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1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27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분방하게 일생을 불꽃같이 살다간 조르주 상드를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몰랐다. 소개를 보니 유명한 19세기의 작가였다. 여섯 살 연하인 시인 뮈세,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와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베르와의 우정으로 유명했으며 정열의 화신으로도 사랑의 여신으로도 이름을 날린 여성이었다. 한 마디로 끼를 참지 못하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다가 간 문필가였는데, 그녀가 남긴 편지를 책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총 72통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조르주 상드가 쓴 편지는 무척 많겠지만 발굴된 편지로는 총 26권 1만 8000통 정도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508편만 뽑아서 우리나라에서는 총 6권으로 「지식을 만드는 지식」에서 선을 보인다. 이 책은 그 중 첫 번째 권이다. 그 방대한 분량에 서간문학의 최고봉이라고 부른다는 상드의 편지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방대함과 다양성과 복잡성이라는 것과, 둘째, 솔직함과 진실성과, 셋째, 지속성이 그것이다. 실제로 문외한인 내가 그녀의 편지를 봐도 놀라울 정도로 격정적인 표현과 그 편지를 쓸 당시의 상드의 표정이나 어투가 상상될 정도로 생생한 감정의 솔직함이 듬뿍 담겨 있다. 이런 끼가 있는 사람이 보호자가 급히 필요한 시점에 마침 나타나 준 카지미르 뒤드방과 결혼을 했으니, 어마나 그 결혼생활이 무미건조할지 상상이 간다. 1권에 담긴 72통 중에서 가장 압권인 내용은 결혼을 하고 첫째를 낳았을 시점에서도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그에 대해 남편에게 들켜 집을 나간 남편에게 고백을 하는 편지 내용이다. 깊은 사랑이었지만 순수하게 정신적인 사랑이었던 오렐리앙 드 세즈와는 깊은 공감대를 가지게 되고 같은 감성을 가진 인간임을 느껴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고백서 같은 편지는 보통의 강심장을 가지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편지인데, 그런 편지를 쓰는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상드를 설명할 수 있겠다. 편지에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면서 남편더러 당신은 편지도 안 써주지 않았느냐, 당신과는 통하는 것도 없고 그와의 대화 수준도 낮고 그는 책도 안 읽는다고 타박을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면 절대로 외간 남자에게 눈을 돌려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물론 그 당시에 어쩔 수 없어서 결혼을 했다지만, 자신과 취미나 감성이 맞는지조차 확인을 안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남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가. 만약 입장을 바꿔서 상드의 취미가 고상하지 못하고 문학에 대해서 알지도 못한다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남편의 편지를 받는다면 얼마나 상처를 받겠나. 정말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딱 맞다.

 

어쨌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상드는 그렇게 남편에게 둘의 사랑을 인정받고자 했다. 절대로 그 몰래 둘이 만나지 않겠으며, 자신은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둘의 편지만 허락해주면 편지 내용까지도 허락받고 보내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극도로 평범한 상식을 가진 나로선 그녀의 행동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둔하고 수준 낮은 취향을 가진 그녀의 남편이 동의해주리라고 생각했던 걸까. 편지로서도 충분히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하는 것을 보니 실제 말로서는 얼머나 날렸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니 그 남편이 전전긍긍하며 그녀의 바람을 다 들어줬을 것 같단 의심을 지우지 못하겠다. 뒤에 나온 연보를 보니 그 이후에도 오렐리앙을 가끔씩 만나게 되는 것을 보니 둘의 사랑은 계속 유지가 된 것 같은데 편지 속에는 둘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편집했을 때 빼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책의 소개에도 나왔듯이, 순수하게 정신적으로만 사랑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남편에게까지 허락받은 편지로만 이어지는 사랑... 남편이 있는데 그런 남자 친구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나는 도통 모르겠지만 그런 관계를 인정해주는 그 남편이 더 모를 일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당연히 나를 완전히 이해해주고 같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아닌 남자를 남편으로 삼아선 안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자로서 삶 자체가 부자유스러운 19세기의 고질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20세기만 태어났어도 그런 잘못된 남편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보고 문학가로서 행복하지만 이름이 나지는 않는 인생을 살았을지도. 결국은 남편과 이혼하는 것으로 나오던데, 그 이후부터는 그녀에겐 거칠 것이 없어졌으니 진짜 결혼을 잘못했다 싶다. 정신적으로 사랑을 나눈 오렐리앙과의 관계도 어쩐지 아쉽고 말이다.

 

내게 사랑은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별개가 아니다.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건전한 여성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그것을 나눌 수가 있을까. 둔하고 말도 통하지 않고 그래서 나눌 대화가 없는 남자랑 어떻게 한 이불 덮고 살겠으며, 말도 통하고 나를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랑 어찌 한 몸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쩐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재미 없어졌다. 요즘 사람들이 금방 사랑을 했다가 금방 이별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렇게 사랑 자체를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은 속된 인간이 가장 신과 닮아갈 수 있는 경이로운 경험이자 놀라운 감정이다. 사랑을 하면 오래 참을 수 있고 온유해지며 제 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그에게 시기, 질투하지 않으며 교만할 수 없으며 무례하지 않으며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보단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화나지 않고 악한 것보다는 선한 것을 생각하길 좋아하며 진리와 함께 하게 된다. 만약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데, 여기 나온 것과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면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지 절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르주 상드는 누굴 사랑했을까. 그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누군가와 사랑을 했는데 그것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면 그것은 절대로 정상적인 유형은 아니였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상드는 정상적인 사랑을 한 것은 아니겠다. 예전부터 문학가나 음악가나 화가 같은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도덕관념이라는 잣대를 아예 떼어버렸는지 항상 문란한 사생활로 유명하다. 지금은 연예계와 언론계로 확대되어 더이상 그런 계통에서 도덕적이길 기대하는 것이 신기한 일이 되어버렸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인 이상 지킬 것은 지켜야 맞다. 시대가 가고 세태가 달라져도 인간은 인간임을 버려서는 안 된다. 왠지 시대가 인간다움을 버리는 것이 더 멋지고 쿨한 것처럼 보이는 때가 되었지만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때가 아니라면 항상 도덕이란 잣대는 들이대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유명한 사람들에 대한 책에서도 이런 도덕관념에 대한 이야기는 꼭 뺀다. 혹 그들이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처럼, 아니면 비범한 사람들이니까 그런 것쯤은 양해해줘야 하는 것처럼.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우는 것이다.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를 버리는 것을 미화시켜서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멋진 작품을 썼을지라도 조르주 상드는 아이도 있는 어미였음에도 남편을 버리고 바람난 여편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성경에 보면 해 아래 새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누군가 아무리 좋은 것을 발명, 혹은 발견, 혹은 창작했어도 그것이 완전한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창작자가 인간인 이상 과거 어디에선가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말로, 인간의 유한함을 드러내준다. 그러니 얼마나 위대한 것을 만들었든 어떤 누구도 인간으로서 해야 할 것에서 면제받을 수도 없고, 그가 만들었던 그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이 꾼 꿈을 보지도 않고 해석해낼 수 있겠으며, 어떤 이가 외국의 감옥에 13년 동안 있다가 그 나라의 총리가 될 수 있겠는가. 또 어떤 이가 지혜롭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적으로 금은보화과 찬사를 받을 수 있겠으며, 숱한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겠는가. 과거에 이미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났으니 그 이후에 일어날 일 중에는 이보다 더 대단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자만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잣대로 판결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상드는 바람난 여인이었고, 그것 때문에 이혼하고 계속 문란한 짓을 계속 했다는 것만이 진실이니까 말이다. 이와 같이 탁 까놓고 말하면 사생활이 문란한 여자에 지나지 않지만, 모델일을 해주며 스스로도 그림을 그리거나 그저 화가들에게 영감만 주어 예술가들의 뮤즈로 이름난 여자들이 몇몇 알고 있다. 처음 봤을 땐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해 아래 새롭지 않은 일을 위해 자신의 평판을 문란하게 만든 그녀들이 조금은 불쌍하다 싶다.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미술책에 이름 하나 알려지지는 않을 수 있었어도 훨씬 인간적으로 숭고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다지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지만 어쨌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것 같아 신기했다. 편지를 그렇게나 많이 쓸 수도 있구나 싶어서... 솔직히 남의 사생활을 캐는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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