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하며 이겨내는 나의 우울증
엘리자베스 스와도스 지음, 이강표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받아본 사람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낙서로 이루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낙서를 통해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하길래 반신반의하며 골라들었다. 우울증이란 병을 끊임없이 달고 다닌다고는 할 수 없어도 평소 가깝게 지내온 것은 사실이니까 더욱 더 호기심이 들었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우울증에 걸렸었단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긴 하는데 나는 한 번도 내 주위 사람들에게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다. 혹 나만 그런가 하는 생각과 실제로 걸렸는데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니까 숨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 그리고 자신이 우울증임에도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굳이 '우울증'이란 단어를 이용해 이름붙이지 않아도, 현대인의 대표적인 병이 우울증이라는 통계를 통해 나름대로 다들 조금씩의 우울증은 있지 않을까 하며 애써 자위를 해본다.

 

내가 '우울증'에 걸렸었던 것이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지만 앞으로의 일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한 번쯤 읽어보고 싶었었다. 물론 이 책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비스무리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돈이 아깝다고 여겨질 만큼 꽤 비싼 가격이긴 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만약 과거에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거나 아니면 내가 앞으로 제시할 사례에 조금이라도 해당한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두고두고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도 당혹스러울 만큼 엉망인 그림에, 아니 낙서에 기가 막혔다. 이런 그럼은 내가 왼손으로 그려도 더 이쁘게 그리겠단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책의 중반부를 보고 있으면 아~ 하는 깨달음이 스쳐지나간다. 바로 내가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살았구나 하는 재발견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얼마나 바쁜지 뻐기며, 친구들을 멀리했다. p. 38

사실은, 일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던 시절이었다. p. 39

안경은 어디 있지? 저 사람 이름이 뭐더라? 할 일도 잊어버렸다. p. 44

그리고 나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비극적인 거짓말들. p. 45

현실은 훨씬 더 따분하다. (성범죄 수사대 SVU 72시간째 보는 중) p. 46

내가 감히 외출할 때마다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과 마주치기만 했다. p. 47

나는 이렇게 뒤죽박죽 인생의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고 만다. p. 48

친구들이 도우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멀리 한다. 그들에게 자주 퇴짜를 놓거나 그들을 업신여긴다. p. 49

 

지금 내가 인용해놓은 구절의 행동은 예전에 내가 했고, 지금도 내가 하고 있는 짓거리다. 아니, 지금도? 정말? 설마, 아닐 거야. 내가 지금 우울하다고? 아니야, 난 우울하지 않아. 하지만 분명 저 짓거리들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지금 '우울증'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난 과거에 걸렸었던 기억을 되살려서 볼 생각이었는데... 자, 이젠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는지 볼까?

 

심령술, 호흡과 찬송을 통한 명상, 허브 치료, 요가, 복싱, 다이어트, 침술, 전생 치유법, 마사지, 펀칭 그리고 베개 차기, 바이오 피드백, 집단 치료...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걷기도 하고, 시를 읽기도 하고, 동물 쇼를 밤새도록 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밤에 잘 자기도 하고...

그러다가 전문가를 찾아가 약물 치료를 받았다. 많은 부작용을 경험한 후에 자신에게 딱 맞는 치료사를 찾아내 결국 3년 만에 이겨냈다.

 

그녀의 우울증이 나보다 더 극단적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아직 전문가를 찾아가볼 생각은 안 한다. 그냥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떠드는 게 아직은 마음이 편하다. 직장도 다니고 사람도 만나고 밖에도 잘 다니니... 내 우울증은 이런 활동적인 것을 많이 하면 나아지는 듯 싶다. 예전에 빠졌던 우울증엔 어떻게 해서 빠져나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 책을 보고 큰 수확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기분을 경험하기도 하는구나 하는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나는 이것만 가지고도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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