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철학 - 이야기는 무엇을 기록하는가
노에 게이치 지음, 김영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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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무엇인가? 얼핏 생각했을 때 역사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객관적'이라는 기준은 참으로 모호하다. 초월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상적 연대기의 작자가 아니고서야 각각의 사건이 객관적으로 정리가 될 수 없지 않을까. 단적인 예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사건은 우리에게는 의거이겠지만, 일본에겐 테러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사에서는 객관적인 사실이란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다는 것부터가 어떤 주관이 스며들 수 밖에는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노에 게이치는 이제껏 생각되어졌던 우리의 이러한 기존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려 한다. 역사를 말하기 앞서서 '과거는 어떻게 인식되는가'와 '역사는 어떻게 쓰여지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다. 노에 게이치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절대불변의 객관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이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야기하는지에 따른 외적인 요소들이 역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즉 역사란 '이야기의 집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이야기의 철학'이 되었던 것이고, 구비전승이나 이야기학이란 다른 통로를 이용해 역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앞으로 되어갈 것인지 설명한다.

 

우리는 무한히 많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한 방울의 추억만을 가지고 역사라고 버젓이 내세운다. 하지만 그 추억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행위'라는 매개가 필요하다. 단편적이고 간결하며, 통일적인 줄거리가 없고, 유기적인 연관을 조직하는 맥락도 결여되어 있는 추억덩어리를 조합하고 인과의 실로 연결해 기승전결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야기행위의 사명일 것이다. 이야기되는 것에 의해 비로소 단편적인 추억이 구조화되고, 개인적인 추억이 공동화될 수 있다. 이런 언어행위를 통한 추억의 구조화와 공동화가 바로 역사적 사실의 성립조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행위에 의해 여러 차례에 걸쳐 매개되고 변용된 '해석학적 사실'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역사의 '객관성'을 지지하는 문헌자료나 고고학적 자료가 반론의 증거로 제시될 수도 있겠지만, 문헌자료라는 것 또한 언어에 의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그대로의 과거를 재현한다기보다는 '해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체험한 것조차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역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건을 재현할 수 있다고 다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사실 철학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알지못했던, 그리고 사유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상당히 심각한 책을 만난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송건호의 『신문과 진실』이나 E. H. Car의 역사론을 얼핏 들어보아도 역사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은 조금은 익숙한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 여겼던 내 오만이 불렀던 치명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를 맞닥뜨리면서 유추해보고 사전을 찾아적어보면서 생각의 지평이 넓어졌음은 절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 책 읽기에 지쳐가고 있던 내 나태함을 깨뜨려준 좋은 각성제 한 권 마시듯 싶다. 역사에 관심이 있고, 더불어 철학에 관심이 있으며, 한자를 좀 많이 아는 분이시라면 누구든지 도전하셨으면 좋겠다. 보통은 쓰지 않는 한자가 중요한 용어로 더러 등장해주셔서 머리를 많이 굴리게 해주신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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