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 자유, 그 무한고독의 속삭임
송준 지음, 정형우 사진 / 동녘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으로 이 땅에 책이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예술이 뭐라고, 내 인생에 아무런 유익도 주지 않는 그런 예술 나부랭이에 한 평생을 바친 22인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던 것에, 이 책에게 감사한다. 이 책은 월간 <아트뷰>에 '바람의 묵시록'이라는 코너명으로 연재된 것을 모아 엮은 단행본이다. 내 평생 그런 월간지를 들여다볼 여유나 생길까. 이렇게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한 평생 살아도 이들 22인에 대해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책의 표지나 속지 디자인도 유려한 미를 뿜어내 아름답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숨쉬고 있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고백하건대 여기에 등장한 22인 예술가 중에서 가수 이상은과 소설가 이외수 말고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 태반이었고, 그나마 알고 있는 두 분도 그들의 근황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니 이 책이 없었다면 나는 완전히 무지한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포토에세이를 펴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기도 했다는 신미식 사진작가도 처음 뵐까 싶고, 소리꾼이라 이름하는 장사익 씨도 저번에 본 에세이집에서 한 번 뵌 것외엔 처음이니, 가요계를 휩쓸다못해 전셰계적으로 이름을 날린다는 그 분을 모르는 내가 같은 한국땅에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싶다.
 
여기 나온 22인이 그렇게 새로울 수 없이 새로운 내겐 처음부터 이 책은 별천지였다.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나와는 정말 다른 삶을 걸어오신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남아있는 천재 예술가의 이미지는 어느 영화에서 보여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기이하고도 천박해 보일 정도로 들끓는 열망을 가진 존재이다. 그저 일순간 참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것이 되지 않는 그들의 천재적인 모습은 일반인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영감과 열망을 가진 존재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삶 자체가 그러함을 알았다. 마냥 신기하게만 여겼던 그들의 모습이 치열한 삶의 흔적이라는 것을. 이제껏 살면서 소위 천재 예술가란 사람들의 폭발적인 열정과 영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선 그들의 삶은 그저 구경거리 그 이상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미처 그들을 알지 못한 내가 미련스러워보인다. 이상은 씨의 <공무도하가>도 듣고 싶고, 신미식 씨의 <여행과 사진에 미치다>도 읽고 싶고, 장사익의 <찔레꽃>에 심취하거나 조갑녀의 7분 명품 춤에 흐느껴봤으면 좋겠다. 정말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사실 이름만 아는 이외수 씨의 책도 한 권도 보지 않았는데... 너무 무신경했던 걸까. 아니면 나만 봤던 것일까.
 
간혹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내 삶은 너무 기름기가 없었다. 무언가가 윤활유로 쳐줄 만한 그런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몇 달째 밤에 잠을 자지 못한 채로 어깨는 잔뜩 굳어가면서 그렇게 죽지 못해 연명하듯이 살아왔다. 그런데 그럴 때 느낀 것은 내가 너무 나에게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찰나의 번뜩임... 세상에는 나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고 아픈 것은 아닐 것인데, 어쩌면 나보다 더 힘겨운 하루를 끝내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하는 뒤늦은 깨우침... 다른 삶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고 이해해주고 공감을 느낄 만한 구석을 찾는다면 더 이상 삶이 팍팍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다 나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퍽퍽한 삶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멋진 삶에도 기웃거려가면서 나를 정비하는 중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이 내겐 한 줄기 바람과도 같았나 보다. 무더운 여름날 가끔씩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는 그런 청량한 바람... 두고두고 아껴보면서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내 인생에 하등 쓸모없어 보였던 예술은 아마도 이런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 살아갈 목적을 주는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저 먹고 사는 데는 예술이 필요없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엔 예술이 꼭 필요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