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적대적인 민족끼리 문화 유산을 파괴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을 파괴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탈레반이라고 하면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정당으로 지독한 강경파 무슬림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마 그런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일 것이다. 샘물 교회 사람들을 납치해다가 돈을 요구했던 것이나 멀쩡히 축구장이 있는데도 국민들에게 축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거나 여자를 동물보다 못하게 취급하기도 했던 것을 볼 때, 상식 이하의 인간들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국제 여론이 아무리 반대를 했어도 그들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면 무작정 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결국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고 우리는 그 장면을 생생히 영상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일명 문화 청소라고 불리는 이 일은,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서 꾸준히 진행되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상식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인간이라는 종족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일들 뿐이다. 2002 월드컵 알게 되어 우리가 어려웠던 한국전쟁 때 지원군을 보내주었던 '형제의 나라'라고 좋은 인상만을 가지고 있었던 터키부터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 문화 청소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만 봐도 정말 끔찍하다. 과연 우리에게 사람을 향한 긍휼과 생명에 대한 애정이 있는가 묻고 싶다. 서유럽 측이 터키를 유럽연합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무척 공들이고 있는 터라,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에 대한 인종 청소와 문화 청소는 아마도 은근슬쩍 넘어가버리고 말 가능성이 크다. 


1914~1918년 사이에 터키는 아르메니아들을 고문, 집단 학살하고 강간, 성노예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교회를 폭격해 그들이 살았던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조처했다. 그렇게 희생당한 숫자가 대략 30만 명에 달하는데 그렇게 희생당한 아르메니아들을 두고 이렇다할 해명을 하지 않는다. 과거에 그런 사건이 있음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까지도 음흉하게 뭉게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1974년에는 겨우 조사하게 된 건축상의 피해를 보니 900여 곳의 교회 중에서 197군데의 교회만 살아남아 겨우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내가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 사건이 과거 어느 한 순간에 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지금은 그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기꺼이 보상을 해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아르메니아인들을 증오하고 그들이 터키 땅에서 살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말살해버리기 위해 인종 청소해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 때문이다. 민족 간에 미움이 생긱고 왠지 모를 편견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을 일본에게 당한 것이 있는 한국이 왜 모르겠냐마는, 그렇다고 그들이 그들만의 영토에서 잘 먹고 잘 살길 인정하고 선대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에 가득찬 감정으로 대한다는 것이 정말 모를 일이다. 인간이 이렇게나 악했다니,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느낄 때마다 충격적이다. 민족의 99.8%가 이슬람인인 터키인들이 아르메니아인들을 싫어했던 이유 중에는 4세기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사실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탈을 쓰고 악마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슬람교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짧은 소견으로는, 한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를 핍박하고 탄압하는 것은 그 종교가 잘못되었거나 그 종교의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현재까지도 터키 땅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건축물들이 방치되어 버려지고 있고 어느 누구도 그들의 문화 유산에 신경쓰지 않는다. 국제적인 여론에 못 이겨 아르메니아 나라의 돈으로 반 호수의 악타마르 섬에 있는 유명한 아르메니아 교회 한 곳만 겨우 복구되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사람들이 인종 청소를 할 때, 단지 사람들만 강제 이주시키거나 죽이거나 하지 않고 건축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 건축물이 갖는 상징성이나 건물이 갖는 영원성에 있을 것이다. 제대로 보수, 유지만 해주면 인간의 유한한 생명보다 훨씬 무한한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물체'이자 '지표'이기 때문에 어떤 민족이 그 곳에서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보스니아인들이 오래 전부터 살아왔던 사라예보에서는 오직 세르비아인들만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국립도서관이나 국립박물관을 폭파해서 보스니아인들의 수많은 장서와 역사를 파괴해버리기까지 했다. 문화 청소가 아주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 땅에서의 보스니아인들의 집단 기억을 말살하려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미리 세르비아의 장서와 유물들을 미리 빼돌린 정황이 포착되었기에 주저 없이 이렇게 증언할 수가 있다. 인간으로 저질러서는 안될 가장 최후의 보루가 바로 살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종족만이 같은 종족을 죽이기 바쁘다. 이렇게 평탄케 살고 있는 현재의 내 상태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일 같이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봤을 때, 어쩌면 이런 건축물이나 장서를 파괴하는 문화 청소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낄 수도 있지만 실은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박해는 그만 죽으면 끝이지만, 문화가 청소되고 책이 파괴되면 그 나라가, 그 민족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리니, 그 영향력이 무척이나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최초로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위을 집중 조명한 책이 나온 만큼 우리는 세계시민으로서 어떤 곳에 분쟁이 일어났는지를 보고 그 박해받는 문화를 위하는 마음으로 국제시민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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