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참을 들여다 보다 - 시인의 눈으로 본 그림 이야기
김형술 지음 / 사문난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시인의 눈으로 본 그림 이야기

 

사문난적에서 그림에세이가 나왔다. 이름하여 『그림, 한참을 들여다 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림을 '들여다' 보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 김형술 씨는 그림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느낀 지 상당히 오래되셨다고 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미술관 관람을 강권하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배우고 '지식'으로써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 본연의 모습을 오롯이 느끼신단다. 언제부터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강권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진실로 옳다고 하는 신념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무던히도 그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신념을 가지게 된 시인 김형술이 말하는 바를 한 번 따라가볼 필요가 있겠다.

 

상당한 시간 동안 그림을 들여다 보셨기에 그림이나 화가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은지 언제나 그림은 낯선 존재로만 남아있는 내게 조근조근 알려주셨다. 각각의 주제에 맞게 한 화가의 작품을 펼쳐놓으면서 그림과 이야기했던 것을 풀어놓고 마지막엔 그 화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약력을 알려주시는데, 나는 오히려 마지막에 나오는 약력에서보다 시인이 그림과 한 대화나 넋두리에서 보다 많은 것을 깨우쳤다. 그림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 아름답고 안정된 구조를 가진 그림만이 작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혹은 화가들이 가진 복잡한 생각을 다채로운 방법을 통해 세상을 드러내는 것, 바로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화가의 재능있음에 죽을 만큼 부러워하고, 왜 나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을까를 죽을 만치 고민하면서 켜켜이 쌓아올렸던 화가에 대한 환상과 경외심과 질투심이 그림과 나를 그렇게나 멀리 떨어지게 했다는 것을, 그래서 그림을 그림으로 만나보지 못하고 책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눈을 빌려서만이 그림을 볼 엄두를 내었던 것을 말이다. 그리고 보니 이제야 생각났다. 내가 중학교 이후엔 한 번도 미술관에 발걸음을 하지 못한, 아니 안한 이유를...

 

지독히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그림과 이야기하려고 시도를 하면 과연 그 대화가 잘된 건지, 나 혼자 딴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아닌지,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느낌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림은 '맞다', '틀리다'로 평가하는 객관식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풀어서 적는 주관식 문제와 비슷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서야 조금은 그림과 이야기할, 그림을 들여다 볼 엄두가 난다. 누군가에서 '틀렸다'고 평가될까봐 겁이 났던 그 맘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림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림에세이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만큼 아주 편안하게 접근해본 적은 없는 듯 싶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 그저 그림을 들여다 보라는 것 뿐이니까.

 

이 책을 보면서 또 하나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회화만이 그림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또다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이 사진은 얀 사우덱(1935~)의 「삶」과 「헤이 조」이다. 체코의 사진작가인 얀 사우덱은 근대사의 격동기에 항상 피지배국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하고 성장했던 경험에 근거해 거의 포르노그래피에 가깝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치부를 드러낸 인간의 몸을 주제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내가 찾은 사진 중에서도 거리낌없는 모습이 있는 사진도 있었는데, 내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은 바로 1966년 작품인 「삶」이었다. 흑백으로 찍은,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갓 태어난 아기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모습은 언약함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나치게 거리낌 없는 사진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데, 그의 정신셰계를 완벽히 이해할 순 없지만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연의 모습을 사진을 담으려다 보니까 그런 오해를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생각을 해본다. 새로운 사진작가와 작품을 알게 되어 너무 뿌듯하다. 이런 기회를 주신 김형술 시인께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