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그린 그림 -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
플로리안 하이네 지음, 최기득 옮김 / 예경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 : 관습을 뒤집고 전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화가들의 특별한 도전

 

내게 이 책은 아주 특별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단단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서문부터가 아주 특별하고 친절했기 때문이다. 이제껏 여러 권의 미술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작품은 아름다운 대로, 낯선 작품은 낯선 대로, 예쁘지 않은 작품은 예쁘지 않은 대로 그저 주어진 것만 봤을 뿐, 그것이 왜 명화로 칭송되는지 잘 모른 채로 읽기만 했었는데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의문을 다 풀어주었다. 물론 레오나드로 다 빈치의 「모나리자」처럼 몇몇 유명한 명화는 왜 명화로 칭송받는지 여러 권에 걸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대다수의 작품은 왜 지금까지 보여지고 있고 칭송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특히나 이 책을 보기 바로 전에 봤던 『뉴욕에서 꼭 봐야 할 100점의 명화』란 책에도 꼭 나왔던 조토의 작품은 그것이 어떤 상황을 그렸고, 작가가 누군지에 대해서만 명확하게 설명되었을 뿐 이 책처럼 표현법이나 그 이전의 시기와의 비교를 해주진 않아서 전미술사를 통틀어서 조토의 작품이 가지는 가치나 ‘미술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르조 바사리의 “조토에 의해 미술이 다시 태어났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명화가 왜 명화로 불리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13세기의 미술부터 논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원근법조차 제대로 사용되지 않은 평면적인 그림을 가지고 대단한 작품이라느니, 그 때부터 르네상스 예술이 시작되었다느니 하는 평가를 보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너무 미술이 재미있어졌다.

 

일단 먼저 말이 나온 조토의 그림을 보자. 조토의 『세속을 떠난 프란체스코』를 보면 21세기의 우리 눈에는 상당히 이상해보인다. 오래된 작품이라 색이 바랜 것은 차치하더라도 생기가 없고 현실을 똑같이 모방하지 못한 그림을 보면 갖다가 버리도 시원찮을 것인데, 이 작품은 동시대와 그 앞선 시기에 비해 상당히 파격적인 표현양식을 가지고 있기에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 문예 부흥기라고 불리는 르네상스의 예술을 연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당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정도이니 우리는 확실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예술적인 가치로써의 미술은 없어지고 오로지 신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서만 미술이 존재했기 때문에 자연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기보단 하나의 상징과 기호로써 표현되었다. 그래서 숲을 표현할 때는 나무 한 그루만 그려놓아도 되고 큰 바위는 산을 의미해서 현실을 닮은 사실적인 그림이 등장할 필요가 없어 중세 시대의 그림은 상당히 평면적이었고 원근법이란 기술은 필요조차 없었다. 그리고 신성을 드러내기 위해 각 성인들의 얼굴 뒤에 금빛으로 칠했기에 항상 교훈적인 의미만 전달하는 것이 그 이전 시대의 그림의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토는 이제껏 진행되어왔던 관행을 무시하고 자연과 인간의 형상에 대해 관찰한 것을 모아 그림을 그린 것이다. 얼굴에는 각기 표정을 담겨져 있고, 예전처럼 등장인물이 평행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고 자유스럽게 공간을 형성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제까지의 관행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조토는 진짜 천재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13세기의 미술부터 연구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고대시대에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던 화가들의 실력이 중세 때 들어와서 깡그리 사라졌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그저 사회에서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능력들이 자연스럽게 사장되었을 뿐. 그러나 우리가 중세 시대의 미술가들을 연구할 수가 없는 이유는 그 시대의 화가들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화가들은 그저 장인의 일부로만 받아들여졌을 뿐 화가 그 자체의 가치는 없었기에 누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의 자료로 남아있지 않다. 물론 그렇게 자료가 완전히 남아있지 않은 이유에는 서로마 제국의 몰락이 한 몫을 했을 테지만. 그래서 우리는 13세기의 작품 중 조토의 작품으로부터 르네상스를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중세까지만 해도 풍경은 하나의 배경일 뿐 그리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어, 주요 인물을 그린 후 상상을 동원해 공간을 채워넣는 시도만이 이루어졌다. 그랬기에 사실적인 배경을 보고 그렸다기 보다는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 대다수였다. 그러다가 콘라드 비츠의 「기적의 고기잡이」란 그림에서 그나마 배경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전달해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점점 배경의 중요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최초의 순수한 풍경화는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레겐스부르크 근처의 도나우 계곡 풍경」이다. 그 때부터 다른 화가들도 영향을 받아 순전히 자연의 모습만 화폭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화가의 위치가 높아지면서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은 자화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아무래도 장인으로만 취급되던 화가의 위치에서 한 단계 도약했다고밖에는 볼 수가 없다. 조토도 그 시기에 일약 ‘스타’였던 것처럼 이제는 화가가 고위 관리직에도 몸담을 수 있을 정도가 되니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 중 가장 압권인 작품은 얀 반 에이크의 「자화상: 붉은 터번을 두른 남자」이다. 후에는 그의 붉은 터번는 그의 상징처럼 여겨져 에이크만 쓸 수 있을 정도로 에이크의 명성이 높아졌단다. 

 

이 외에도 성모 마리아가 중앙에서 빗겨난 최초의 그림이나 최초의 꿈 그림, 최초의 나체 그림 등 미술사상 최초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이 한 권의 책에 다 나와있다. 너무 귀중하면서도 재미있는 정보이다. 정말 이제라도 보길 잘했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소중한 책이다. 미술에 관해 관심은 있지만 잘은 모르는 사람이라면 한 가닥을 잡게 해줄 책일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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