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빈리 일기
박용하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뜨겁고 위험한 시인의 끔찍하게 아름다운 날들의 기록

 

이 이야기는 딱 일년 동안의 기록이다. 어느 시골 마을에 귀농하러 갔다가 간악한 텃세에 못 이기고 돌아서서 다시 오빈리라는 마을에 일년동안 머물렀던 기간에 쓴 일기다. 하루에 한 줄만 쓰고 지나간 날도 있었고, 아예 쓰지 않고 넘어간 날도 있지만 대부분 꼬박꼬박 챙겨서 하루 일과를 남겼다. 먹었던 것, 놀았던 것, 일했던 것, 봤던 것, 들었던 것, 읽었던 것들을 갈무리해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저자 박용하 씨는 이미 알고 있던 분이 아니여서 글을 읽으면서 계속 그의 약력을 보게 됐다. 63년생에 강원일보 신춘문예와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던 분이라더라. 그저 단순한 사람일 거라곤 생각지 않은 내용의 글이었지만 시인인 줄은 몰랐다. 하긴 내 수준이 시인을 논할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11월, 12월 일기로 본 그에 대한 평가는 뭔가 어설픈 위험 같아 보였는데 봄이 되면서 텃밭에서의 경험이 조금씩은 그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바뀌게 했다. 자연과 소통하는 삶이 그에게 조그마한 숨통을 만들어주었겠지. 다만 처음에는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서울을 떠나 그렇게도 원했던 시골로 내려왔다면 뭔가 실질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농사일이 그의 계획이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하루는 너무 무능력하고 무기력해보이기만 했으니까. 처음 그에게서 받은 나의 인상은. 말로만 듣던, 혹은 1920~1930년대 소설속에서만 들어봤던 고뇌하는 지식인을 갑자기 눈 앞에서 보게 되었으니 내가 적응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차츰 눈에 익어가니, 그의 고뇌가, 그의 분노가 누구를 향해서인지 이제 조금은 갈피를 잡겠다.

 

그의 글을 보면서 삶의 일상적인 갈피 속에 무심히 끼워져있는 삶에 대한 관심과 한탄을 보고 부단히 인터넷검색창을 두들겨봤다.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사퇴논란에 대해서도, 미디어악법 통과에 대해서도 이미 한해 전의 이야기이지만, 바쁘다고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내 세계의 일부를 나는 이제서야 마음껏 욕심내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관심을 거둔 것은 마땅히 시민일라고 할 수 없을 터(내가 과연 시민인지, 노예인지는 부차적으로 밀어두고). 이제서라도 우리 정치가 얼마나 방향 없이 떠내려가고 있는지 알았다. 그것을 보고 야유하고 비판하고 범국민적인 지지를 통해 나라를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태생이 그렇기에 박용하 시인은 소리없이 분노하고 아파하며 이렇게 시골에서 글을 쓴다.

 

하긴, 너무 분노가 치솟아 글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처해서 문제이지만. 내가 머릿속에 쓰레기만 집어넣고 있는 사이에 세상은 한 번 죽었고, 또 죽음으로 치솟아 가는구나. 그의 글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노엄 촘스키나 아즈지 네신이나 김규항의 글을 인용하는 것만 봐도 조금은 이 상황을,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시인은 뜨거운 감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참혹한 상황을 두고 감정을 추슬릴 수 없지만,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상화을 냉철하게 보는데에 도움이 되겠다. 이 글은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시골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이 아니라 치열하게 이 나라를 걱정하는 한 뜨거운 감성을 지닌 사람의 냉정한 고백이 아닐까 싶다. 참, 고마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