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 - 아이들도 교사도 행복한 학교, 키노쿠니
호리 신이치로 지음, 김은산 옮김 / 민들레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아이들에게 수업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는 학교, 실패할 자유를 허용하는 학교,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고 주장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하는 학교가 일본에 있다. 바로 키노쿠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이런 창의적인 학교가 일본에 있다는 게 참 신기하고 질투나게 여겨졌었는데, 

일본의 학교교육이 심각한 수준으로 붕괴한 걸 놓고 본다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싶다.

요즘 한국 학교교욱도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키노쿠니어린이마을 같은 학교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키노쿠니어린이마을은 서머힐학교을 창시한 니일의 사상에 깊이 매료된 호리 신이치로가 설립한 학교다.

'서머힐'이란 말은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종의 대안학교다.

처음에는 마음에 병이 있는 아이들만 받은, 작은 학교로 시작한 서머힐은 지금은 훌륭한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는 하나의 시범학교가 되었다.

일본인 중에서도 서머힐을 졸업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는 것 같다.

내가 처음 '서머힐'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대학 2년 때였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과제물 관련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눈에 띄인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이었던 내 눈에도 완전히 별천지로 보였었다.

물론 심리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니일이었기에 가능한 시도였겠지만, 그런 내용을 보고 항상 생각하는 건

내가 거길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다.

 

이번에 본 키노쿠니는 니일의 사상에 듀이의 사상을 좀 더 가미했던 야심작이다.

아이들이 출결의 자유를 보장받고, 체벌이 없도록 한 니일의 사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업을 주입식으로 받지 말고

놀이 위주로 하면서 그 속에서 배움이 자라도록 하자는 게 그 주요 골자이다.

그래서 탄생한 학교가 바로 키노쿠니이다.

니일의 살아생전에 몇 차례 서머힐에서 가서 그를 만났던 호리 신이치로는,

"자네도 학교를 만들어야지?" 라고 물었던 니일의 질문에, 얼떨결에 "네, 그래야지요~" 라고 대답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니일의 사상을 접한 순간부터 그런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온 것이 아닌가 한다.

먼저 니일의 사상을 많이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모아 4년에 걸쳐 학교를 설립했다고 하는데,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처럼, 학교 부지가 들어설 마을 이장님부터 문공부까지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았단다.

 

이제는 중학교와 국제고등전수학교를 잇달아 열었으며,

키노쿠니를 본따서 만든 카츠야마어린이마을초등학교도 설립되었다고 하니, 그 위세가 많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부모와의 마찰로 그만 둔 아이들이 많았단다.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그만 두면서도 어이없는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숙사에서 공부를 시키지 않아서, 구구단을 못 외워서, 기초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에

많이들 그만두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많이들 보러 오시고 많이 이해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셔서 그런 점은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또 모른다. 누가 또 어떤 말로 트집을 잡으며 그들의 고귀한 일들을 망칠지 말이다.

호리 신이치로가 말하기를, 부모가 사랑을 많이 받고 컸는지에 따라서 아이들에게 대하는 게 다르다고 한다.

부모가 먼저 사랑을 많이 받지 않으면 아이들의 미숙한 점을 자신의 것으로 투영시켜서 아이들의 미숙함을 참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통계조사에서도 나왔듯이 일본 초등학생들이 스스로에게 갖는 부정적인 생각은 거의 반 이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하니까 정말 심각하다.

그런 부모도 이런 키노쿠니에서 아이들의 생기넘치는 모습을 보고 변화하길 바란다.

이 학교는 중간 방학을 활용을 많이 하기 위해 국경일은 쉬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수업 모습을 부모가 참관할 수 있게 한다는데 정말 획기적인 방안인 것 같다.

 

학년 구분이 없고, '선생님'이란 호칭이 없고, 기초학문보다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놓고 이루어지는 수업이라

처음에는 정신 산만할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상당히 잘 짜여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의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어른들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 없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수업이나

프로젝트를 선택해야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회의가 열린다. 처음에는 의견도 충분히 나오지 않았는데

다수결로 해서 이기고 진 것에만 신경을 썼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진지하게 논의해보고 생각을 하는 모습을 바뀌었다니 정말 부럽다.

그리고 모든 프로젝트와 자신의 수업을 점검하는 것도 아이들 스스로 한다.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으면 그것을 다시 고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 의기소침해지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평가를 하고, 나중에는 그 결과물을 잡지로 만들어 판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더욱 열심히 한단다.

워드를 치는 것, 인쇄를 하는 것, 편집을 하는 것도 모두 아이들 스스로 하고,

박물관을 짓는다거나 미끄럼틀을 세운다거나 노천목욕탕을 만든다던가 하는 것도

모두 회의를 거쳐 결정되고 원하는 아이들이 하나씩 프로젝트를 맡아서 만들기 때문에 의욕도 좋고 아주 능숙하다고.

 

키노쿠니를 방문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상당히 성숙하다는 말이다. 특히 활동도 많고 위험한 기구를 사용하는데도

다치지 않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조작을 한다고 하니 인상 깊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칠까 봐 아예 처음부터 못 만지게 한다. 그러면 아이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키노쿠니는 아이들에게 실패를 할 자유를 주고, 책임은 대신 지어준다.

호리 상이 말했던 것처럼, "자유를 갖되, 그 결과에도 책임져~" 란 말은 위협밖에는 되지 않는다면서

아이들은 실패할 기회를 갖되, 어른들은 그것에 탓하거나 훈계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다시 고쳐보겠단 의욕을 갖게 된다.

정말 아이들을 잘 파악한 것 같다. 어떨 때는 실패한 것을 보여주러 올 때도 있을 정도로 아이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없어야 실패도 많이 하고, 그래서 성공에 더 가까워지니까...

 

이런 긍정적인 면에 반해 부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기초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하지만 기초라고 하는 개념이 부정확한데다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선 주요과목을 전반적으로 잘하는 것은

사실상 아이들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호리 상의 신념에 따라 그런 우려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게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다.

그런데 그런 호기심이 학습으로까지 연결되지 않는 것은 학습이 단조롭고 흥미를 끌 만한 것을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키노쿠니는 활동을 통해 예를 들어, 미끄럼틀을 만든다고 하면, 합판은 몇 미터가 있어야 하고 받침대는 얼마큼의 폭으로 하며,

며칠이 걸릴 까 하는 것도 모두 계산을 하게끔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공부를 재미있게 알아간다.

깊이 있는 공부는 어차피 대학에서 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아이들의 기본 호기심을 유지해주면 많은 활동을 스스로 하게끔만 해준다면 더 이상은 필요없을 것 같다.

독일의 영재를 낳은 칼 비테 목사도 아이를 공부시킬 때는 하루 세 시간을 넘지 않고, 한 번에 30분을 꼭 지키게 했다고 한 것처럼,

과도한 실내 교육은 문제가 많다. 우리 공립학교도 이러면 좋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일단 인재가 많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담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일단 사립학교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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