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 - 인상파 화가들의진솔한 한 기록
수 로우 지음, 신윤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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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와 모네라고 하면 인상파 화가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화가들이다. 그런 그들이 만나서 무슨 일을 했으며 서로에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을까. 이 책은 그것을 탐구해본 책이다. 인상파화가들에 대한 숨겨진 뒷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비평가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조롱하듯 ‘인상파’라고 불렸던 그들만의 유파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떻게 형성하기 시작했는지 파악하기에는 제격이다. 외국에는 대단한 과학자들이 쓰다 버린 종이조각도 남겨두어 과학사를 연구할 때, 자료로 삼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마네, 모네, 르누아르, 모리조, 피사로, 드가, 세잔, 바지유, 카유보트, 베르트, 메리 커샛 등의 여러 화가들의 기록들을 면밀하게 조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아냈는지는 등장하지 않아 호기심이 일지만, 일단 아주 자세한 내막들 - 예를 들면, 베르트의 어머니가 마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생각들, 마네의 아내인 쉬잔은 베르트에 대해서 항상 호의적이었으나 베르트는 항상 그녀에 대해 험담을 했다는 사실들 - 까지도 파악해서 정리해둔 것을 보면 그 섬세함에 대해 놀라게 된다.  

 

어떻게 그런 사실까지도 알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 내 성향에는 더 맞지만, 일단 이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당시 프랑스 미술계는 살롱전에서 입상한 작가의 작품만 대량 거래되고, 그런 화가들만 전업 화가로 나설 수 있을 만큼 소규모 개인거래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그 살롱전에서는 과거의 대가들의 회화양식을 그대로 답습한 작품만을 입상시켰다. 신흥 중산층이 부상하여 그들 스스로의 교양을 드러낼 회화가 많이 필요했던 시기였기에 그런 대가의 양식을 답습한 작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던 때였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 전반적으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상승해서 대중들에게서도 그림을 감상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싹트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전업 화가의 입장으로선 매번 후원자을 찾아야 할 입장이니, 잘 팔리지 않고 오히려 혹평을 듣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그 때만큼 운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나중에는 영국 미술시장과 미국 미술시장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영국에서는 주춤하지만 새로운 유형을 즐기는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 그것도 10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일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인상파’라는 이름을 가졌던 것은 아니란 사실은 대부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이 인상파 화가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한 대상이 같은 색감으로 파악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받았던 인상대로 색감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 사람들에게 그리다 만 그림이거나 혼란스러운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원래 천재는 외로운 법이다.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과거의 양식만 답습할 때는 이미 지났는데 대중들은 아직도 그 수준에서만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대가들과는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이 생존해있을 때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다소 위안은 되지만, 평생에 걸쳐 모욕을 당하는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로서는 치명적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처음 그들이 혹평을 들었던 것은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이 낙선되면서부터였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낙선전을 개최하여 후원자를 얻고 작품도 팔 궁리를 했지만 몇 번에 걸쳐 개최했지만 매번 조롱거리가 될 뿐이었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구심점에 있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은 사람들에게 경악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부유하고 귀족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마네는 그림으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으로서 한량기질이 다분히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가 낙선전에 절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상주의 화가들의 행동은 그가 주도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것은 그의 매력 때문이라기보단 그의 놀라운 표현기법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항상 도발적인 주제로 사람들을 경악시키면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네와 연극 공연의 뒷 모습이나 관람하러 온 사람들에 열광했던 드가,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야외에서의 무도회와 같은 평화로운 그림을 그리길 좋아했던 르누아르, 풍경화에 목숨을 걸었던 모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성적인 세잔, 보트 전문가로서 나무의 질감을 누구보다도 잘 표현해내는 카유보트, 감각적이지만 흐릿한 인상으로 풍경을 표현해내는 피사로 등 각기 개성이 다 다르지만 단 하나 자신이 느낀대로, 정해진 틀 없이 표현한다는 점에서 일치된 그들의 우정이 놀랍고 애틋하다. 꼭 험상궂거나 못될 것만 같은 사람들 하나 하나가 생활비가 없을 때 보조해주기도 하고 그림을 서로 사주기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우정을 나누었다. 눈치가 볼일 법도 한데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예술에 대한 정신인 듯 당당히 돈을 부쳐달라는 편지가 여기저기서 오고갔다. 하긴 화가들은 일 년에 얼마만큼의 후원을 받지 못한다면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으니 그런 철가면이라도 없다면 문제가 될 듯 싶다.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동료 몇 사람은 잃게도 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열악해진 주머니 사정 때문에 살롱전에는 출품하지 않고 낙선전에만 출품하자는 의리를 저버리고 개별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에 아내와 자식을 부양해야 할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다가 대단한 선견지명이 있는 개인 거래상 뒤랑 뤼엘을 만나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큰 도움을 받았다. 당시에 있어서는 혹평이란 혹평은 있는대로 받았던 작품들인데도 어느 정도 예술품에 대한 조예가 있던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큰 돈을 주어가며 대량으로 사두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가 미술 시장을 뚫지 않았더라면 파산했겠지만 그가 있었기에 대부분의 화가들이 끊임없이 격려를 받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성공을 한 것은 61세였는데,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60세에 죽었다면 엄청난 보물들에 둘러싸여 빚을 떠안고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한 행동은 아찔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고 끝내 승리할 수 있었던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그 덕분에 인상파 화가들은 말년에 돈 걱정 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위대한 예술가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듯 싶다. 인상파 화가들에게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나 기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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