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ing, Living, Loving - 중국에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한 그녀의 열정어린 러브레터
김은정 지음 / 앨리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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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까?
 

이 의문은 약 2년 반 동안 서평을 쓰게 되면서 매일 하게 된 난감한 고민이다. 세상은 넓고, 읽은 책은 많다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책이 내 눈과 내 손과 내 가슴을 두드리고 갔는데, 딱 이거다 하고 범주에 넣기가 묘한 책은 항상 난감하다. 그나마 이 책은 처음엔 "인생기록"이라고 제멋대로 명명했다가 참 단순하게 "에세이"로 금방 낙찰할 수 있었던 고마운 책이다. 패션을 사랑해 십여 년 간 패션 분야에 정신없이 열정을 쏟아놓았던 그녀가 남편의 발령 덕분에 인생을 즐길 여유를 가졌다. 그것도 바로 중국의 경제특구 선전에서. 단순히 생각해봐도 자신의 일을 금방 놓고 떠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녀의 결정은 용감하고도 아름다워보였다. 가족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남편의 일을 위해 새롭고 낯선 중국이란 나라를 가슴에 품다니... 그나마 그녀는 어린시절을  베트남, 스위스, 프랑스에서 보냈고 그녀의 남편은 일본, 홍콩, 스리랑카, 미국에서 지내보았던 경험이 선전에서의 새출발을 좀더 쉽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생각은 해본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른 쪽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다른 나라를 경험했던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어떻게 만나 알콩달콩 사랑을 이어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그렇게 초등학생인 아들 영기와 월마트 차이나 개발상무인 남편을 따라 선전으로 가서의 인생이 시작된 이야기를 아주 꼼꼼하게 풀어내주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목차를 꼭 보는데 그 목차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예 한국을 뜨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두려움과 정신없음, 준비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고(「Leaving」), 그 다음에는 선전에서의 첫 인상과 중국어를 배우는 과정들, 남편과 아들 영기의 적응기와 더불어 거기에서 만난 친구들과 집 꾸미기 등이 나오고(「Living」), 마지막에는 중국 선전을 만나면서 달라졌던 습관들, 중국에 가볼만한 여행지와 먹을거리들이 소개된다(「Loving」). 이러니 415페이지나 되는 분량에 필요한 얘기가 빡빡하게 채워져 있을 수 밖에. 이 안에는 정말 잡다하고도 소소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집 꾸미기에서부터 중국어 정복기까지, 음식이야기에서부터 여행갈 명소나 지역까지도 세세하게 등장하고 있으니 여행기가 읽고 싶거나 중국어 공부기를 보고 싶다면 그 부분만 펼쳐서 봐도 참 유용할 것이다. 사실 선전에 여행하는데 이 책을 가져갈 필요까지는 없다. 너무 무겁기도 하거니와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는 전체에서 1/3도 안 되니~. 그러니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어딘가 낯선 곳을 여행하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들면 딱 일듯 싶다.

 

그녀는 분명 패션업계에 종사했던 사람이다. 본인의 입으로도 그랬듯이, 패션업계에서 나와있으니 당연히 패션과는 멀어질 수 밖에는 없지만 그녀 안에 살아있는 미적인 감각은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다. 그랬기에 선전이라는 삭막한 도시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그녀가 아직 중국어를 정복하기도 전에 아티스트 저우웨이를 만난 것 때문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거장의 작품전이 시도때도 없이 열릴 정도로 문화적으로 큰 도시이지만, 아직 경제만 발전했지 문화적인 성장은 턱없이 더딘 선전에서 저우웨이라는 아티스트를 만난 것은 정말 횡재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이렇게 극찬을 하는 것은 그의 그림이 내 마음도 울려서라고나 할까. 연한 파스텔빛 상공을 나는 학생이나 인민군, 노동자, 정치인들의 귀여운 그림이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게 만든다. 보물 같은 아티스트를 발견한 경험이 선전에 정을 붙이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는 그의 작품을 사기도 했다고 하는데, 여러모로 행복한 시간이었음에 틀림 없다. 그렇게나 아끼던 패션과는 멀어지고 있지만 집을 안정감있게 꾸미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이 40대에 들어선 그녀에겐 또다른 도약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젠 선전이란 곳이 어딘지조차 몰랐던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약간 소개를 해보자. 원래 광둥성 남부 연해의 깡어촌이었던 선전은 1980년 덩샤오핑에 의해 경제특구로 선택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도시다. 아직 20년 정도밖에 안되니 도시에 아직은 깊이도 없고 운치도 없지만 야심차게 계획되었던 탓에 아름다운 유럽스타일의 집도 많고, 녹림과 건물이 균등하게 분포가 되어 있다. 처음 경제특구로 지정된 선전에 가장 먼저 진출한 이들은 영국과 미국인들이라 아직까지도 선전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중국 같지 않은 중국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외국의 자본과 선진 기술을 도입하고 세금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국제적 수준의 투자 환경을 조성한 중국 제1의 경제특구 선전은 자본주의적인 색채가 두드러지는데, 그런 이유로 남한 사람도 선전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수단으로 가든 1시간 안에 홍콩을 갈 수 있다는 것도 선전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요소이다. 선전에 거주하면서 아이들 학교를 홍콩으로 보내는 사람도 있고, 홍콩에서 선전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중국 본토 부자들이 쇼핑하러 홍콩에 가는 등 선전과 홍콩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 도시들이다. 선전에서 가봐야 할 명소는 상당히 많다. 이 책에 나온 것이 반만 사실이여도 관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먼저 【금수중화】는 베이징의 만리장성, 러산의 대불, 티베트의 포탈라궁, 시안의 병마용 등의 중국을 대표하는 명승고적을 미니어처로 만들어놓은 곳이란다. 정말 정교하고 대단하다니, 정말 보고 싶을 뿐이다. 【중국민속문화촌】은 중국 안에 있는 55개의 소수민족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놓은 곳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선 꼭 가야할 곳이다. 【세계의 창】은 세계 각국의 미니어처들을 모아놓은 곳인데, 상상 외로 흡족함을 느낄 수 있다니 꼭 가보고 싶다. 각국의 요리를 접할 수 있는 【해상세계】는 주말마다 가서 밥도 먹고, 편리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포트로피노】는 호주 건축가 피터 드워르젠이 만든 테라코타 톤의 빌라풍 아파트단지다. 중국이라는 것을 잊게 하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니, 한 번쯤 가볼만 한 일이다.

 

갑작스레 발전하는 곳이지만, 무질서하고 덤벙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지향하면서 성장하려는 선전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꼭 내가 가서 살아본 것처럼 말이다. 아직 나는 외국에 나가 사는 것을 그리 좋게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그녀의 일상기록을 보니까 외국도 가슴에 품으면 고국과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도시, 선전을 소개해준 그녀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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