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건져내랴 - 쉽게 풀어 쓴 로마서
조성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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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마서 1~8장을 강해하고 있다. 사실 강해서라고 하면 딱딱한 느낌이 처음 들기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특히 나 같은 신앙서적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저자 조성기의 편안한 문장들은 나 같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바울 서신 중의 최고의 역작이라는 로마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내가 이제껏 깨닫지 못해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게 했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성령이 충만한 은혜로운 삶, 하나님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로마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수년에 걸친 조성기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3년 동안의 목회 내용과 신앙공동체와의 고민 속에서 얻어냈던 소중한 그의 깨달음을 일상에 지치고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에게 성령이 충만한 은혜로운 삶, 축복하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안내한다. 읽기는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그 안의 진리를 명확히 설명하기란 항상 난해하게 느껴지는 로마서이기에,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유언처럼 쓴 그의 서신 중 백미이기에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꼭 읽기를 강권하게 된다. 읽고 나면 잔잔히 전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게 될 테니까.

 

로마서는 1장에서 8장까지와 9장부터 16장까지, 두 부분으로 나누어도 무방할 만큼 내용이 명확하게 나뉜다. 9장부터 16장까지는 바울의 조국인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 구체적인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 바울의 개인적인 전도 계획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1장에서 8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도리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로마서 강해서를 1장에서 8장까지만 다루었던 것이다. 이를 총 6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데 서론과 후기까지 붙어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처음 서론만 읽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로마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특별히 로마서를 묵상한다거나 강해서를 따로 챙겨보진 않았던 나였기에 서론에서 말하는 로마서의 특징만으로도 내 안의 약함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태신앙으로 살아오면서 특별한 이변을 겪지 않고 나름 축복을 받으며 잔잔한 인생을 영위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나에 대한 기대를 접었었다. 한없이 훌륭하게만 보이던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인생에는 이런 영화로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단정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짓을 했던 것조차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로마서가 어거스틴과 마틴 루터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그와 똑같은 일이 지금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저자의 말에 큰 도전을 받았다. 나도 달라질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감을 품고 읽을 수 있었다.

 

처음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에 대해서 조목조목 알려준다. 이 부분에선 자아인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자아인식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어떤 가문, 어떤 교육을 받은 자로 생각하지 않고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명확히 서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낮게 생각해왔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흔히 자기계발서에서 나오는 자존감에 대해서 똑같지만 생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못난이라고 생각하면 못난이가 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자신의 얼굴과 태도와 인생을 결정짓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이야기이지만, 이 부분을 읽을 땐 누군가 뒷통수를 치는 것처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이 부르신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감당하기엔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이 쏙쏙 떠오르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종속되기 마련인데, 정말 그렇다면 이왕 노예가 되는 것 하나님께 종 노릇하는 것이 수지맞는 일이 아닐런지.

 

2장에서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란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순 없지만 무언가로 인해 하나님을 알 수 있기에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무척 공감되었다. 나는 태어나면서 하나님을 믿도록 교육받았기에 불신자의 마음이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누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이상한 모양새를 많이 느낀다. 절대적인 주권자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부인하려고 하는 것 같이 말이다. 불신자 중에서도 선한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사람 속에 숨겨진 선한 양심이 바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다. 인간이 벌이는 모든 죄악들을 생각하면 인간에게선 도저히 그런 선함이 나오지 못할 것도 같은데, 세상은 오묘하게도 그렇게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어렵지만 묘하게 수긍이 되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은혜로웠던 것은 3장의 「당신의 의로움 속으로 데려가소서」편이었다. 마틴 루터가 로마서를 강의하면서 깨달았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나도 새롭게 깨달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껏 나를 괴롭히고 있던 죄책감이란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행위의 결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받기 때문에 행위 이전에 먼저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나서

그 다음 행위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 p. 208




 

그리스도인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선한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항상 실패하고, 왜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할까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의로운 행동을 하지 못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내가 의인이기에 의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내 의로운 행위로써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당연히 구원을 받았고 내가 의인이기에, 앞으로 지을 모든 죄도 또한 죄사함을 받았기에 앞으로 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면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오해를 또 할 수도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5장 「누가 나를 건저내랴」에서 규명해주셨다.

 

로마서는 논증적이기에 실제로 성경만 가지고 이해하려면 무척이나 힘이 든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재미있게 로마서를 읽었을 때도 한쪽에는 주석 성경,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현대인의 성경까지 구비를 한 상태에서 읽었다. 그랬더니 그나마 조금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깊이있는 이해는 역부족이었단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로마서가 편찬되게 된 것부터가 많은 죄악 속에서 더한 은혜를 느낄 수 있다는 말씀을 실현시켜 주신 하나님의 재치에 놀라면서 이 책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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