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 있다 -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전범석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결코 끝나지 않을 기나긴 싸움 그리고 기적에 관하여...

 

신경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자부하던 한 의사가 쓰러져 전신마비인 상태로 재활한 과정을 엮은 9개월 간의 기록을 책으로 냈다. 그 책의 주인공은 바로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 남한산에 등산하러 갔다가 정상에 다 와서 아무 이유도 없이 통나무가 넘어가듯이 쓰러져버린 그는 의식은 멀쩡하고 말도 할 순 있지만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엄지발가락만 조금 움직일 뿐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상태로 평생을 갈 수도 있었던 상태였는데,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합병증을 예방하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재활훈련을 통해서 조금씩 어려움을 이겨내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간병인이나 동생에 받아적으라고 해서 정리해둔 책이란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로 평생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감해보고자 했던 것일까. 하여간 그는 그렇게 이겨냈다.

 

사실은 그가 그렇게 쓰러진 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교통사고가 났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전신마비가 온 것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바위를 헛딛어서 그런 것도 아닌 정상에 아무 것도 걸릴 것이 없는 상황에서 픽 하고 쓰러져버린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게 주어진 상황을 감내한다. 자신이 원래 혈압이 조금 낮은데다가 평소보다 땀도 많이 흘린 상태이고, 가방의 무게를 좀 무겁게 해서 가지고 다녔다고 나름 상황정리를 끝냈다. 그러나 어쨌거나 기적은 기적이다. 넘어질 때 앞니로 돌멩이를 들이받아 넘어질 때 머리부터 충격이 가해지지도 않았고, 쓰러진 곳이 산 정상이어서 헬기를 띄워 금방 구조할 수 있었던 데다가, 환자 자신이 신경과에 대해 박식하게 알기 때문에 미리부터 조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 목을 잘못 움직이게 되면 평생을 전신마비로 살아야 하는데, 그 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주지시켜서 들 것에 실을 때도, 엎어진 것을 돌릴 때도 조심하게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가 의식이 깨어있어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이 가장 기적 같은 일이겠구나!

 

그런 과정을 기록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자신의 역사고 경험이지만 기록해놓지 않으면 안개처럼 사라져버리고 말 것임에, 그는 기록을 시작한다. 전신마비는 스스로 밥을 먹을 수도, 세수를 할 수도, 소변을 받아낼 수도 없다. 게다가 자율신경계가 고장이 나서 누우면 혈압이 높아지고, 서면 혈압이 내려가 졸도할 위험조차 있으니 완전히 진퇴양난이다. 그런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일반인이 겪었다면 망연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였기에, 이런 사고는 재활훈련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을 따름이다. 처음에는 배 위에 놓인 손에 공이나 봉을 잡아보는 훈련과 팔로 미는 훈련 등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스스로 앉고, 일어서고, 걷고, 체조까지 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하고 6개월이 지났으면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봐야 한다. 약간씩 어눌하고 부정확한 그런 모습을. 하지만 머리는 멀쩡하니, 대학으로 복귀하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아이들도 가르치고, 환자도 치료하고, 책도 내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처음엔 퇴원을 하는 것에 공포감을 느꼈지만, 차차 마음을 바꿔서 아직까지도 오라고 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생활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을까. 욥도 아픈 다음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자녀나 아내가 아닌 자신에게 그 병마를 오게 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그마저도 감사하니까.

 

추천하는 글에 보면 전 교수의 지기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이왕재 교수의 증언이 있다. 전 교수가 얼마만큼이나 비상하고 얼마만큼이나 진지하고 단단한 사람인지를. 그런 그였기에 인간의 최대 위기 앞에서조차 그렇게 당당하게 살 용기를 얻었을지 모른다. 특별해보이진 않더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이룬다면 누구나 그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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