 형성하는 유일한 결합이 아니다. / p.352

사회는 인간들에게 학습을 시킨다. 필히 로맨틱한 관계가 수반되는 다른 성별이 결합하여 가정을 이룰 것을. 어릴때부터 배우는 소꿉놀이부터 길거리의 온갖 미디어들도 연애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눈치채지도 못하게 전방위에서 밀려들어오는 치밀한 압박 속에서 그 외의 선택지는 박탈된다. 


어째서 우정은 연애를 대신할 선택지가 되지 않는가, '사랑'이라는 단어에 로맨틱한 관계가 수반되지 않는 것을 끼워넣을 수는 없는 걸까. 연애와 결혼 안에서만 우리는 인생의 반려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심지어 흔히 밸런스 게임을 하면 사랑과 우정 중 무엇을 택할거냐고 묻기도 한다. 왜 둘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우정은 어째서 사랑이 될 수 없는가.


삶의 동반자라면 마땅히 '로맨틱'해야 한다는 강력한 프레임. 그러니까 깊은 우정을 쉽게 사랑이라 단정 짓는 것, 혹은 사랑이라 하면 반드시 성적 관계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관계의 공식에서 벗어난 이들의 용감한 걸음들. 연인도 부부도 아니지만 인생을 함께하며 기꺼이 나의 반쪽이라 부를 수 있는 친구 관계에 대한 반가운 사례들이 여기에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데, 어째서 인생의 동반자를 고를 때는 단일한 관계만을 강요하는가. 로맨틱한 관계의 연인만이 나의 전부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을 때, 오히려 더 건강한 파트너십을 만들어내고 더욱이 낭만적으로 나를 지탱해주던 우정을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이는 세상을 벗어나는 일이 아닌 세계를 확장시키는 방향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새삼'의 일을 우리는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도록. '굳이', '새삼'이라는 부사가 붙지 않도록.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나 『여자 셋이 모이면 집이 커진다』 같은 삶을 꿈꾸는 친구들이라면 이 책을 싫어할 수가 없다. 그런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교환독서 하면 재밌을 것 같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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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 23개 질문으로 읽는 검찰 상식과 개혁의 길
박용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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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검찰 상식이 우리 사회의 필수 교양이 되었나 / 들어가는 말


"기소 당하면 인생이 절단난다"

윤석열이 몇년전에 한 말이다. 판사가 무죄를 선고한다고 피고가 자유로워 지는게 아니라는 말, 양날의 검과 같은 검찰권의 무거움을 말하는 데는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인생을 절단낼 수 있는 기소권을 제 정적을 제거하는데 남용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적으로 휘둘렀지만 말이다.


자정되지 않는 기관, 윤석열과 한몸이 되어 집단의 이익만을 꾀하고 국민이나 무고한 자에게 칼을 들이밀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검찰이 그와 함께 몰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아닌가. 12.3 내란의 밤을 같이 지새고 그 이후의 시간을 같이 걸어온 사람이라면, 폭주를 막을 수 없고 견제할 힘이 지금껏 없었다는 걸 목도해 온 국민이라면 검찰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검찰을 공소청으로 개편하고 검수완박을 하면 끝나는 일일까.


검찰권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그 권한을 분산시키고 윤리에 맞지 않게 부당하게 행사할 경우 그들에게 징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검찰 앞에 놓인 가장 커다란 문제는 이것이다.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형사 사법과 부당한 기소를 남용해대던 과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 어떤 식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것. 저자는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답을 찾고자 한다. 주요 범죄 기소를 아예 시민들이 결정하게 한다거나 (미국 대배심), 검사가 불기소하더라도 시민들이 뒤집을 수 있는 시스템(일본 검찰심사회), 혹은 스페인 · 노르웨이와 같이 공무원의 법 왜곡 행위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것 등. 그 어느 나라에도 완벽한 시스템은 없지만 이렇게 검찰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일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너무나 비대한 검찰권은 단 한번도 제 존재를 축소해본 일이 없이 검찰 주류의 이익을 위해 국민에게 칼을 겨누는 걸 꺼려하지 않았으니까.


많은 국민들이 검찰을 주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몰라도 좋을 판검사의 이름을 우리는 몇개씩이나 알고 있다. 한국 검찰 내부만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대부분이었던 그 동안의 글들과는 달리 이 책은 손가락을 밖으로 향해 다른 나라를 가리키며 앞으로의 우리 검찰이 나아갈 길을 다방면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에 맞는 새로운 검찰 제도에는 무엇이 있을지, 앞으로의 검찰은 어떻게 될지 나름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게끔 하여 당면한 시대적 과제에 분명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 세계의 검찰도 나오는 1부와 달리 2부에서의 감정 이입과 열받음은 진짜 상상을 초월함^^ 야잇.....


++ 그게 진짜 웃김. 검찰 로고가 대나무의 올곧음을 상징하고 중립성? 공정성? 청렴함? 독립성? 뭐 그런게 있다는 말이. 뭐 하나 있는 게 없는데.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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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자들 위픽
백온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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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가 전부라서, 전부를 잃지 않기 위해 마음을 모질게 끊어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한 거겠지. 덜 사랑하면 덜 슬플 줄 알았는데. / p.100


연고자 (緣故者)

혈통, 정분, 법률 따위로 맺어진 관계나 인연이 있는 사람.


어느 날 윤아는 보육원에서 친남매처럼 자란 태화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윤아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는데, 태화가 매일 밤 윤아의 집 초인종을 누르며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이나 '다름없다는 말' 속에서 절대 가족이 될 수 없음을 이해하고 전부를 잃지 않기 위해 전부를 끊어내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이는 맹목적인 애정을 찾아 타인에게 목을 매고 준 크기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사랑에 결국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려가 부족했던 방어적이고 비겁한 마음들은 끝내 안에서부터 곪아 결국 영혼에 깊이 새겨져 아물지 않을 상흔이 된다.


윤아와 태화의 관계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가족도 아니면서 우정도 사랑도 아니고 서로가 서로의 전부임을. 서로에게 서로의 모습을 온전히 투영할 수 있는 관계에 고작 '전부'라는 표현을 써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래서 태화는 연인이었던 지현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윤아를 끊임없이 찾아왔던 거겠지. 그런 연고자니까.


덜 아프고 싶어서 덜 사랑하려 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상대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러는 마음인지 몰라서 선택하게 되는 비극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사랑해두어야 하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눅눅하게 젖어가는 마음이 무거워 고개를 숙였는데, 어쩌면 그런 게 사랑의 무게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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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워진 이름들 사이드미러
김준녕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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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주민으로, 동양인을 착취해 부를 쌓은 집안인 '한'의 가족들이 엔젤타운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형성된 아주 작고 폐쇄적인 마을. 그리고 그 옆집에 가난하고, 영어가 서툴며 항상 마늘 냄새를 풍기는 '준'의 가족들이 이주해 온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부의 차이가 극명하기에 엔젤타운의 백인들은 '한'의 가족에게는 드러내지 못하는 동양인 혐오와 폭력성을 '준'의 가족들에게 더 강하게 배설한다. 그 와중에 '한'은 어느날 부터 '준'에게 빙의되어 그와 감각을 공유하게 되는데.



숨도 못 쉬고 읽었다는 추천사에 공감한다. 나 역시 이 두꺼운 책을 순식간에 읽어내려갔으니까. 


진짜 이렇게 집단 광기가 선명하게 그려진 작품은 처음 본다. 특히 다문화 혐오가 이렇게 입체적으로 쌓아올려진 글은. 450p 내내 정말로 시달리는 기분으로 읽었다.  지독히도 폭력적인 인종차별주의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같은 조선인을 착취해야했던 조선인의 상황. 조선인과 자신은 다르다고 선을 긋고, 백인들의 세계에 편입되려 아등바등 하지만 백인들의 눈에는 조금 더 말 잘 듣는 조선인일 뿐. 

아직 어린 '한'은 분명 이 구조가 이상하다는 걸 안다. '준'을 별로 괴롭히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정말로 이 미친 사이코 유사 크리스천 컨츄리에서 어린 아이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있겠는가. '한'의 수동성도, 안쓰러움이 짜증과 분노로 변하는 과정이 정말 이해가 가긴 해. 근데 그러면 안돼... 하지만 나라고 다를 것 같지도 않아...


언뜻 보면 기독교와 한국 무속신앙의 대립이지만, 원주민과 이주민의 대립이기도 하며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을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폭력성과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타인에게 지독하게 폐쇄적인 태도가 집단적으로 발현될 경우 혐오는 증오로 바뀌기 쉽고, 막을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도. 

(저 백인 중 누구 하나 다른 이들을 한 번만이라도 곧게 바라봤다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아니야...그래도 이 마을 사람들이면 그 백인도 싸잡아서 같이 불링할거 같음.)


절정을 향해 극을 치달으며 부풀어가는 백인들의 동양인 혐오를 바라보며 독자는 이 쯤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은 뭐, 다른가. 폭염에 한국인은 쉬고 베트남 노동자만 밖으로 내보내서 일 시키다가 죽었다는게 바로 이번 여름이다. 뒤에 작가와의 대담에서도 언급되듯 외국인 범죄가 일어나면 일단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본다. 어쩌면 한국은 거대한 엔젤타운이 되기 직전의 단계일지도.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은 사회실험이자 경고성 예언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하는 세계를 여행하게 하면서 자연스레 의식도 못한채 밟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지적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은 소설이라면, 『제』는 충실하게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 왜 계속 스티븐 킹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것 같다. 이 미친 초자연 코스믹 호러 대서사맛이 분명 그의 것과 닮아있음.

++ 오컬트 월드래서 일반적인 공포 호러 소설을 생각한다면 궤가 좀 다르겠지만, 이 역시 돌아버린 호러 스토리임.

+++ 주제에 엔젤타운 인것도 웃김.

++++ 아니 근데 민경이는요?! 읽으면서 너무 무서웠음. 이야기가 거의 끝나가는데 계속 클라이맥스를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감. 이야기가 거의 끝나는 시점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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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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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

<관통>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된 것

<통> 담아냄으로서 (桶) 연결되는 (通) 아픔(痛)들 


우리는 많은 <관>으로 삶을 지탱한다. / p.10


이 책은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가 손을 잡고 사회·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을 찾아가 시간을 넘어 개인을 그리고 우리를 관통하는 것들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런 생각을 해 본적 없는가, 내가 딛은 발 아래 축적된 역사들에 대해. 같은 땅을 밟으며 살았던 누군가의 삶에 대해. 두 명의 저자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관내>를 여행하며 그 공간 안에서 사유하고 글을 쓴다. 인천 성냥 박물관에서 일했던 어린 여공들이 딛고 선 바닥, 미군 부대 앞 성매매 여성들의 슬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스러져간 곳 그리고 안산과 광주, 이태원 등으로. 시간은 흘러도 발 밑에 고통을 수반한 역사는 남아 숨 죽여 웅크리고 있고 저자들은 직접 그 곳으로 걸어가 조심스러운 통(通·痛)을 감각한다. 말 그대로 정말 시공을 넘는 관내 여행자.


발 밑의 시간에, 과거의 사람들에게 빚을 진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공간에 떠다니는 아픔을 잡아채 기록한 편지. 서로의 슬픔을 묻는 안부란 이토록 먹먹하고 귀한 것이다.


나의 작은 투쟁은 이런 것이다.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공부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하기. 진실을 가려내는 눈을 기르기. 특정 집단이 시간을 끌며 대중의 망각을 유도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끝끝내 증명하기. 계속 말하기. 계속 쓰기. 작든 크든 계속 투쟁할 수 있는 위로와 에너지를 얻으러 여기저기 다니기.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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