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관한 불변의 진리 - 조쉬 맥도웰의
조쉬 맥도웰 & 션 맥도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총 590페이지나 되는 책이라 이 책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씀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어려움이 없겠으나 신앙서적을 잘 읽지 않는 분들에게는 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의 어려움만 지나온다면 축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절대 눈을 뗄 수가 없다. 제목도 그렇고, 두께도 그렇고, 이런 책들은 왠지 좀 딱딱한 느낌을 준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 기우일 뿐이었다. 책의 처음부터가 느낌이 새로웠는데, 실제 사례가 우리 한가운데 던져져 그 저자들의 사례에서 내 경험과 관심사를 투영해볼 수가 있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잘 소개해도 그가 느낀 것을 완전히 다 경험할 수는 없지만, 그 상황에서 어떤 경험을 했을 것인지 추측도 가능해서 그것에서부터 내 경험을 추적해 들어갈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렇게 잔잔하게 설명하니까 그냥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으나 정말로 깜짝 놀랄 만큼 재미있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재미있을만큼 재미있다. 그래서 감사했고, 놀라웠다. 하나님에 관한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감사드린다. 여러 날을 두고 읽었는데, 읽으면서 감사와 경배를 드리기도 했고, 슬피 울며 가슴 아파하기도 했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기도 했던 아주 귀중한 체험을 준 책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에 대해서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셨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기쁨까지도 허락해주셨다. 그 중 가장 최근 나눈 것은 예수님에 대해 설명한 부분에 대해 교회 소모임에 모이는 사람들에게 전달해준 것이다. 예수님이 도덕선생님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도표로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위선자이거나 정신병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자신이 하나님이 아님을 모를 경우와 알 경우로도 또 나눠서 어떻게 되는지 그 추이를 설명해주셨는데, 모태신앙인 나로서는 당연히 예수님이 우리 구주이심이 의심되는 것이 의아해서 새롭게 보였던 부분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물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리고, 눈먼 자를 뜨게 하고, 병을 낫게 하는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사실이라면 내 인생이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성경이 신화이거나 전설,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실상 내가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행동은 그랬다. 정말로 우리는 그가 참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 한다.

 

오늘 나는 어려운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 때문에 이 책의 서평이 안 써질 만큼 내게는 좀 어려운 소리였다. 내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열정이 사실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고, 나누고 싶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다독여주고 싶다고 내심 생각했다고 속내를 드러낸 자리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성장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열정이 인간의 힘으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해요. 그것이 하나님께로 향한 열정이라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져서 말을 하지 않아도 하고 싶어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에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이 제자훈련반에서 하셨던 목사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 그 말에 덧대어서 내게 충고해준 말이었다. 목사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철하게 지식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했다. 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정이 어땠을까. 나는 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아팠고 마음이 상했다. 아픈 것은 나중이었고, 먼저는 속이 많이 상했다. 솔직히 내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다른 사람들이 날 열정적으로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것의 반의 반도 안되는 열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을, 그 아픈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 교회소모임의 장을 뽑는 자리에서 운좋게 붙었다는 것을 앞에 두고 마음이 많이 떨리고, 어마어마한 자리라는 깨달음이 오고부터는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이만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안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내가 아픈 소리를 해준 사람은, 아마도 이런 내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나는 그에게 자존심이 상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을 다 감당하고 싶다고 아무리 입으로만 중얼거려봤자 사실 나는 인간의 열정으로만 움직였던 것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 기분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믿었던 예수님은 예수님이 아닌가. 내가 믿었던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가.

 

조금씩 진리에 대해서 알아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교만하고 가증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다른 누구를 들 것도 없이 바로 내가 그렇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나를 의지했던 것이 분명하다. 사실 저번주 내내 밤낮이 바뀌었다. 남들 일어날 때 잠을 자고 남들 잘 때 할 것이 있다고 밤새 깨어있었으니 얼마나 몸이 망가졌겠는가.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마치 내 것처럼 사용하고 있었으니, 정말로는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였던 것이다. 아마도, 오늘 교회에서 그런 아픈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나는 또 그런 식으로 대충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오늘의 이 서평 속에서도 감사로 가득한 하나님의 은헤에 대해서만 썼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내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 만약 나를 사랑하시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내 인생에 나타나셔서 쓴소리를 하실 필요가 없으니까. 내가 지금 얼마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지,어떤 봉사를 하고 어떤 직책을 맡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사랑하시기에, 있는 그대로의 내 못난 모습까지도 다 사랑하시기에 내게 개입해주신 것으로 믿는다. 가끔씩은 내가 직책을 맡았기에 기도해야 하고, 말씀봐야 하고, 좀 더 신앙의 성숙된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깨우칠 때가 있었는데, 정말 주객이 전도된 이야기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내가 목장모임의 리더가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저 내가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길 바라는 마음이신 것이었음을 이 서평을 쓰면서야 겨우 깨달았다. 집에 돌아오고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 서평이 도저히 써지지를 않았기에 포기를 하려고 했는데, 쓴소리라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듯 하다. 책에 보면 조쉬가 아들 션이 야구 게임에서 질 때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쿠폰을 주라고 코치에게 맡긴 부분이 나온다. 게임이 질 때라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보여주었던 조쉬의 사랑에 무한한 놀라움을 느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이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의 탈을 쓰고 이 땅에 오신 구속의 사건은 전무후무한 센세이션이 아닌가.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를 정말 재미있게 정리해준 이 책은, 모태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을 특별히 만나지 못해 성경의 이야기가 왠지 아마득한 옛날이야기일 것만 같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모태신앙이었고, 사람들이 ‘첫사랑을 회복해야 한다’고 할 때의 ‘첫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나는 절대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단기 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조금 경험했고, 조금씩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죄의 문제에서 떠나가지 못하고 힘들어하지만, 매순간 하나님을 망각해버리는 오만한 짓을 버리고, 순간적으로 마음에 욱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는 못하고 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학습의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고 수업 시간에 장난하는 아이들에 대해 항상 어렵다. 예전에는 그냥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내 마음에서도 그 아이들을 포기해버리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가실 방법이 그 아이들을 섬기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와닿아 어려워진 것이다. 예전에도 쉽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그 쪽에서 나를 힘들게 하면, 나도 같이 힘들게 하거나 무시해버리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마음이 너무 어려운 것이다. 가끔 버럭대기도 하고, 내 마음 안에서 그 아이에게 ‘넌 아냐’라고 선을 긋기도 하는 나를 볼 때마다,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이제 근본부터 되돌아봐야겠다. 신앙서적도 좋고, 말씀도 좋고, 설교도 좋은데 아마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가 아닐까 싶다. 내 스스로가 하나님을 안다고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주춤거리는 것을 느낀다. 직책도 벗어버리고 어떤 좋은 말씀이든 서적이든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만, 오로지 하나님만 생각해야겠다.

 

이 책은 총 12가지의 불변의 진리를 소개하고 있다. 꼭 순서대로 볼 필요는 없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순서대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몇 번 더 반복해서 보라고 하시니까 그 시기에 맞게, 보고 싶은 대로,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대로 보면 좋겠다. 내가 감격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불변의 진리 첫번 째 하나님은 존재하신다]에서 (마지막 장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는 삶)이었다. 어릴 적 배우자를 생각할 때 내심 원했던 것이 있었다. 어떤 외적인 조건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내 아픔, 슬픔, 치부 등을 모두 이해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보여진 것과 보여지지 않은 것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특히 어릴 적 소심했다가 극적으로 변한 성격을 가진 나로서는 아직까지도 소심한 구석이 꽤 있었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 상처를 배우자만큼은 이해해주길 기대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고릿적에 했던 공상을 다시금 끄집어낸 이유는  (마지막 장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는 삶)을 볼 때 딱 그 공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인간이 신이길 기대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완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결단코 없다.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외쳤어야 했는데 그 당시, 스무 살 때는 그것을 몰랐다. 그러다 그 공상을 잊고 있다가 이제금 다시 생각이 난다. 진실로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모른다면, 어찌 죄 많은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 예전에 내가 방황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나를 자격이 없다고 배제해버렸다. 내가 경험한 신앙 문화에서는 살아있는 능력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실제로 그런 하나님을 소망하지도 않았고, 그저 말씀생활, 기도생활, 전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정죄하기에 바빴다. 결단코 행위로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지도 까맣게도 모르고서... 그랬으니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 왜 감격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인정하길 원하는 종교는, 아마도 기독교 외에는 없을 것이다. 제 힘으로도, 노력으로도, 열심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가르치는 종교는 결단코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무능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무능력함을 즐기고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만 가지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아프면 울고, 힘들면 울고, 어려워도 울고, 그저 하나님께만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아프다고, 힘들다고, 어렵다고 내가 다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거나, 그 자리에서 부정과 불평으로 도배를 하거나 험담을 한다고 해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자. 그저 우리를 하나님께 어울리는 형상으로 재창조하시는 과정 중에 처하게 하신 것이라고 믿고 맡기자. 실제로 내게 그런 시련이 왔을 때, 이 말씀이 기억났으면 좋겠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내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쓴소리를 했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는 사람이에요.”  희망이 생겨보이는가. 아까 마음이 상할 때는 왜 이 말이 기억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은,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시험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인정하니까 내가 했던 행동들이 보였다.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직책을 앞세우려고 했던 모습,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고 싶어했던 모습,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자만했던 모습... 아이고, 부끄럽다. 더 많겠지만, 이만 줄이겠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은 오늘 바로 그 시간에 그 말씀이 꼭 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