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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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에 달하는 백제의 역사는 가히 잃어버린 역사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지금의 한국의 역사와는 거의 동떨어진 것쯤으로 취급받고 있다. 우리와 가장 근접하게 여기는 조선의 역사도 사실 5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보다 200년이나 더 오래 지탱해온 백제의 역사를 그렇게나 하찮게 취급하는 것은 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역시 고대사에 속한 역사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 그 문헌이나 유물, 유적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자료들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생생하게 다큐멘터리로 밝혀진 그 백제 역사의 전모를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SBS와 대전방송이 야심차게 기획한 역사스페셜 다큐멘터리 덕분이다. 삼국시대라고 하면 호방하고 호전적인 기질이 대세인 고구려와 소박하고 서민적인 신라, 그리고 세련되고 화려한 문화를 가진 백제로 보통 생각해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떻게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삼국이 이렇게나 각양각색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까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전쟁을 하거나 교역을 했을 때, 과연 통역을 붙이지 않았을지, 영화 〈황산벌〉에서도 나왔듯이 그렇게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면서 서로 전쟁을 치렀을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2001년, 아키히토 천황이 자신의 어머니가 백제 직계 왕족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의 발언으로 일본 열도가 발칼 뒤집어졌지만 한국 사람들 중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만큼 일본과 한국, 즉 백제의 문화 중에는 닮은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하기사 어릴 적 멋모르고 봤던 역사책에서조차 일본의 목조반가사유상과 우리 백제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지 않은가. 교토의 고류우지(광륭사, 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 사진은 항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사진과 함께 따라다녔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봤을 때, 도금한 우리의 유물보다는 나무로 만든 일본의 유물이 훨씬 아름다웠지만 어쨌든 그 둘이 닮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 다음은 누가 누구에게 전수해주었는지를 살펴봐야한다. 그런데 이것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좀더 깊숙히 역사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백강 전투가 벌어졌던, 신라와 당 연합과 백제와 일본 연합이 벌인 동아시아 최대의 국제 해전이 벌어진 서기 663년 8월로 말이다. 흔히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몰아내고 통일신라를 이룩한 것으로 아는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고구려는 몰라도 일단 신라와 백제가 해전을 치렀다는 그 자명하고도 생소했던 사실을 말이다.

 

아, 맞다. 백제와 신라는 두 면을 바다에 인접해 있으니 해전을 안 했을리가 없다. 특히 백제의 연합군이 일본인 점을 감안했을 때 기필코 해전이 있었을 텐데, 신기한 것은 이 백강 전투 이후에 일본 내 백제 대 신라의 대립감정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백강전투로 인해 백제가 멸망해버렸는데 일본 안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인들의 신라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야 없었겠다. 그래서 이미 일본으로 이주해와서 세력을 장악한 백제인들이 신라인들을 현재 도쿄 중심지역인 동국으로 강제로 보내 무사 가문 겐지, 즉 원(源)이 동국의 정권을 잡았고, 신라인들이 강제 이주된 현재 교토 중심인 서국은 헤이시 가문, 즉 평(平)이 정권을 잡았다. 백제계인 서국은 헤이시 가문으로 왕조적인 문화를 가진 상업과 해군이 중심인 지역이었다면, 신라계인 동국은 겐지 가문으로 무인 문화를 가진 농업과 육군이 중심인 지역으로 뚜렷한 대립적인 특색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서로 적대적인 두 가문은 저 멀리 일본에서 백제와 신라로 대표되어 서로 끊임없는 다툼을 벌여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단노우라 전투에서 백제계 평(平)가의 여덟 살난 안덕천황이 수장되고, 평(平)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반도에서 끊어진 삶을 열도에서 다시 이어갈 정도로 생명력 있는 백제계 후손들은 구마모토 현 깊은 산속으로 피신해 자신들이 백제계의 후손인지도 모른 채 현재까지도 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또한 백제인들은 황금 유물이 대단한 민족이다. 솔직히 신라, 백제 하면 황금으로 된 유물 한, 두 개쯤은 기억이 날 만큼 황금 유물이 유명한 나라였는데 나는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생각도 못했다. 신라는 사슴뿔을 연상시킬 정도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금관’도 있고, 백제는 그 유명한 ‘금동대향로’가 발굴된 곳이니 그 당시 백제는 섬세하게 금을 다룰 줄 아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금도 금이지만, 철의 제조 기술은 대단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칠지도’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철 제련 기술과 금 제련 기술이 뛰어났던 우리 백제였다. 솔직히 고구려는 철이나 금에 관련된 유물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했으니,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벌써 그런 기술이 있었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조선업에 강하고 반도체에 강하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백제를 대백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 뿐만 아니라 백제의 종교면 종교, 의복이면 의복, 노래면 노래,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일본이 우리보다 고대문화는 뒤떨어져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증거가 이 책에 낱낱이 등장한다. 이래서 나는 우리의 고대사가 참 마음에 든다. 물론 과거의 영광에만 심취해 있다고 해서 무엇 하나 얻어지는 것은 없겠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불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주변에는 울화통 터져서 한국사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나도 고등학생 때는 그랬다. 점수 나오지 않은 탓을 그것에다가 돌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만 초등학교 교과과정에도 한국사가 빠진 것은 정말 말도 되지 않은 것 아닌가 한다. 요즘 아이들은 영어, 수학 공부한다고 책을 읽지도 않는 마당에, 교과서에서라도 봐야 하는데 이번 초등학교 교과서 개정 때 한국사가 빠졌단다. 이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 어른이 되니까 조금은 알겠다, 왜 내가 그 어렵고도 짜증나고 한스러운 치욕의 국사를 배워야 했었는지를. 힘이 약해 다른 나라의 꼬봉 노릇 했던 우리의 과거가 짜증난다고 배우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사실에 대해 곱씹는 사람이 없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겠는가. 자국의 역사를 소중히 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과거란 그 민족의 현재를 반영해주는 것이며, 현재가 없이는 미래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과거 없는 현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일 텐데, 어쩌면 이렇게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초등학교 때 우리 역사 전체를 다 아우르고, 중학생 때 또 전체를 아우르고, 또 고등학교 때 전체를 다 배우는 식으로 하지 말고 한 나라만 죽어라고 팠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때는 고대사만 체계적이고 다각도로 배우고, 중학교 때는 중세를, 고등학교 때는 근대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상황극도 하고 발표도 하고 전쟁사도 배우고 민속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옷도 지어 입고 음식도 만들어보면 다각적인 배움이 되지 않을까. 솔직히 서구 열강들은 이런 식으로 딱 한 부분만 배워서 다각적인 접근을 한다는데, 우린 너무 창의성이 없다. 가르치는 데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으니, 어디 배우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기대할 수나 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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